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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서영 Jun 29. 2023

류정석 인터뷰上 - 장애의 구분을 없앤 기회의 장으로

황서영의 컬러풀 캐나다

류정석(JS) 대표는 세 개의 캘거리 장애 예술 단체인 Indefinite Arts Centre, Momo Movement, Artistic Expressions이 합병되어 설립된 National accessArts Centre (NaAC)의 창립 대표이자 CEO로서 NaAC를 캐나다 최대의 장애 예술 단체로 성장시켰고, 장애를 가진 캐나다 예술가들을 세계 무대에 끊임없이 선보이고 있다. 


2017년, 그는 캐나다에서 다섯 명 중 한 명으로(전 세계에서 50명 중 한 명으로) Salzburg Global Seminar의 Forum for Young Cultural Innovators에 참여할 기회를 얻었으며 2019년에는 Avenue Magazine에서 캘거리 Top 40 Under 40에 선정, 2022년에는 엘리자베스 2세 여왕 플래티넘 주빌리 메달을 수상했다.


출처 : NaAC


황서영(이하 황) : 사실 제가 류정석 대표님을 알게 되고 나서 인터뷰 요청을 꼭 드리고 싶었는데 워낙 바쁘신 분인 걸 아니까 선뜻 드릴 수가 없더라고요. 그래서 NaAC 관련 칼럼을 하나 쓰고 나서 그 빌미(?)로 연락을 드려야지 하고 마음을 먹었는데 칼럼이 게재되고 그걸 보셨다고 먼저 연락을 주셨잖아요. 그 이메일을 보고 너무 기뻤어요. 바쁘실 텐데 인터뷰에 흔쾌히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류 : 제가 평소에도 에이블뉴스에 관심을 가지고 기사들을 자주 보거든요. 에이블뉴스에서 NaAC 관련 기사를 발견했을 때 저도 굉장히 기쁘고 감사하다는 마음이 들었어요. 그래서 이메일을 드렸죠.


황 : 원래 문화예술 쪽 일을 많이 해오신 것으로 알고 있어요. 어떤 계기로 지금의 장애예술 분야에서 일을 하고 계시는지 여쭤보고 싶어요.


류 : 초등학교 때 발달 장애를 가진 친구가 있었어요.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제가 그 친구를 따돌리고 놀렸어요. 그래서 학교에서 집으로 편지가 왔는데 그 편지를 보시고 저희 아버지가 야구 빠따(배트)로 저를 때리시면서 엄청 화를 내셨어요. 그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부모님께 맞은 기억인데 그때 그러시더라고요. "공부를 못해도 좋고, 음악을 때려치워도 좋은데 먼저 인간부터 돼라". 그때 저는 엄청 충격을 받았어요. 그 이후로 아버지가 저에게 뭔가 보여주시고 싶으셨는지 학교에서 봉사활동을 하기 시작하셨어요. 봉사활동을 하시면서 그 친구와 저를 계속 같이 묶어 놓으셨어요. 버스도 같이 타고 항상 함께 다니게 하셨는데 그 계기로 그 친구와 친해졌어요. 아마 최초로 제가 장애인에 대해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건 그때부터였을 거예요.


황 : 아, 그 친구가 어쩌면 지금의 류정석 대표님을 있게 한 거네요.


류 : 그렇죠. 제가 2013년부터 2015년까지 CNIB(Canadian National Institute for the Blind)라는 시각 장애인을 위한 자선단체 기관에서 일을 했는데 사실 그전에 제가 한 일이 앨버타 대학에서 연설문을 쓰는 일을 했었어요. 그러다 보니 주위 사람들은 제가 미래 유망한 직장을 포기하고 자선단체의 제안을 받아들이는 것을 이해 못 했어요. 그래도 저는 어렸을 때 함께 지냈던 발달 장애를 가진 친구와의 기억 때문에 CNIB의 제안에 마음이 끌렸던 것 같아요.


