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나비 마운틴
7월 1일 캐나다 데이다. 사실 부끄러운 말이지만 캐나다 데이인지 영국 데이 나이지리아 데이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올해도 벌써 반이나 지났다는 것이다.
2023년 7월 1일 캐나다 데이를 보내는 방법을 소개한다.
1. 올해도 벌써 반이나 지났다는 생각에 인생무상을 느끼며 이불과 함께 천정을 바라본다
2.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은데 뭘 해야 할지 몰라 답답함을 느낀다
3. 친구와 놀까 하다가 친구가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4. 혼자 술이나 마실까 하다가 그러다간 2023년 하반기도 상반기와 별반 달라질 것 같지 않겠다는 생각에 정신을 차린다
5. 오픈 카톡방을 열고 취미 공유 방을 검색한다
6. (용기 내어) 하이킹에 참여하겠다고 말한다
7. 이불과 헤어진다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오픈카톡방이라니 '지금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하며 깜짝 놀랄 수 있겠지만 생각보다 우리가 염려하는 무서운 일은 잘 일어나지 않더라. 처음에 사람들을 만났을 때 너무 친절하길래 나는 술을 무지 좋아한다는 사실을 밝히며 내 간과 콩팥의 상태에 대해 넌지시 어필했으나 눈치를 보아하니 사람들은 내 간과 콩팥에 전혀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그냥 정말 친절할 뿐이었다.
메트로 밴쿠버에는 트래킹이나 하이킹을 할 곳이 많다. 아주 많다. 무지 많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자차가 없으면 갈 수 있는 선택지는 많지 않다. 그래서 뚜벅이인 나는 자차가 필요 없는 버나비 마운틴에 간다길래 '아묻따(아,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얼른 따라나섰다.
버나비 마운틴에 가기 위해 버스를 타고, 또 다른 버스를 타고 버퀴틀람 역에 내렸다. 버퀴틀람이라니...... 바퀴벌레 같기도 한 이 역의 이름을 처음 들었을 때 너무 웃기다 생각했다. 버나비와 코퀴틀람 지역 사이에 있어서 버퀴틀람이래서 나는 '요즘 어린 친구들이 쓰는 말'인가 짐작했지만 실제로 공식적인 역 이름이 버퀴틀람이었다.
버퀴틀람 역 맥도널드 앞에서 '악의 없이 그저 친절한' 사람들을 만났다. 휴일 아침 9시 15분에 등산화를 신고 사람들을 만나다니, 오늘은 분명 내 인생의 큰 터닝 포인트가 될 인생의 랜드마크적인 날이 되리라.
버나비 마운틴 등산길에는 화장실이 많지 않고 지도상 있다고 알려주는 곳도 실제로 없는 곳도 있으니 미리 화장실 위치를 파악해 두는 것이 좋다. 공중 화장실 안에 똥파리가 너무 많다. 목이 마르더라도 수분 섭취는 자제하는 것이 좋다.
2시간 정도 열심히 올라가니 한쪽에는 밴쿠버 도시가 다른 한쪽은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버나비 마운틴 공원이 나왔다. 이런 풍경은 역시 땀과 인내의 대가가 아니겠는가, 뿌듯해하며 이마의 땀을 닦아 내며 고개를 돌렸는데 차로 가득 차 있는 주차장이 보였다. 땀과 인내 없이도 차만 있으면 올 수 있는 곳이었다. 땀을 닦던 뚜벅이는 마음이 조금 상했지만 알록달록 만개한 꽃들과 빤따스틱한 씨뷰(Sea View)와 시티뷰(city view)에 금방 다시 기분이 좋아졌다.
공원에서 정상의 맛을 보았으나 큰 오산이었고 다시 돌아오는 길에 지옥의 오르막을 경험했다. 버나비 마운틴을 하이킹 혹은 트래킹 할 예정이라면 어떤 루트로 갈지 미리 경사나 거리 등을 파악하고 가는 것이 좋겠다.
처음 만난 사람들과의 하이킹이었지만 불편한 구석 없이 즐거웠다. 하이킹을 하는 내내 우리의 대화는 무심히 멀어지지도 함부로 가까워지지도 않았다.
종아리 근육은 터질 듯 아프지만 내 간과 콩팥은 오늘도 무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