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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서영 Sep 16. 2018

전시장 vs 마켓  

미술을 소비의 대상으로 만드는 기획자, <더 스크랩>의 홍진훤

우리나라 예술 분야에서 시장이 작아서 생각할 때마다 먹먹해지는 시장이 몇개 있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연극) 공연시장. 
인구 대비해서 우리나라는 정말 큰 영화시장을 갖고 있는데, (=심지어 몇년 전 일본 영화시장 사이즈를 넘어섰다고 한다.) 이러한 현상에서 대체제인 연극/뮤지컬 공연 시장은 작아질 수 밖에 없는 것도 같다. 
3-4년 전 기사에서 서울에 200여개가 있던 소극장이 130여개로 줄었다고 하고, 연극+뮤지컬의 시장 규모를 336억으로 파악하고 있었다.  2017년 한국 영화 시장규모는 2.3조. 연극+뮤지컬이 영화 객단가의 3~7배 정도임을 감안한다면, 실제로 우리나라 사람들이 연극/뮤지컬 공연을 보는 횟수 자체는 영화 300편 볼 때 한번 정도 꼴로 추산할 수 있다. 

둘째로는 미술시장이다. 
미술은 사실 한국 사회에서는 적극적으로 소비하지 않으면 정말 가까이 하기 쉽지 않은 대상이다. 미국이나 유럽의 미술관들을 가면 항상 만날 수 있는 아이들이 우리나라의 미술관에서는 찾기 힘들다. (물론 방학때의 숙제 수요는 예외이지만...) 나도 대학생이 된 이후로 처음으로 미술관에 가기 시작했으며 종종 전시들을 찾아가곤 하지만, 사실 미술에 관심이 없거나 어떻게 소비해야 할지 모르는 수많은 사람들에게는 가까이 하기 어려운 대상임은 틀림없다. 

전시 시장도 하물며 이러한데 미술품 거래 시장은 어떠할까? 
우리나라는 GDP 대비 미술 시장의 규모는 0.02% 수준으로, 선진국 평균인 1%의 1/5 수준이라고 한다. 현재 미술품 공급과 소비가 몰려있는 영국/미국/중국의 경우는 각각 0.5%, 0.2%, 0.1% 수준. 

대림미술관/디뮤지움이 인스타그램 보급의 파도를 잘 타고 '미술 전시'를 핫한 데이트 컨텐츠로 포지셔닝 시켜 2030의 루틴한 삶속에 어느정도 침투했다면, 금요일에 강의를 들은 홍진훤님은 '미술 구매'의 경험을 건드려보았다. 갤러리에 들려서 마음에 드는 작품을 픽업해서 집에 가는 경험을 보급화 해본 것. 그것이 <더 스크랩>. 

<더 스크랩>은 이제 막 3회차를 맞이한 사진 마켓이다. 
1회, 2회는 신설동의 정말 out of nowhere에서 진행을 했었고,
3회는 서울역 플랫폼284에서 진행했다. 

<더 스크랩>의 시스템은 간단하다. 
100명의 사진작가가 A4 사이즈의 작품 10개를 출품한다. 
이렇게 모인 1,000개의 작품이 정말 랜덤하게 배열된다. (=배열 순서의 비밀은 강연에서 공개되었는데.. 용량 순이었다고..)
작품에 대한 설명, 작가가 누구인지에 대한 설명은 없다.
한마디로 정말 작품 그 즉자체로 감상이 된다. 


입장하는 고객은 5장 혹은 10장 단위로 사진을 구매할 수 있다. 

구매할 때에는 번호를 적을 수 있는 메모지를 하나 받고, 
1번부터 1,000번의 넘버링이 부여된 사진의 번호를 쓰면 된다. 


사진을 살 작정으로 왔기 때문에, 천개의 사진 중에서 내 짝은 누가 될지 엄청 고민하면서 고르게 된다. 


그래서 1층의 현상소에서 자신이 고른 사진들을 확인하며, 픽업해가는 시스템. 

사진들의 출처는 대부분 더 스크랩 인스타그램입니다. 

<더 스크랩>의 기획자 진훤님은 공학을 전공했지만 사진작가를 업으로 삼고 있고, 

예전부터 미술, 더 좁게는 사진이 상품으로 거래되는 것에 큰 관심을 갖고 있었다. 