황 : 2013년부터 장애와 관련된 일을 하신 거네요. 그러고 나서 2015년에는 다른 곳으로 가신 거죠?


류 : 그리고 밴프 센터(Banff Centre for Arts and Creativity)로 가게 됐는데 그곳에서 저는 회의가 많이 들었어요. 사실 그곳뿐 아니라 문화예술 자체가 저의 가치관에는 벗어난 부분에 더 집중하고 있어요. 보기 좋은 작품, 듣기 좋은 음악, 몸의 아름다움에 집중하는 발레 같은...... 저한테는 아무 의미가 없었어요. 그때 당시 저는 정부 펀딩을 받아내는 일을 맡았는데 그런 문화예술을 위해 돈을 받는 제 자신이 참 만족이 안되더라고요. 문화예술 그 자체의 발전에는 이바지할 수 있을지 몰라도 제가 느끼기에는 사회적으로 아무런 임팩트를 주지 못하는 활동들인 거예요. 그런 상황에서 2017년에 어떤 헤드헌터 분이 지금의 자리를 제안해 주셨는데 그 순간이 저는 운명적으로 느껴졌어요. 발달장애인들을 위한 문화예술, 제가 오랫동안 마음속에 가지고 있던 미션과 맞닿아 있었거든요.


황 : 처음에 NaAC에서 일을 시작하셨을 때 어떤 생각이 드셨나요?


류 : 이곳의 작가님들의 작품이 정말 훌륭하다는 생각을 했고, 그래서 동시에 화가 났어요. 제가 오기 전의 이곳은 문화예술 기관이라고 생각할 수 없는 곳이었어요. 기관 명칭에 Arts라는 말이 들어가 있었지만 전혀 문화예술 기관으로서 작동되고 운영되지 않는다고 생각했어요. 직원들이 거의 사회복지사였거든요. 그러다 보니 복지 기관 그 이상의 역할을 할 수가 없었던 거예요. 작가들을 예술활동을 하고 작품을 만드는 사람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기관에 다니며 복지 수혜를 받는 클라이언트로 인식했던 거죠.


황 : 예술인이 아니라 미술치료나 음악치료를 받는 고객 혹은 시설 이용자라고 여겼던 거네요.


류 : 그렇죠. 게다가 정부 지원금을 받는 것도 문화예술 프로그램에 대해 받는 것이 아니라 데이케어(Day care) 프로그램으로 받았어요. 달리 말하면 사회에 섞이기 힘든 장애인들에게 시간을 보낼 공간을 제공한다는 개념이었던 거죠. 그러다 보니 기관이 제공하는 기회들도 매우 미약했어요. 기껏해야 작품들이 어느 카페 화장실이나 건물 복도에 걸리는 수준이었죠. 처음 여기서 일을 시작했을 때는 그런 부분들로 인해 안타까움이 컸고, 변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죠.


황 : 제가 NaAC라는 기관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지금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시도를 통해 사회적인 임팩트를 만들어내고 있다는 인상 때문이었어요. 류정석 대표님의 영향이 무척 컸을 거라 믿습니다. 대표님께서는 어떤 비전을 가지고 지금의 단체를 이끌어가고 계시는지 여쭤보고 싶었어요.


류 : 저는 사실 문화예술 쪽으로 깊이 공부를 했거나 학위를 가지고 있지 않아요. 정치학을 공부했어요. 어렸을 때 피아노를 하긴 했지만 미술 쪽으로는 깊이 알지 못하고요. 다만 제가 집중하는 부분은 장애를 갖지 않은 예술가들에게 어떤 혜택과 기회들이 주어지는지 그리고 그들이 어떤 꿈을 꿀 수 있는지 관심을 가지고 보는 거예요. 가령, 시각예술가들은 갤러리에 전시하는 것, 레지던시 프로그램(작가상주 창작시스템)에 참여하는 것, 트레이닝을 하는 것, 그리고 스튜디오에 대한 접근권을 가지는 것 등을 목표로 하잖아요. 그걸 보면서 '우리 기관에서 활동하는 작가들은 그런 기회를 갖는가' 하는 물음을 계속 던지고 답을 찾으려고 하는 거죠.


