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가고 다시 가도 좋은 도쿄
15년 가을부터 도쿄는 일 년에 한 번 정도씩 가고 있다. 맛있는 집들이 가성비 좋게 즐비한 점, 높은 빌딩이 가득한 시내의 어떤 길을 걷더라도 지치지 않고 걸을만한 환경이 조성되어있을 것이라는 믿음, 상냥하고 친절한 접객, 또또 또또 가더라도 내가 못 본 동네가 한가득이라는 것을 알기에.
다분히 즉흥적으로 떠난 이번 여행도 결국 준비할 틈이 없었기에, 마음 편히 도쿄행을 끊어서 왔다. 매번 나리타가 아닌 하네다로 갈 걸 결심하고 아침 비행기는 더 이상 안 타기로 마음을 먹지만, 이번에도 욕심 상 07:45 비행 편을 놓칠 수 없었고 연휴의 중간에 출국하게 되어 인천공항 최대 수속객인 일일 20만 명의 뉴스에 쫄아 새벽 3시 심야버스를 타고 도쿄로 날아갔다.
이번 여행은 최대한 내가 해보지 않은 것들, 가보지 않은 곳들을 가보고자 했다. 에어비앤비 트립도 많이 뒤지고, 가기 전에 지인들한테 좋아하는 곳들을 물어보고. 지도 상으로 뜨는 랜덤한 장소를 방문하고.
1. 도쿄 스탠딩 코미디 쇼
에어비앤비 트립으로 예약하여 가게 된 스탠드업 코미디 쇼. 골덴 가이는 많이 갔었는데 거기서 느껴지는 주인장들의 포스가 대부분 문인이거나 연극인, 코미디언이라는 얘기를 들어 도쿄에는 인디 코미디 무대들이 많은 것 같아 예전부터 가보고 싶었는데 - 알고 보니 이 쇼가 유일하게 영어로 진행되는 쇼라고 한다. 호스트이면서 스탠드업 코미디를 진행하고 늦은 바텐더를 위해 음료도 만드는 Yoshi는 원래 ‘샐러리맨’이었다가 영국으로 떠나서 코미디와 영어를 공부했다고 한다.
Yoshi의 코미디 주제는 일본이었다. 일본인들의 종교, 회의를 끊임없이 하는 문화, 은유적인 커뮤니케이션부터 작게는 전 세계적으로 특이하게 발전한 비대 기술(?) 등등을 꼬집으면서 일본이면서 동시에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해학미 넘치게 꼬집었다.
일본의 종교는 신토이즘인데, 정확히 정의하기는 어렵지만 모든 자연, 조상, 나아가 사물에 신이 깃들여져 있다는 느낌의 종교로 이해된다. 동네마다 기릴만한 무언가의 신사가 있는 점 - 신은 멀고 먼 존재가 아니라 내 지역이나 마을에 아주 가까이 있는 누군가라는 것이 다른 종교와의 큰 차이로 느껴졌다.
음, 메이지 진구도 14년 만에 방문하게 되었는데 거기서도 이러한 종교적인 느낌을 많이 받을
수 있었다. 과거의 천황도 결국 우리 동네의 신이 되는 느낌인데 - 그 우리 동네의 신은 예의 바르게 섬겨야 하는 대상이기도 하지만 컨트롤하기 어려운 극단적인 외부 환경 안에서도 나 스스로가 매일매일 의지할 수 있는 일상적인 신이기도 했다.
Yoshi가 들려준 은유적인 커뮤니케이션의 예는 바로 영어로 된 I Love You를 번역할 때 극명하게 드러났는데, 이렇게까지나 직접적인 표현을 일본에서는 써본 적이 없어서 번역가는 “아 오늘 밤 불빛이 참 아름답네요”로 애잔하게 번역했다고 한다. 오늘 밤 불빛이 아름다운 건, 날씨나 분위기나 음악때문에가 아니라 당신과 함께 있기 때문. 이라는 많은 경우의 수 중 한 가지를 잘 짚어낼 수 있을까...
