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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 윤 Apr 02. 2020

내 브런치 인기 검색어 ‘이혼’

그리고 당신에게 보내는 편지


오랜 기간 전업주부로 살아오신 엄마는 내가 직장인이 되고 나서 꼭 한 번 해보고 싶었다며 옷가게를 차리셨다. 집 근처 상가에 가게를 얻고 동대문을 나가서 옷을 사 오고 부지런히 움직이시며 몇 년을 재밌게 장사를 하셨는데, 아침에 출근해 저녁에 들어오는 생활을 하던 엄마가 일을 그만두게 되자 어쩐지 나랑 자주 부딪히기 시작했다. 아주 사소한 잔소리부터 약속이 있어서 나가면 너무 자주 나간다, 너무 늦는다, 택배는 또 오냐, 군것질 하라마라, 술 마시지 마라, 내일은 나가냐 등등 세세하고 일상적이지만 엄마가 당신의 일을 하느라 집에 없던 시간엔 하지 않았던 잔소리들은 점점 더 늘어났고 이것이 불편했던 나는 엄마가 옷가게 하던 날들을 무척 그리워하게 되었다.




브런치는 내 글에 대한 '통계'를 볼 수가 있다.

오늘 하루의 조회수, 어디서 유입되었는지 브런치인지 다음 메인화면인지 혹은 검색을 통해서인지 때로는 SNS를 통해서 인지도 모두 나오는, 작가로 하여금 그날그날 클릭을 안 할 수 없게 만드는 '통계'.

처음에 글을 쓸 때 나는 늘 이 통계를 확인하면서 늘어나는 조회수가 재밌기도 하고 때론 줄어드는 모습에 괜스레 신경 쓰이기도 했지만 요즘 들어서는 그것에 대한 원인과 결과를 스스로에게서 찾으려 애쓰는 것보단 그저 하던 대로 쓰던 글 쓰자!라는 생각에 도달해 이전보단 신경을 덜 쓰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그래도 어찌 됐건 간에 아직까지도 하루에 두세 번은 통계를 들여다보게 되기 마련인데 최근 들어 부쩍 늘어난 유입경로가 있다.

바로 검색어'이혼'을 통한 유입이다.

첫 회 글을 연재할 때부터 매일같이 몇 명이상은 '이혼'을 검색하고 내 브런치에 유입된 분들이 있었다. 한데 최근 들어 이혼을 검색하여 들어오는 분들의 횟수가 전보다 두 배정도로 부쩍 늘어났다.

혼자 생각하건대, 코로나 19로 인해 재택근무가 늘어나고 가족이 함께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그만큼 즐거움도 늘어났지만 갈등도 더 늘어났을 테고, 그래서 검색어 유입수가 많아진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마치 옷가게를 그만둔 엄마와 내가 갑작스레 함께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갈등이 생겼던 것처럼.


처음엔 이혼이란 단어로 브런치에 유입되는 것에 대해 별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자꾸만 늘어나는 검색에 어쩐지 묘하게 마음이 쓰인다.

예능에서는 이혼 경험이 있는 방송인들이 활발하게 활동을 하고 있다. 김구라나 서장훈, 이상민 같은 사람들은 주로 예능에 출연하다 보니 그들의 이혼 경험이 종종 개그 소재로 쓰이곤 한다. 그럴때 그들은 아무렇지 않은 척 같이 농담으로 넘기지만 사실 나는 그런 장면이 항상 불편했다. 더욱이 내가 경험한바에 의하면 이혼은 절대 그렇게 가벼운 웃음거리로 놀릴만한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솔직히, 이혼을 경험 하기 전에 TV를 보며 웃지 않았다고는 하지 못하겠다. 아마도 그래서 사람들도 이혼을  우스갯소리로 이용하는 것이겠지만 막상 내가 겪고 보니 저 사람들 저렇게 얘기하는데 마음이 괜찮나? 싶은 생각에 웃기가 조금 힘들었다.  더불어 이러한 맥락에서 나는 '돌싱'이라는 말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내가 힘들게 한 선택을 너무나 가볍게 농담처럼 만들어버리는 단어 같아서. 그래도 몇 년이 지나면 나도 그 말을 쓰려나. 잘 모르겠다. 확실한 것은 '이혼'보다는 '돌싱'이 가지는 단어의 무게가 훨씬 가볍다는 것이다.


