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어떻게 언어를 깨우치는가
출산 이후 다양하게 읽은 육아서 중에서 내가 가장 감명깊게 본 책은 <부모의 말, 아이의 뇌: 두뇌 발달과 학습 능력을 결정짓는 3천만 단어의 힘>이다. 이비인후과 의사인 저자는 학습력이 강한 아이들과 그렇지 못한 아이들을 비교했을 때 결정적 차이는 바로 영유아 시절의 단어, 말에 대한 노출도에 따라서 달라진다는 것을 실증적으로 보여준다. 실제로 수년에 걸친 임상 연구를 진행하고, 성장한 아이들을 추적 연구하기도 한다. 꼭 이 책이 아니더라도 나는 <보이지 않는 중국>을 통해서 아이가 말을 못 하기 때문에 아이에게 말을 걸지 않는 무지한 육아가 얼마나 아이에게 치명적인지를 잘 읽어왔기 때문에 어릴 적부터 말을 계속 많이 하려고 노력했고, 남편에게도, 조부모에게도 비슷한 환경을 요구하기도 했다. 이제 두 돌이 갓 지난 아이의 언어가 갑자기 지수승으로 성장하기 시작하고 있다. 아이가 말을 배워가는 것을 보면서 느낀 점들을 기록해보고 싶다.
언어는 기본적으로 사회적인 작용을 하고 싶은 인간의 특징 상 본능적인 것 같다. (실제로 스티븐 핑커는 언어는 본능이라고 주장하는 책도 20년 전 경에 출간한 적 있다.) 아이가 처음으로 말을 한 것은 바로 50일 경의 옹알이. 목도 잘 가누지 못하는 아이가 이때 가장 많이 한 말(발음?)은 바로 ‘오구’. 이때 오구를 맞받아 쳐주니까 오구만을 5분 정도 한 적이 있다. 오구는 의미를 지니고 있지는 않았지만 우리는 짧고 경쾌한 오구, 길고 애틋한 오구를 서로 보내며(?) 마음을 전했다.
나는 한국어를 습득하게 된 과정의 기억은 없지만 어릴 적 영어를 습득한 기억은 있다. 아무런 뜻을 알 수 없는 언어의 환경 속에서 내가 했어야 하는 일은 눈치를 최대한 빠르게 채는 것이었다. 여러 명의 대화가 무엇에 관한 것일지에 상황을 보고 추측했다. 단어 하나를 알게 되면 그다음 단어를 추측해 보고, 표정이나 반응으로 맞춰보고. 이것은 언어를 습득하고자 하는 의지는 아니었고, 인간으로서 자연스레 나에게 대화를 거는 사람에게 제대로 답하고 내 주변의 사람들의 대화를 이해하고 싶은 욕구 때문이다.
간혹 다양한 육아 질문 중에 세이팬이나 노래를 틀어주는 것은 언어 발달에 도움이 안 되는지? 와 같은 질문들도 있다. 하지만 언어를 그림 같은 것에 매칭해 가면서 이해하는 건 어느 정도 체계가 잡힌 뒤의 일. 최초로 언어를 세기게 되는 과정에서는 대화가 필요하다. 누군가에게 반응하는 모습을 통한 추측. 상황을 보면서 추측해 보고, 맞추고, 틀리는 과정을 반복해야 한다.
아이가 언어를 조합하게 되는 순서는 의성어, 단어들, 단어의 조합, 그리고 이후 문장으로 나가게 된다.치카푸카나 싹둑싹둑 같은 의성어, 의태어는 일반적인 단어들보다 빠르게 이해한다. 언어 그 자체가 행위와 연결되기 쉬울수록 외우기 쉬운 것이 당연한가 보다.
이불이나 책, 자동차 같은 단어들을 알게 된 다음에는 ‘누구의’ 소유격 수식을 시작하게 된다. 아빠 차, 아가 이불 등. 마지막 문장형은 최초로는 주로 긍정형, 부정형 문장들을 시작한다. ‘아가 이불 아니야.’ 혹은 ‘아가 맘마 아니야.’처럼 소유가 아니거나 연결이 안 되는 것에 부정을 입힌다. 물론 하기 싫은 것에도!
오늘은 처음으로 아가가 ‘케이크 먹고 싶어요 ‘를 이야기했다. 한 달 전쯤만 해도 케이크 케이크만 반복하면서 이야기했을 텐데 먹고 싶어를 또렷하게 이야기한 것이다. 가끔 미래형(밥 먹고 잘 거야) 혹은 과거형(무너졌어 찢어졌어) 넘나들며 이야기할 때엔 시제에 대한 것도 이렇게 자연스럽게 넘나들수 있구나가 참 신기하다.
언어가 생긴다는 것은 아이에겐 어떤 의미일까. 언언어가 생기면 엄마와 가족, 친구와 소통도 가능하고 자신만의 세계관을 만들어낼 수 있는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는 뜻이다. 이제 점점 역할 놀이를 하려고 하는 아이에게 언어는 세계를 더욱 촘촘하게 만들어주는 크나큰 무기이다. 놀이의 세계로 더욱 깊이 초대할 수 있고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지금 아이는 주로 소방관 놀이나 주차장 만들기 놀이, 기차나 차량 관련된 놀이, 의사 놀이를 하는데 의성어와 표현들로 자신이 원하는 역할 놀이를 더욱 실감 나게 하고 있다.
언어본능만큼이나 장난을 치고 상대를 웃기려는 본능 또한 인간의 특질임을 깨닫는다. 배변 훈련용 변기 앞에서 끄응 끄응 연기를 하는 모습이나, 내 옷이나 바지를 입으면서 까르르 거리는 모습, “가~~~”라는 말을 딱히 감정 없이 으름장 놓듯이 의도를 갖고 하는 모습. ”밤이면 이러면 안 돼~“라고 타이르면 ”지금 낮이야 “라고 뻥을 치는 모습. 언어는 개념화를 의미하며 내 눈앞에 보이지 않는 것들도 뇌 속에 저장하고 시각화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한다. 의도를 갖고 발화할 수 있게 되고 발화를 자신이 조절하게 된다. 이 모든 것이 24개월 만에 일어난 일이라니! (아직 아이는 두 발을 동시에 점프하는 것을 잘하지 못한다). LLM 만큼이나 - 오히려 더 - 신기한 것이 바로 인간의 발달이지 않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