2. 재즈바 Pit Inn
역시나 재즈 씬이 좋다는 도쿄라는 건 익히 들어와서 재즈 바를 몇 군데 찾아보고 가까이 신주쿠의 Pit Inn에 다녀왔다. 3500엔의 입장료를 내고 들어간 그곳은...!!
생각보다 나이가 많은 (5-60대)의 연주자와 역시나 생각보다 나이가 많은 (4-50대)의 관객이 매우 정중하게 만나는 공간. 재즈바를 많이 가본 것은 아니었지만 마치 공연장의 좌석들처럼 일렬로 쫙 무대 쪽을 향한 관객석들은 몹시 예의 바르고 가지런했다. (공연 중간에 이야기하는 것도 분위기상 금지)
이들의 연령이나 엄숙한 분위기보다 더 놀라웠던 것은 이 연주팀의 나이 대비 연주의 속도감이 너무나 빨랐던 것. 연주라는 것도 결국 신체능력으로 하는 것인데 하물며 스타크래프트 반응속도도 30대부터 떨어져서 20대 이기기 어려운 마당에 이들은 어떻게 저렇게 격하게 초를 가르는 비트와 스윙을 표현할 수 있단 말인가. 이들은 20년간 음악 활동을 해왔다고 하며, 곧 20대의 피아니스트를 멤버로 받아들여 콰르텟이 될 예정이었으며, 최근 발매한 음반을 포함하여 총 3개의 음반을 낸 적이 있었다.
연주가 끝난 뒤 객석의 비슷한 연령대의 팬 옆 자리에서 일상적인 이야기를 나누다가 신보에 사인을 해주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3. 신주쿠 아이돌 스테이지
뉴욕 브로드웨이 주변에 서브 브로드웨이 극장들이 있는 것처럼 AKB48의 레벨이 아닌 아이돌들이 등장하는 무대가 있다고 하여 찾아가 보았다. (thanks to 재원님)
재원님의 소개에 따르면 인디 아이돌들의 에너지, 그들을 향한 팬심과 아저씨들의 열정을 마음껏 느낄 수 있다고 했는데...!! 우리가 간 날이 화요일이여서 그런지 관객은 우리 포함해서 7명 정도가 있었고 그래서인지 먼가 들어서는 내내 안쓰러운 마음이 있었다.
공연은 노래 여러 곡과 중간에 게임 진행으로 구성되어있었는데, 게임은 의자 돌리기 게임처럼 단순하면서도 귀여운 게임이 진행되었다.
공연이 모두 끝나고 그들은 한 명 한 명 객석으로 내려와 오늘 어떻게 왔는지, 너무 고맙다며 인사를 한 명 한 명에게 해주었다. 여자는 무료로 사진을 찍어줄 수 있다며 (남자는 1,000엔) 환하게 웃고 한국에서부터 와주었다는 것에 너무나 고마워하는 그녀들에게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는 것 자체가 미안해졌다. 몇몇은 10대, 몇몇은 20대인 그녀들은 과정 그 자체만으로도 온전히 즐기고 최선을 다하고 있었는데 하루 방문한 외국인의 눈으로 결과(관객수)를 운운하면 무엇할까. 그들은 전국구의 아이돌이 될 수도 있고 안될 수도 있고, 아키하바라로 갈 수도 있고 못 갈 수도 있다. 하지만 그들에게 중요한 건 오늘 이 무대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 젊음의 에너지를 받고자 온 아저씨들과 한국인 여자들에게 우리가 느끼고 싶은 그들의 순수함을 온전히 전달하는 것.
4. TEAM LAB
많이 기대하고 간 전시였는데 기대 이상으로 좋았다. 경험적으로 봤을 때엔 이 전시를 보기 위해서만이라도 도쿄를 가볼만한 급. 사진이나 영상을 보았을 때엔 요즘 빛이나 영상을 활용한 전시가 워낙 많으니 비슷한 느낌이겠거니 할 수 있지만 다루는 정서의 깊이가 다르다.