이혼을 하고 나서 일 년쯤 뒤에 고등학교 동창들과 해외여행을 간 적이 있다.

네 명의 동창들 중에서 한 명만 내 이혼 사실을 알고 있던 터라 나는 다른 친구들에게도 여행 간 김에 내 이혼 사실을 알렸다. 한 친구는 무척 놀랐고 다른 한 친구는 놀랐지만 동시에 '놀렸다.' 그 친구는 원래도 장난기가 많고 짓궂은 면이 있는 친구라, 다른 문제였으면 아마 나도 웃고 말았겠지만 이건 좀 얘기가 달랐다.

친구가 아직도 자기 폰에 네 결혼식 사진이 있다며 웃으면서 보여줄까?라고 농담을 던졌고, 당황한 나는 정색할 수도 없고 웃어넘길 수도 없어 다른 친구들에게 얘가 나 놀려~하면서 우는 척을 했다. 그랬더니 두 친구는 정말 나 대신 진지하게 정색하며 친구를 혼쭐 내주었고 친구도 뒤늦게 미안해 장난이야~ 근데 너 정말 상처 받아...? 하고 말했다. (다시 말하지만 원래 장난을 잘 치고, 해맑고, 그러나 절대 악의는 없는 친구다.)

나는 그 친구가 어떤 성향인지 잘 알고 있었고 그녀의 그런 장난스러움과 유쾌함을 좋아했으며 이혼한 지 일 년이나 지난 상황이었지만, 여전히 내게 이혼은 농담의 소재가 아니었다.

하지만 친구는 가볍게 농담으로 이혼을 소비했고 그에 크게 당황하며 말렸던 친구들과, 그 친구들 사이에서 나 대신 말려주는 게 고맙고 한편으론 어찌해야 할지 몰라 당황스레 웃던 내가 생각난다.




인생에서는 몇 가지 중요한 터닝포인트가 있다.

대학입시, 첫사랑, 취업, 결혼, 출산 등 인생에 큰 줄기를 차지하며 한 사람의 삶을 뒤바꿀 어떤 포인트들.

그런 포인트 중 불행한 축에 속하는 한 가지 경험이 바로 이혼이며 그만큼 이혼은 작아지고 흉터를 남길 지언정 절대 사라지지 않을 큰 상처를 남긴다.

하지만 누가 나에게 그래서 이혼한 것을 후회해?라고 묻는다면, 나는 아니.라고 1초도 망설임 없이 답할 것이다. 나는 나 스스로가 현명하게 이혼을 결정했다고 생각하며 그것을 흔들리지 않고 실행한 것에 후회하지 않는다. 오히려 일찍 생각하고 용감히 실행한 것에 대해 내가 대견하다고 느낄 정도로. (물론 제일 좋은 건 결혼을 하지 않는 것이었겠지만.)

처음 이혼을 생각할 때 나는 혹시 내가 경솔한 건 아닐까, 내가 너무 쉽게 생각한 것은 아닐까, 나의 노력이 부족했던 것은 아닐까 고민했더랬다. 그래서 어떻게든 스스로를 달래며 억지로 결혼생활을 이어가려고 노력하고 또 노력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마음은 점점 더 황폐해져 갔고 너무나 힘이 들어서 마지막에는 일주일이 일 년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그래서 나는 결국, 그제야 이혼을 결심했다. 부단히 애쓰다가 결론을 내리고나니 헤어질 때는 아주 작은 미련조차 남지 않았다.


나는 이혼을 진행하면서 한 가지를 깨달았다. 내가 무엇을 선택하건 다른 사람의 기준이나 시선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남들이 보기엔 짧다고 보인 내 결혼생활이 막상 그것을 살아가던 나에게는 10년, 20년처럼 느껴지는 고통이었으며 이것은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일이었다. 결국 내 결혼생활에 대해 판단하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나뿐인 것이다.