황 : 비장애 예술인들이 갖는 기회와 장애 예술인들이 갖는 기회의 간극을 좁히기 위해 노력하시는 거네요.


류 : 그래서 안타깝지만 기존에 있던 직원들을 전면적으로 교체해야 했어요. 사회복지사가 아닌, 작가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 기회를 찾아봐줄 수 있는 현재 활동을 하고 있는 예술인들로 재구성하고 프로그램들도 다시 디자인했어요.


황 : 비장애 예술인들과 동등한 기회를 만들어 주기 위한 고민에 집중하시는군요.


류 : 우리 기관이 2020년에 다른 두 기관과 합치면서 NaAC가 시작이 되었어요. 시각 예술뿐 아니라 음악, 무용, 극장, 디지털 영화 등 다양한 예술활동을 지원하고 있어요.


황 : 정말 다양한 분야를 지원하네요. 비장애인들과 같은 환경을 제공하기 위해서 애쓰신다고 하셨는데 그런 과정들 속에서 장애라는 특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어떤 고민들이 있을까요?


류 : 물론 장애라는 특징이 있다 보니까 완벽하게 똑같은 프레임으로 똑같은 결과와 반응을 기대할 순 없어요. 가령 발달 장애가 있거나 신체적인 불편함이 있다면 그 특성에 맞춘 접근성을 고려하고 디자인해야겠죠. 제가 처음 일을 시작할 때는 장애라는 프레임만 너무 강하게 씌워져 있어서 다양하고 역동적인 기회 창출이 안되고 있었거든요. 2018년도에 첫 전시회를 홍콩에서 할 때 저는 발달 장애인 작가들이 저와 함께 홍콩에 갔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냈는데 그 당시 사회 복지사가 안된다고 하더라고요. 그들의 주장은 '발달 장애인들은 환경 변화에 취약하고, 그래서 비행에 큰 어려움이 있으며 돌발행동에 노출되어 있어 위험하다' 였어요. 그런데 저희가 지금까지 스무 명이 넘는 작가를 해외 활동에 동행시켰고, 결과적으로 전혀 문제없었어요. 장애라는 틀보다 예술가로서의 정체성을 더 강조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황 : 그렇겠네요. '장애인의 예술'이라는 인식에서 '예술가의 장애'라는 인식으로 바꾸는 일이 기능적으로 또 기회적으로 더 많은 사회적 영향을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2편에서 계속)



캐나다 장애 예술 단체였던 Indefinite Arts Centre, Momo Movement, Artistic Expressions이 합병되어 세워진 NaAC는 류정석 CEO를 통해 문화예술 기관으로 새롭게 포지셔닝 됐다. 장애예술에서 '장애'의 프레임을 축소하고 '예술'의 정체성을 강조함으로써 '장애'로 구분되지 않는 기회 창출의 장으로 만들겠다는 포부다. 


갈 곳 없는 이들에게 사회 복지 차원의 보살핌을 제공하는 기관이 아닌 예술인으로서 창의성을 인정하고 존중하며 이들이 가지는 고유한 세계에 대한 경험을 예술적 가치로 승화시키기 위해 노력한다. 보다 양질의 창작 활동을 돕기 위해 새롭게 디자인된 프로그램과 세계 각국의 다양한 기관들과의 활발한 협업을 통해 NaAC는 수직적으로 또 수평적으로 날개를 달고 뻗어나가는 중이다.



https://brunch.co.kr/@seoyoung-h/100




해당 칼럼은 에이블뉴스(https://www.ablenews.co.kr/) 칼럼 <황서영의 컬러풀 캐나다>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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