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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 윤 Feb 16. 2020

이혼 일기 -Prologue-

내가 지나온 시간들

늘 비슷한 시간에 산책을 가자고 조르는 우리 강아지와 공원을 나섰다.

주말이다 보니 놀이터에 가족들이 나와있었고 그들 중 한 가족이 눈에 띄었다.

두 명의 아이들은 대략 유치원생 정도 되어 보였다. 둘의 그네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라가기 바빴고 조심하란 말을 잊지 않으면서도 연신 카메라로 찍기 바쁜 엄마와, 웃으면서 괜찮다며 열심히 밀어주는 아빠가 있었다. 그걸 보며 문득 난 궁금해졌다. 저 아이들의 엄마 아빠는 몇 살이나 되었을까.


내 주변의 친구들은 반 이상이 결혼을 했다. 원래 내 꿈도 그들과 같았다. 평범하게 누군가를 만나서 평범한 가정을 꾸리고, 예쁜 아이들을 낳아 남들처럼 우리 엄마 아빠와 함께 투닥거리며 삼대가 함께 여행도 가보는, 그런 게 내 꿈이었다.

어렸을 때는 그게 그렇게 어려운 일인지 몰랐다. 주변 사람들은 다들 절차를 밟아가듯 자연스레 누군가를 만나고 결혼을 했다. 내게 사람을 사귀는 것은 흔하진 않지만 어렵지도 않은 일이었고 나이가 들면서 좋은 사람을 찾기가 조금 힘들어지긴 했어도 날 좋아해 주고 아껴주는 좋은 사람을 만났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아마도 나는 다른 사람들이 그렇듯 그와 함께 내가 꿈꾸던 행복한 가정을 꾸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때까지 이혼이라는 건, 남들에게나 있는 얘기인 줄 알았다.


 



사계절을 함께 보내며 그 사람을 만났지만, 막상 결혼하고 보니 그와 나는 너무나 다른 사람들이었다.

연애 때 그는 늘 내게 맞춰주기만 하고 화도 내지 않았는데그의 친구들은 그걸 보며 개과천선했다며 신기해했고 반대로 나는 그의 친구들이 하는 말이 영 믿기지 않았다. 이 사람 앞에선 다들 꼼짝 못 했다고? 말도 안 돼. 이렇게나 순하고 좋은 사람인데 무슨 얘기지.

 하지만 무슨 일이 생겨도 화 한번 내지 않고 자기 의견이라곤 내지 않는 그가 나는 내심 불안했고, 결혼 후 그 불안은 현실이 되어 나타났다. 끊임없이 싸우고 다투던 날들. 매일 밤 울면서 잠이 들던 시간들.

어느 날 그와 싸우다가 문득, 내가 미쳐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다음날 나는 집을 나왔다. 도망치듯 빠져 나와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엄마는 뭐라 묻지도 않고 한달음에 달려오셨고, 난 집으로 돌아가 엄마와 함께 급하게 짐을 챙겨 본가로 돌아왔다. 나중에 엄마에게 들으니 내심 뭔가 짐작하는 바가 있었다고 하셨다.


“집에 왔다가 돌아가는 네 뒷모습이 늘 이상하게 불안했어.”


“왜 자세한 거 안 물어봐?”


“내가 널 몰라?  너는 뭔가를 쉽게 결정하는 애가 아니야. 그런 네가 집으로 오고 싶다며 전화를 했잖니. 물어볼 필요도 없지.”


어디에서도 받을 수 없는 무한한 신뢰. 돌아올 곳이 있어서 다행이다. 나는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그렇게 내가 나로 돌아온 지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

문득 해가 또다시 바뀐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2020이라는 숫자가 코앞이라는 게 참 이상하게 느껴졌다.

놀이터에 웃음소리가 더 크게 들려온다. 이번엔 술래잡기를 하는 모양이다. 즐겁게 뛰어다니는 아이들과 여전히 그걸 바라보고 있는 엄마. 행복해 보이는 가족의 모습.

나도 한 때는 저런 내 모습을 꿈꿨었다. 그것이 무너지면서 나 또한 무너진 시간들이 있었지만, 시간이 약이라고 어찌어찌 버텨낼 수 있었고 그러게 지나온 시간들이 3년이 다 되어간다.


아이들과 함께 있는 가족의 모습을 보면서, 내가 여전히 가정을 꾸리고 있고 아이가 있다면 이렇게 글을 쓰고 있진 못했겠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혼을 고민하던 시기에 극작 수업을 들었고, 그 수업은 매우 힘들어서 우울해할 시간조차 생기지 않았다. 덕분에 나는 별거와 이혼이라는 제일 힘들던 시기를 글을 쓰며 조금씩 이겨낼 수 있었고 그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지만 (심지어 내 전공은 전혀 다른 분야다. ) 시간이 흐르면서 나는 내가 그 지난한 과정들을 꽤나 좋아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시간만 나면 카페에 앉아 몇 시간씩 고민하고 쓰고 지우기를 반복한다. 일을 마치면 글을 쓰고, 밤에도 생각이 떠오르면 다시 컴퓨터를 켰다.


그리고 19년, 봄. 극작 수업을 들으며 쓰기 시작했던 첫 작품으로 모 문화재단에서 시나리오 상을 받았다. 나를 작가님이라 부르며 걸려온 전화가 믿기지 않아서, 한동안 어리둥절해했던 기억이 난다. 꿈인지 생시인지가 이럴 때 쓰는 말이라는 걸 몸소 체감한 일이었다.

5월, 이번엔 두 번째 작품으로 작가 지원 프로그램에 당선되어 5개월간 멘토링을 받았다. 현업에 계신 분들을 만나 귀한 멘토링을 받았던, 이제 막 꿈꾸는 신인으로서는 정말로 말로 다 할 수 없는 소중한 시간들이었다. 역시나 쩔쩔매면서 따라가기 바빴지만 다행히 무사히 멘토링을 마쳤고 이것으로 인해 조금은 성장했다,라고 느낀다.

처음 글을 쓸 때만 해도 나는 다른 이들에게 작가님이라고 불리는 것이 낯설고 부끄러웠다.

하지만 올해(이 글을 쓰던 건 2019년 말쯤이다) 나름의 성과를 거두고 나니 이제 나를 작가라고 불러도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아직도 조금 부끄럽지만.




아이들이 엄마 아빠의 손을 잡고 행복을 담뿍 담아 집에 돌아간다. 지금 내겐 손을 잡고 있는 아이는 없지만 대신 써야 할 글이 남아있다. 어둠 속에 하얀 불빛을 뿜으며 자신을 채워주길 기다리는 작은 여백.

지나온 시간 동안 이 여백의 빛이 내 위안이고 행복이 되었다. 지금 난, 내 인생의 2막을 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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