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으로 건물 밖을 나간지가 딱 21일째, 즉 3주가 되었다.
뉴욕에 막 확진자가 늘어날 때만 해도 수업이니 인턴십이니 이것저것 변화가 워낙 많았다보니 앞으로 다가올 일들에 대한 불안감이 컸었다. 한국 들어가야 하나 고민도 많이 했었고.. 하지만 인간은 적응의 동물인지라 시간이 지나면서 막연한 불안감도 잦아들고 일상도 많이 안정기에 접어든 것 같다.
매일 쿠오모 주지사의 라이브로 피크를 찍는 코로나 상황을 보고 있는 게 일상이 되어버리긴 했지만 오늘만큼은 집콕 생활에서 찾은 좋은 점들을 적어보려고 한다. 긍정적인 생각이 제일 중요하니까!
집 밖을 안 나가다보니 한동안 만나지 못했던 예전의 내 모습들을 다시 만나는 것 같다.
먼저 공책에 매일의 To-do-list 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난 글씨는 별로면서 뭘 손으로 쓰기를 참 좋아하는 스타일이라 초등학교 때부터 대학교에 이르기까지 매년 다이어리를 써왔다. 매일 아침 오늘의 할 일을 쓰고 다 한 일을 지워가는 재미, 달력란에 일정을 정리하고 꾸며가는 재미, 그리고 그걸 위한 각종 공책과 필기도구를 사는 재미에 살았던 시절이 있었더랬다 ㅎㅎ 하지만 삶의 많은 것들이 디지털로 옮겨오면서 창업시절부터는 Wunderlist 와 구글 캘린더로 일정 및 할일을 관리해왔다. 사실 할 일이 너무 많고 변화가 무쌍할때는 디지털만한 게 없긴 하지만 그래도 공책 시절의 낭만이 늘 그리웠는데, 이번 기회에 다시 공책을 쓰기 시작했다. 되게 사소한데 이상하게 동기부여가 된다. 입시 준비하던 시절의 낭만이랄까?!
시간을 생산적으로 보내야만 한다는 스트레스를 버리니 마음이 편해졌다. 백년만에 게임도 하고, 세상에서 가장 쓸데없다는 비누 깎는 ASMR도 마음껏 본다. 제일 좋은 건 다시 음악을 듣는다는 것이다. 사실 최근 몇 년간은 음악조차도 일할 때 노동요로만 듣게 되는 거 같아 마음이 괜히 안 좋았는데 요즘엔 종종 음악을 듣고 감상에 젖기도 하는 게 좋다. 각종 전자컨텐츠에 밀려 한동안 잡지 않았던 종이책들도 다시 읽기 시작했다. 내킬 때 언제든 30분씩 명상도 하고.. 생각해보면 인생에 이만큼 시간은 많고 부담은 없을 때가 언제 또 있을까 싶다.
얼마 없는 재료로 밥도 참 이것저것 야무지게 잘 해먹는다. 난 요리를 할 때만큼은 손이 너무 느려서 스스로도 답답해서 요리를 못 하는 편인데, 요즘엔 시간도 많으니 원하는 만큼 천천히 마늘을 썰어도 되는 게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 ㅎㅎ 은근히 힐링이다. 온라인으로 주문해 먹는 와인의 행복은 말할 것도 없고... 매일 무슨 와인 먹을지가 너무 기다려진다.
전례가 없던 상황을 함께 겪다보니 학교 친구들과도 전우애가 쌓이는 기분이다. 수업이니 술자리니 모든 게 Zoom 이나 화상통화를 통해 이뤄지지만 어떤 면에서는 더 가까워지는 느낌. 친구들 집이니 각자 어떻게 사는 지도 더 잘 알게 되고 말이다. 모든 대화가 코로나 얘기로 시작하는 건 어쩔 수 없지만, 그래도 모두가 함께 겪는 어려움인만큼 동지애는 더 강해지는 것 같다.
뉴욕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싶다. 혐오범죄도 있지만, 혐오에 반대하고 사랑을 나누려는 사람들도 많다. 가끔 택배를 받으러 내려가야 해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엘리베이터를 타면, 괜히 내가 더 구석에서 조용히 있는 경우가 많은데 그 와중에도 친절하게 인사를 건네고 오히려 걱정해주는 사람들을 만날 때면 마음이 따뜻해진다.
매일 저녁 7시만 되면 의료종사자들을 응원하기 위해 다같이 환호하는 모습도 그렇고!
물론 이 와중에도 바이러스로 힘들어 하고 있는 사람들, 치열하게 싸우고 있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안타깝고 괜히 현실이 답답하게만 느껴지지만, 얼른 이 상황이 해결되기를 기도하면서 나는 내 자리에서 응원을 보낼 수 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