미술 시장을 키우려면 젊은 고객에게 미술을 사는 경험을 작게나마 선사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 초석을 가장 대중적인 사진 장르부터 시작해보았다.  

9/14 스틸북스 강연에서 만난 홍진훤님. 


"가장 상업적인 시스템들을 갖고 와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시작할 때 나눠주는 번호를 적을 수 있는 메모지와 연필. 우리가 한번쯤은 가본 이케아에서 진행하는 UX이죠." 

이케아 가구들에 배열된, A4 사이즈의 사진들은 뜨겁게 팔리며 2030들에게 소장되었다. 


1회때에는 1500명 정도가, 2회때에는 2000여명이 넘게 신설동의 Out of nowhere을 방문해주었고,
3회 때에는 그에 몇배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사진을 고르느라 여념이 없었다. 


더 스크랩을 알게 된 시점부터 너무나 만나고 싶었던 기획자(팀). 
스틸북스에서 너무나 은혜롭게도 홍진훤님을 초청해주었고 - 저녁을 걸렀어도 너무나 배부르게 들었던 2시간의 기록. 인상적이었던 Quote들을 여과없이 담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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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구매한, 내가 큐레이션 한 사진.
"1-2회차 <더 스크랩>에 가장 많이 올라왔던 후기는 마지막 픽업 코너에서 자신이 고른 5개의 사진이 로딩되는 화면이예요. 아, 열심히 DP한 전시 사진은 왜 안 올라오고 이 로딩화면이 올라올까? 고민해보니까 결국 자기만의 취향이 담긴 큐레이션이라는 점에서 기록하고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게 아닐까 했어요. 1,000장 중에서 내가 고른 5장의 조합. 그 조합들을 서로 비교해가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포스트스크랩' 모임들이 생겨나기도 했구요."

내가 고른 '사진'을 확인하는 '모니터'를 다시 '사진'으로 찍다.


# 사진 DP의 기획 
"1,2회차 더 스크랩의 모든 DP 가구들은 이케아 가구들을 사용했어요. 더 스크랩에 올만한 고객들을 떠올려보았을 때 20-30대 여성들이 가장 큰 타겟이었는데, 결국 이들이 산 사진들은 집으로 가면 어디에 놓이게 될까? 떠올려보았을 때 그들이 사는 환경에는 이케아 가구가 제일 많을 것 같더라구요. 형광등 조명, 그 밑에 흰색으로 있는 이케아 집기들. 구매 된 뒤 그 사진들이 실제로 걸리게 된 환경을 그대로 재현했어요."

# 팔릴만한 작품 vs 내가 찍고 싶은 작품
"백명의 작가 중에는 정말 유명하신 분들도 많아요. 그래도 무기명으로 전시되는 시스템을 고집하고, 판매되는 사진들을 판매되는 만큼 비례하여 개인작가에게 이익을 귀속시키는 게 아니라 전체 판매 금액을 1/100으로 나누는 시스템을 설계했어요. 작가분들에게 '사진을 파는 마켓을 할거예요.'라고 하면 어느샌가 팔릴만한 작품들만 출품을 하시려고 하더라구요. '이번에 찍은 꽃 사진, 정말 예쁜데 그거 낼까?'라고 하면... 아, 팔릴 만한 사진말고 정말 그 작가의 작품색이 드러났으면 좋겠는데. 그래서 부담없이 1/N로 받아가는 시스템을 만들었어요. 그랬더니 정말 희한한 작품들이 많이 나왔죠. 그냥 자기 마음가는대로 찍는거예요. 기상천외한 것들이 많이 나왔죠."

# 사진의 복제성은 사진의 값어치를 떨어트리는가? 

"사진은 판화와 같이 복제가능한 예술품이어서, '에디션' - 내가 동일한 사진을 몇 판까지 찍어낼 것이냐,가 작품의 가격에 큰 영향을 미쳐요. 사진은 기본적으로 무한대로 인화해낼 수 있는 데이터인것인데, 시장에서는 고가에 거래되고 싶으면 에디션의 수를 아주 적게 제한하라고 하죠. 저는 이러한 에디션 개념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예술시장이 이상하다고 생각했어요. 사진은 복제성이 가장 큰 특징이자 장점인 매체인데, 예술로써 값어치 때문에 그 복제성을 거세한다는게 부자연스러웠어요. 그래서 작업을 하는 개인 작가로는 에디션에 맡서서 싸우고 있어요. 