때로 우리는 연예인들이 1년 만에 파경을 맞았다거나 결혼 후 얼마 안돼 바로 별거에 들어갔다거나 하는 등의 기사를 접한다. 나도 어릴 때는 생각했었다. 저들은 경솔한 사람들이 아닐까. 왜 저렇게 노력도 안 해보고 일찍 헤어졌을까. 그럴 거면 뭐하러 결혼한 걸까. 하지만 내 생각은  틀렸다. 그 시간들이 내게 짧게 보였을지언정 절대 그들 스스로에게는 짧은 시간이 아니었을 것이다. 1년이건 몇 달이건 간에 우리가 느끼는 그들의 시간과 그들이 느낀 자신들의 결혼 속 시간은 분명히 달랐을 것이다. 나도 그랬으니까.  그렇기에 우리는 다른 이의 이혼에 대해  경솔하다거나 노력하지 않았다거나 너무 짧다거나 하는 등의 무례하고 실례되는 말을 함부로 할 권리가 없다. 아무도 그들이 경험한 것에 대해 알지 못하므로.


엄마는 내가 그 사람과 결혼한 것에 대해 자신을 탓하셨다고 했다. 내가 처음 그와 함께 부모님을 만났을 때 엄마가 너무 좋아해서 네가 결혼하려고 한 것은 아니냐며. 당연히 말도 안 되는 소리였고 내 결혼은 나의 선택이었다고, 다른 누구의 의견도 필요 없이 오로지 내 선택이었다고 말했었다.

최근 들어 많아진 '이혼' 검색어 유입을 보며, 나는 이혼을 생각하는 분들에게 내가 생각한 것을 말하고 싶었다.

내가 겪었고, 이미 겪었을 분들과, 이혼을 생각하는 분들이 고민했을 말들을.





[이혼을 고민하는 당신에게]


이 글을 보고 있는 당신.

너무나 당연한 말이지만, 꼭 말해주고 싶었습니다.

당신의 인생은 당신만이 만들어갈 수 있어요. 어느 누구도 대신 살아줄 수 없는 것처럼요.

그러니, 당연히 다른 누구도 당신의 인생에 대해 왈가왈부할 수 없습니다.

이혼해, 하지 마, 경솔해, 더 버텨봐 그들은 말할 권리도 없고 당신이 그 말에 흔들려서도 안됩니다.

나의 인생은 결정하는 것은 나이며 결국엔 내가 선택하고 감당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결혼 생활이 짧건 길건, 남들의 시선이 두렵건, 가족들에게 미안하건 간에, 당신이 이혼에 대한 확신이 든다면 부디 당신 자신만 생각하시길 바랍니다.

저는 당신이 그 생각을 떠올리기까지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모릅니다만 이렇게 큰 일을 떠올리고 고민할 만큼 괴로웠을 것이란 것만큼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당신, 이혼했을 때 가족이 받을 상처, 당신에게 날아들 시선들, 혹은 견뎌야 할 괴로움과 다른 것들이 두려워서 선택을 미루거나 용기를 잃지 마세요. 아마도 당신이 이혼을 선택하건 아니 건간에, 어느 쪽이든지 지금의 당신은 힘들고 아플 것입니다. 그렇다면 당신은 부디 둘 중에 내가 더 나답고 행복할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함을 잊지 말아 주세요.

이혼을 선택하면 괴롭습니다. 솔직히 아침에 눈뜨는 게 두려울지도 몰라요. 아마도 몇 달은 하루를 어떻게 보냈는지 기억도 안 날 만큼 힘들 것입니다. 가족들에게 미안함은 물론 사람들을 만나는 게 두려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럼에도 어떻게든 시간은 흐르고 아픔도 작아져갑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당신의 마음은 서서히 회복되어 갈 거예요. 도저히 돌아올 것 같지 않던 부서진 마음도 조금씩 안정을 되찾을 겁니다. 당신은 다시 예전의 나를 찾고 때로는 새로운 행복도 찾고 소소하고 귀한, 이전과 다른 날들을 맞이하게 될 거예요. 그러니 당신, 용기를 내세요. 당신이 어떤 선택을 하건 저는 당신의 편입니다. 그것이 새로운 출발을 선택하는 이혼이건 혹은 조금 더 결혼을 지속해볼 용기이건 간에.

그저 기억해주셨으면 합니다. 나를 완전히 이해하는 것은 나뿐이고, 그렇기에 내 행복은 오로지 나만이 만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요. 당신의 행복이 당신 자신에게 달려있다는 것도요.

부디 당신의 용기로 당신의 내일이 힘들지 않기를, 행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진출처: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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