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rby Reach Regional Park
오늘은 프레이저 강을 따라 조성된 Derby Reach Regional Park에서 가볍게 산책을 했다. 강도 보고 나무도 보고 피톤치드 샤워도 하고!
내세울 거라고는 자연 하나 뿐인(이라고 하면 조금 눈치가 보이지만 그만큼 큰 부분이라는 뜻...) 밴쿠버는 여름이 되면 천국이 된다. 밴쿠버의 별명은 레인쿠버. 그만큼 비가 많이 온다는 뜻인데 밴쿠버에 오기 전에는 '에이, 비가 오면 뭐 얼마나 오겠어'하며 가볍게 생각했으나 정말 지긋지긋하게 오더라. 특히 11월부터 2월까지는 빗소리가 기상 알람이자, 자장가다. 빗길에 출근하는 차들이 내는 '촤- 촤-'하는 소리에 잠에서 깨고, 조용한 정적 속 창문을 두드리는 빗방울 소리를 들으며 잠이 든다.
'오, 빗소리 낭만적이잖아?! 나는 비 좋아하니까 괜찮아!'
하고 생각할 수 있다. 나도 그랬다. 나도 비 좋아한다. 빗소리 듣는 걸 좋아하고 빗소리를 들으면서 와인 마시는 걸 좋아하고, 빗소리를 배경음악으로 비와 어울리는 노래를 찾아 듣는 것도 좋아하고 심지어 비 내리는 창가에서 그저 멍 때리는 것도 좋아한다...... 무튼 나도 비에 대한 낭만이 있는 사람이었단 말이다(아니 니가 왜 화를 내?) 밴쿠버를 경험하기 전 까지. 낭만의 전제조건은 가끔이어야 한다. 아무리 로맨틱하다고 해도 일상이 되고 허구한 날이 되면 낭만은 낭만의 본질을 잃어버린다.
밴쿠버 한 해의 날씨는 이렇게 흘러간다. 더위가 한 풀 꺾인 9월부터는 단풍이 들기 시작하면서 선선해진다. 캐나다 전역에 단풍이 아름다운 곳이 많다. 나라를 대표하는 국기에 단풍이 그려져 있는 것만 봐도 단풍명소를 일일이 나열하지 않아도 명실공히 단풍국이다. 선선한 날씨와 아름다운 단풍을 볼 수 있는 9월부터 11월까지 가을을 만끽하고 나면 밴쿠버는 울기 시작한다. 밴쿠버도 울고 밴쿠버라이트(Van·cou·ver·ite : 밴쿠버에 사는 사람)들도 운다. 이르면 2월까지 늦으면 4월까지 비가 온다. 웬일로 해가 반짝 얼굴을 비추기라도 하면 천은(天恩)이 망극한 마음으로 바지런히 장을 보고, 빨래를 한다. 그렇게 비오는 겨울을 보내고 나면 5월, 드디어 봄이 시작된다. 그래도 6월까지는 비가 자주 온다는 걸 의식적으로 상기를 해야 상처(?)받지 않는다. 봄이 시작된 것 같다며 환희에 가득 차 있다가 일주일 내리 비가 오는 시기를 또 만나면 겨울보다 더 우울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지루한 우기가 끝나면 6월 말부터 가을까지 천국이 시작된다.
요즘이 딱 그 시기다. 여름이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그러니까 지겨운 우기가 언젠가는 오고 말 것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아는 밴쿠버 사람들은 여름이 되면 '있을 때 잘 해(즐겨)' 정신을 충실히 실천한다. 공원, 등산로, 해변 등 인기 있는 장소라면 근처 주차장에 주차할 곳이 없으니 자차를 가지고 이동할 사람들은 (특히 주말에는) '누구보다 빠르고 남들과는 다르게' 서둘러야 캐나다 여름의 하루를 기분좋게 시작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캐나다의 가을보다 여름을 좋아하는 이유는 해가 길기 때문이다. 새벽 5시부터 밝아지는 밴쿠버의 태양은 밤 10시가 되어서야 산을 넘어간다. 부지런히 움직이면 하루를 이틀처럼 즐길 수 있는 거다. 편의점에서 좋아하는 음료수를 샀는데 알고보니 1+1 행사를 하고 있다는 걸 발견한 기분으로 7월의 캐나다를 살고 있다.
영상으로 보고 싶다면!
유튜브 무작정 캐나다 '밴쿠버 날씨'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