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똑똑, 들어가도 되나요?
아이와 처음으로 쿠알라룸프르(말레이시아)에 왔다.
비행시간이 길어서 걱정했지만, 제법 의젓하게 비행을 마치고 오늘 첫 행선지로 Bird Park에 갔다. 물가가 저렴한 말레이시아에서 무려 90 링깃(한화 3만 원 조금 넘는 수준) 입장료를 받는 공원. 더위를 등에 머금고 들어간 그곳은 지금까지 내가 갖고 있는 동물원에 대한 프레임을 뒤바꾸는 곳이었다.
규모가 제법 큰 Bird Park에는 내가 모르던 새들이 무척 많았다. 오세아니아와 가깝기도 하고 관계가 좋은 말레이시아에서는 뉴질랜드에만 있는 다양한 새들을 데리고 오기도 했다. 열대 기후 국가 답게 다양한 큰 부리새들, 따오기와 화려한 공작들이 있었고, 두꺼운 털이 군데군데 빠진 타조들도 존재감 있게 있었다. 전반적으로 우리나라에서 보는 새들보다 다 덩치가 큰(?) 느낌. 서식하고 있는 개체수는 수천 종에 이를 것 같았다.
규모와 종의 다채로움에서도 압도적이었지만, 가장 큰 차이는 이곳은 일반적인 동물원 형태가 아닌 새들의 생태계를 느슨하게 가두고 있는 공원의 형태였다. 새들은 새장 안에 있지 않았다. 그들은 수 헥타르 규모의 생태계 안에 노닐고 있었다. 그들을 이 공원에 머무르게 하는 장치는 하늘 높이 있는 그물망.
보행자의 공간에 새들도 놀러 온다. 사실 이 개념도 그들의 서식지에 우리가 잠시 놀러 갔다는 설명이 더 맞겠다. 유모차로 아이를 이동시키는 찰나에 공작새가 화려한 꼬리를 펼친다. 그리고 큰 소리로 울음을 보이기도. 공작새 입장에서는 사실 팬서비스 해주는 것 같은데, 우리 아이와 같은 겁이 많은 유아들은 울음을 터트리기도 한다.
인간들의 휴게 공간에도 황로가 한 마리씩 앉았다. 코코넛 워터를 맛보고 싶으셨다던 아버지의 명을 받들어 코코넛 3개를 사 왔는데, 황로가 계속 코코넛을 노리며 아이에게 다가왔다. 불과 70cm 정도 거리를 두고 서로를 눈을 깜빡이지도 않고 쳐다보는 상황. 아이는 울음을 터트리며 새에게 '저리 가요~~'라고 수십 번 외쳤으나, 황로는 눈을 감지도 움직이지도 않고 계속 아이를 쳐다봤다. 새와 이렇게 오랫동안 대치한 적이 없던 아이는 계속 울고야 말았다.
공원의 한켠에는 원숭이들이 수십 마리 지나가기도 했다. 낮은 나무에 매달려 쉬를 하는 원숭이의 모습을 아주 가까이서 지켜볼 수 있었으며, 타이밍이 좋았더라면(?) 맞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지금까지 갔던 동물원들에서 느꼈던 동물의 힘없음, 좁은 생활공간, 콘크리트 바닥에 대한 아쉬움 등을 하나도 느끼지 않은 순간이었다. 새장에 있는 일부 새들은 먹이를 받아먹기도 했지만 다들 돌아다니면서 냇가에서 물을 마시고 벌레를 찾기도 했다. 공원을 찾아오는 수많은 관광객들을 두려워하지 않는 그들은 은근히 친근하게 먼저 다가오기도 하였다.
이렇게 맺게 된 동물과의 관계는 동물원의 유리창 너머로 맺게 된 관계와는 무척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정된 프레임 안에서 완벽하게 구분된 객체. 각자 고향은 다 다르지만 비슷한 좁은 환경에 살게 되어, 우리는 그들을 만났을 때 계속해서 그리던 그 동물이 맞는지, 그 종으로의 특질이 무엇인지 더 뚜렷하게 느끼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우리가 그들의 생태계로 걸어 들어가게 되었을 때엔, 그들에게 위협감을 느꼈을 때, 나를 향해 우는 소리를 들었을 때 그들의 생물로서의 해상도는 더욱 높아진다. 사람의 서사를 이해할 때에도 모두 동일한 프레임을 적용하기 보다, 그들이 살아온 그들의 생태계 안에서의 모습을 그대로 받아들일 때, 더 정확하게 그 사람을 이해할 수 있는 것 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