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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 윤 Feb 16. 2020

삼년상을 치르는 이유

이혼에 적응하는데 걸리는 시간

이혼 일기라더니 갑자기 삼년상 얘기를 왜 하냐고?

그건 내가 느낀 이혼에 적응하는 시간이 3년이었기 때문이다.

아아, 그래서 우리 조상들이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삼년상을 치렀구나! 괜찮아지는 시간이 삼 년이구나!

라고 문득 깨달아버린 어느 날.


앞에서 말한 것처럼, 나는 이혼을 했다. 결혼의 시작도 끝도 내 선택이었지만 매우 평탄하고 별일 없이 살았던 내게 이혼은 굉장히 큰일이었다.

한창 결혼생활에 갈등을 느끼던 시기에 좋아하는 뮤지컬 배우의 콘서트에 간 적이 있다.

콘서트는 소규모로 진짜 그 배우 팬이 아니면 오기 힘든 자리였고 특히나 1열에는 열성적인 팬들이 앉아있었다.

공연이 끝 나갈 즈음 그 배우는 마지막으로 한 가지 꼭 말하고 싶은 게 있다며 이런 말을 했다.


“개인적으로 힘든 시기가 있었어요. 물론 지금도 그렇고요. 순탄하게 살아온 제 인생에 그런 일이 있을 줄은 몰랐거든요.그때 제게 힘이 되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하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알 수 있었다. 그에게서 느껴지던 뭔가 다른 분위기, 늘 잘 웃던 사람이 이상하게 미묘한 표정차이를 보였던 이유.

아, 저 배우 결혼생활이 잘 안된 모양이구나!  느낌이 왔다.

왜냐하면, 내가 그랬으니까. 정말 놀랬던 말은 ‘순탄하게 살아온 제 인생에...’라는 말이었다.

나 역시 토씨 하나 안 틀리고 ‘순탄하게 살아온 내 인생에 이런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몇 달 뒤 나는 결국 이혼을 결심했고,  얼마뒤 그 배우가 이혼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집으로  돌아온지 거의 삼 년이 되었다.

난 원래 낙천적인 편이고 뭔가 화가 나거나 친구와 다툰 일이 있어도 금방 잊는 사람인데 (얼마나 잘 잊냐면, 왜 싸웠는지조차 기억하지 못한다. )

문제는 소심함도 심하게 갖고 있는 트리플 A성격이라서 상처 받으면 더 오래가고, 따라서 이혼하는 과정은 내게 굉장히 큰 타격이었다.


처음 이혼을 결심하고 집을 나왔을 때는 한창 바쁘게 일하던 시기였는데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그 시기에 내가 수업을 어떻게 했는지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  

여러 가지 일중에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을 주로 하고 재미있게 수업하는 걸 좋아하기에 농담도 잘하는 편이지만, 그때는 농담은 커녕 거의 웃어본 적도 없는 것 같다.

젤 희한한 건  집에 돌아온 후 한  3-4개월간의 수업을 어떻게 했는지 기억도 잘 안 난다는 사실이다.

어떻게 일어나서 어떻게 준비하고 수업을 했는지 집에 돌아오면 뭘 했는지 어디를 갔으며 무얼 먹었는지도 도무지 생각이 안 난다. 너무 이상해서 우울증에 관한 글들을 읽다가 찾은 건데, 힘들고 어려웠던 시기를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자신을 보호하려는 방어기제라고 본 적이 있다.

아, 그렇구나. 그제야 난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이유를 납득할 수 있었다.  사실  그쪽이 훨씬 마음이 편하긴 하다. 그 감정을 계속 기억하고 있다면 아마 정상적인 생활로 돌아가는 게 힘들었을테니까. 추측하건대, 아마도 그 시기에 난 우울증이 왔었던 것 같다. 하지만 이 때문에 그 당시 내 수업을 들은 학생들에겐 아직도 미안한 마음이 있다. 선생으로서 최선의 수업을 해주지 못한 것 같아서.


시간이 약이라는 말이 있다. 어떤 일이던지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지고 평온해진다는 뜻일 텐데, 그 중에서도 이혼은 꽤 오랜 시간이 걸려야 괜찮아지는 일이었다. 어떤 사람들은 이혼하고 나서 아무렇지도 않게 활동하고, 주변에도 얘기한다고 하지만 내게 필요한 회복의 시간은 생각보다 꽤나 길었던 것이다.


마침 그 시기에 티비에서 연예인이 소개팅을 하는 프로그램을 본 일이 있다. 그는 50대의 남성이었고 소개팅을 나온 여자는 30대 초반의 이혼 경험이 있는 사람이었는데, 잘될 듯 되지 않던 그 관계가 안타까웠지만 한편으론 여자의 마음이 이해가 되었다. 아마도 두렵고 조심스러웠을 것이다. 모든 것이.

분명 호감이 있다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엔 커플로 이어지지 못했단 소식은 아마도 그래서 였을 거라고 생각한다. 처음에 티비에서 그녀가 소개팅에 나와 이혼 사실을 밝히고 대화를 나누는 걸 보며 난 생각했다.

저 사람은 분명 이혼한 지 삼 년은 지났을 거야.

그 정도의 시간이 지나야 비로소 저렇게 편안하게 자기 얘기를 할 수 있을 테니까.


그리고 작년 말에는 이혼한 여자 연예인 여러 명이 나오는 프로그램을  보게 되었다.

첫 회에서는 대부분 자기 얘기를 털어놓으며 울기도 하고 공감도 하는 얘기를 하는데, 그 회를 보는 엄마에게 채널을 돌리자고 해야 했다. 너무나 공감 가서 그때의 기분이 떠올라 견딜 수가 없었던 것이다.

몇달 뒤 또 시간이 흘러서 다시 티비에서 (... 그렇다. 본다. 티비. 자주.) 연예인이 자기 이혼 경험을 얘기하는 걸 보았다.  그런데 그때는 끝까지 시청했고 마음아프게 공감했지만 더 이상 심장이 내려앉거나 하진 않았다. 다만 같이 고개를 끄덕거리며 쓴웃음을 지었을 뿐이다.


-엄마, 시간이 지나긴 하네.

-그러게 네가 결혼한 적이 있었던가 싶다.


엄마도 고개를 끄덕이며 참 신기하다고 했다.

그리고 그때 문득 깨달았다.

나, 시간이 얼마나 지난거지?

그래. 삼 년이었다. 이혼한 지 삼 년.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 조상들이 삼년상을 치르는 게 이런 이유였나!! 삼년쯤 지나니까 괜찮잖아!!

엄마에게 그 얘길 했더니 어이없어하면서도 공감하며 웃어주었다.


사람마다 상처를 극복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다르고, 사랑이 끝나고 난 뒤 치유되는 시간도 다르다.

슬픔을 이겨내고 평온한 자신으로 돌아오는데 걸리는 시간. 아무렇지 않을 순 없지만 적어도 그 시절을 담담히 말할 수 있게 되는 시간.

삼 년. 내게는 그 시간이 삼 년이었다.

아마도 이혼에도 삼년상이 필요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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