물론 이 문제는 더 스크랩을 기획할때에도 개별 작가들과의 라이센스 문제로 다루게 되는 내용이었죠. 더 스크랩은 에디션 개념을 '더 스크랩 기간동안만 무제한 에디션을 갖고, 그 기간 이후에는 에디션을 폐기한다'라는 새로운 개념의 에디션으로 접근했어요. 복제되는 숫자로 접근하는 개념이 아닌, 기간제 개념으로 접근하는 에디션이죠." 

# 기존 시스템 A에 다른 시스템 B를 덧대어서는 A를 벗어날 수는 없다. 
"<더 스크랩>의 흥행 이후로 부산의 BAMA(부산 국제 화랑 아트페어) 행사의 일부를 기획한 적이 있어요. BAMA는 이미 업력이 꽤 된, 기존 고객들이 많은 행사였죠. <더 스크랩>에 들뜬 저는 비슷한 포맷을 들고 내려가서 열심히 준비를 했었는데요...
결과는 대 참패였어요. 작가들 섭외하고 잔뜩 짐을 싸서 내려간 부산에서는 고작 작품 2개 정도밖에 팔지 못했어요. 이미 BAMA는 그 시스템을 소비하는 고객층들이 확고한 곳이었고, '전시'라는 틀이 있었는데 그 안에서 <더 스크랩> 같은 구매하고 싶은 마켓을 만들 수는 없더라구요. 

특정 시스템에서 벗어나려면 아예 제로베이스에서 시작해야 된다는 결론을 얻었어요. 그 시스템 안에서 시작하면 안되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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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외에도 정말 많은 경험들의 이야기를 들었는데 (무려 슬라이드 183page를 준비해오신 은혜로운 강연) 여기서 펼치기엔 정말 끝도 없어서 마무리를 해가자면, 

어릴적에는 시장이라는 것을 동태적인 것으로 바라보지 못했다. 
시장은 나의 범위 밖에 존재하며, 어떠한 시장에서 Play할 것인가?의 질문에서 가장 중요한 답은 현재의 시장 규모와 앞으로의 시장 규모. 그 시장이 그 시장을 이루고 있는 공급자들에 의해서 원래의 한계를 뛰어넘어 폭발적으로 성장하거나, 빛을 발하지 못하고 작아질 수도 있다고 생각하지 못했었다. '시장'은 내가 작성하는 PPT 슬라이드에서 하나의 도표와 숫자로 서술되는 무엇이었고, 글로벌 전문가들의 인터뷰나 인사이트 기관에서 내놓는 전망 자료에 존재하는 무언가였다. 

하지만 실제로 시장은 GDP나 국가의 거시적인 경제계획 이외에도, 그 안에서 활동하고 있는 수많은 공급자들의 영향을 혁혁하게 받는다. 진훤님은 현재의 20,30대들이 미래의 미술구매자가 되기 위해서는 지금부터 미술 구매의 근육을 키워야 한다고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B2C 시장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이기도 한 '취향의 역진성(=고급 취향을 한번 소비하게 되면 다시 저급 취향으로 내려가지는 못한다)'를 역설하기도 하였다. 

영국이 지금 세계 미술시장에서 현재의 위치를 차지하게 된데에는 몇몇의 공급자 (예: 데미안 허스트)의 공로가 그래도 20% 이상은 차지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드는 것 만큼, 어떠한 스타 플레이어의 등장이 그 시장 자체를 폭발적으로 성장시킬 수 있다고 본다. (가장 가깝게 느껴지는 사례로는 슐츠의 스타벅스, 혹은 유럽에서 크래프트 맥주 시장을 열어가고 있는 Brew Dog.) 

B2C 시장에서는 고객 한 명 한명에게 교육적인 경험을 제공해주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Play이다.
그 활동의 깊이와 임팩트로 시장은 급진적으로도 성장할 수 있다고 믿는다. 오늘도 구매될 수 있는 미술, 판매할 수 있는 미술을 고민하고 계실 진훤님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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