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더욱 충만하게 만드는 태도

네 살배기식 표현법

by 윤서영

아이가 말을 시작한 뒤로 축복의 시기를 보내고 있다. 미운 네 살(?)이라고도 했지만 아직까지 미운 모습은 크게 없다. 날로 어휘력과 표현력이 바뀔 때, 귀여운 거짓말을 할 때, 타인에게 말을 서슴없이 거는 것을 볼 때 깜짝 놀라곤 한다. 가장 행복한 순간들은 아이가 아래와 같은 표현을 할 때이다.


"엄마 보고 싶었어."

"고마워."

"사랑해."


아이는 매일매일 사랑과 고마움의 표현을 한다. 자기 전에 대화할 때에도 '할머니가 배즙을 만들어주셨어, 고마워'라는 회고를 하기도 하고, 삼시세끼 밥을 해주는 것에도, 당근으로 중고 장난감을 구해주는 것에도 고마움을 표현한다. 인간이란 원래 이렇게 고마움을 잘 표현하는 존재였던가! 아이의 표현으로 나는 충만함을 매일 느끼고, 표현의 중요성을 더 체감하게 된다. 그리고 나 또한 표현을 더 많이 하려고 한다. 감정 표현에 정말 박했던 남편 또한 조금씩 변해가고 있는 것을 느낀다.


아이의 표현력에 감사함을 느끼기도 하지만, 동시에 이것이 보편적인 네 살 아이의 모습인지, 나도 그랬는지, 다른 아이들도 그러한지에 대해서 궁금증이 들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분명한 건 우리는 아이일 때 더 많은 사랑의 표현을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왜 사춘기를 거쳐 어른이 되어가면서 이러한 표현을 덜하게 되는 것일까? 고마움과 미안함, 그리고 사랑을 숨기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유는 두려움 때문이다. 내가 표현하는 것만큼, 상대가 나에게 느끼는 감정이 동일하지 않을 수 있다는 두려움. 아이는 매일매일 안정적인 관계에 둘러싸여 사랑 속에 풍덩풍덩 헤엄치며 생활한다. 학교와 집단생활을 거치면서 우리는 덜 안정적인 관계 속에 속하게 되고, 그 환경들은 모두 우리의 가정과 같이 무조건적인 사랑을 주는 곳은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다. 사랑의 온실에서 나가게 된 다음에는 자기 방어 기제로 그러한 표현이 박해질 수도 있다.


가족과 같은 관계에서는 두려움보다는 무뎌져서 일 수도 있겠다. 서로의 관계 속 배려가 익숙해서,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되어서. 혹은 배려 뒤에 어떠한 행동들이 있었을지 상상해 보기에 우리의 관찰력이나 집중력이 많이 떨어진 것일 수도 있다. 상대방의 변화나 마음을 알아채는 데에는 생각보다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 거기에 에너지를 쏟기에 우리의 종합적인 에너지가 떨어져서 일 수도 있고, 도파민이 넘쳐나는 환경 때문일 수도 있겠다. 혹은 더욱 슬프게는, 그럴만한 자발적 필요성을 못 느껴서일 수도 있겠다.


아이의 표현들과 그것으로 인한 충만함을 팀원들과의 점심시간에 공유했다. 팀원이 "그럼 저희 팀도 해볼까요?"라고 이야기를 해서 사랑을 어떻게 표현하지? 하고 순간은 갸우뚱했었다. 그리고 약간 낯간지럽다고 생각하고 얼버무렸는데, 일하는 관계에서도 더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은 분명히 있을 것이다.


지금 읽고 있는 데이비드 호킨스의 <놓아버림>에서 보다 큰 나의 단계에 속하는 '받아들임'의 단계에서, 사랑하는 방식에 대한 변화가 서술된다.


이 우주에서 내 눈앞에 있는 사람들 모두 사실 최선을 다하고 있으며, 이 순간에 각자 갖고 있는 것만으로 그렇게 하고 있음을 안다. 모든 생명체는 그 완성을 향해 진화하고 있고, 우리의 삶은 우주와 의식을 지배하는 법칙과 맞아떨어지고 있다.

이 상태에서는 사랑이 어떤 것인지를 정말로 이해하기 시작한다. 받아들임 수준에서 사랑은 안정된 상태, 즉 관계가 영속적인 상태로 경험할 수 있다. 사랑의 근원은 우리 내면에 있으며, 그 사랑이 우리의 본질에서 뻗어 나가 타인을 품는다고 본다. 욕망의 상태에서는 이와 대조적으로 "사랑에 빠진다"라고 하면서, 행복과 사랑의 근원이 우리 외부에 있다고 생각한다. 욕망 수준의 낮은 에너지 상태에 있으면 사랑받기를 기대한다. 사랑은 우리가 '얻는' 어떤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받아들임의 수준에서는 우리의 사랑하는 상태가 존재의 본질에서 자연스럽게 뿜어져 나온다. 자각에 장애가 되는 것을 대부분 항복했기 때문이다.


예전 팀원 중에서 칭찬을 항상 갈망하던 친구가 있었다. 나는 그 팀원의 그런 마음을 알아서 더 신경 써서 칭찬을 해주고 알아주려고 했던 편이었는데, 그러한 노력이 그 팀원에게는 크게 와닿지 않았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친구는 자신이 표현한 '칭찬'이 아닌 무조건적인 사랑을 바랐던 것 같다. 어떠한 순간에서도 자신을 지지해 주는 강한 유대의 느낌, 강한 사랑의 흐름과 에너지.


익숙해진 것들을 생경하게 만들고, 상대방의 천진함을 들여다본다면 우리는 서로에게 더욱 충만한 표현을 할 수 있다. 어떠한 것도 당연한 것은 없다. 각자의 우주 안에서 최선을 다해 진화해 가는 상대방을 알아보자. 그리고 최대한 자주 표현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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