입장하자마자 남녀노소 국적 불문하고 밝은 미소가 터져 나올 수밖에 없다. 꽃이 피고 지는 아름다운 순간을 마이크로미터 단위의 시간과 시각으로 쪼갠 디테일함에, 그 아름다움을 더욱 극대화시켜주는 음악에. 이 아름다움은 무국적인 무엇이며 지구에서 태어난 누구라면 즐길 수밖에 없다. 이 공간은 이제 미술관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테마파크나 불꽃놀이, 수족관, 잘 설계된 건축물의 가치 제언을 모두 제공할 수 있는 공룡급의 콘텐츠이다. (수용인원도 공룡급...)
미술의 카테고리에서 영상의 시장성(과연 영상작업은 누가 사는가? 회화나 조각 대비 팔리기 어렵지 않은가?)에 대한 해답의 한 실마리로 interactive 혹은 영상이 가미된 공간 자체를 턴키로 판매하는 갓도 일종의 답이 될 것 같다. 영상은 닫힌 공간과 음악과 결합될 때 더욱 폭발적인 힘을 지니게 된다. 오다이바의 모리 빌딩에 상설 전시를 열며 비너스 포트의 한적함과 대비되게 오다이바를 먹여 살리는 것 같은 팀랩의 힘이 물씬 느껴지는 경험이었다.
5. 도쿄 메트로폴리탄 테이엔 (Teien) 뮤지움
잔뜩 기대했던 와타리움 뮤지움이 뜻밖의 에너지 없음을 선사하고 나서 가게 된 메구로의 미술관. 1920년데 일본의 왕자가 살던 곳을 리뉴얼하여 만든 미술관이라고 한다. 지난번에 갔던 하라 뮤지엄의 왕자 버전이라고나 할까.
건축 자체가, 아니 사실 들어가는 길 자체가 너무 아름답고 커서 도쿄 한복판에서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의 느낌. 정원만 따로 입장료를 받기도 하는 이 거대한 아르데코의 건축은 사실 보존된 실내 양식만 구경하는 데에도 시간 가는 줄 모른다. 대부분의 공간이 사진 금지여서 더욱 아쉬웠던 공간.
지금 하고 있는 전시는 역시나 1930-40년대 중심으로 활동한 일본의 초현실주의 콜라주 작가였다. 오랜만에 본 콜라주들은 작업 방식 상 원본 이미지들이 대체적으로 아름다운 점, 어떤 것을 선택하여 절묘하게 어디에 위치시켰는지를 지켜보는 것이 작가의 위트나 작업 의도를 더욱 선명하게 느끼게 해주는 작업방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진 이미지의 원본성이 퇴색되고 출력된 사진의 물성에 대해 크게 고민하지 않는 현대 시점에서 잡지들을 여기저기 오려서 편집해낸 작가의 생각들은 지켜보기 참 재미있었다. (대부분 그 시대의 외국 패션지를 잘라서 사용해서 그 시대의 글래머러스한 모델들이 뭔가 오늘날보다 눈을 사로잡는 건 왜인가..)
6. 그래서 이번에 아주 조금 더 느끼게 된 도쿄는
밤마다 정민 언니의 집에서 티비를 같이 보며 언니의 해설을 들을 때마다 묘한 기분이 들곤 했다. 20년 된 아이돌 아라시가 2020년에 은퇴할 것이라는 선언을 올해 초에 해서 한번 전 국민이 난리 난 것.
굿 와이프의 일본 버전을 같이 보는데 모델 출신의 한 여성 연기자가 미투로 데뷔 시절의 사진작가를 폭로했는데 언론에서는 오히려 싸늘하게 그 여자배우가 “키워준 주인을 물었다”라는 식으로 반응했다는 것. 가정폭력으로 사망한 초등학생 여자아이가 사망 전에 심리검사에서 이슈가 될만한 기록을 남겼었는 데에도 해당 검사를 진행한 검사관은 따로 질책이나 경질은 없었던 점.
도대체 이 도시는 왜 이렇게 ‘전 사회적인’ 변화에는 보수적인 걸까.
이렇게 사람이 많은 대부분의 메트로폴리탄 도시에서는 느껴지는 에너지 중 한 가지가 바로 “도시에 모여드는 사람들의 신분상승에의 욕구”인데, 도쿄는 유독 그 느낌이 너무나 적다. 사실 인구 규모에서는 선진국 도시 중에서는 그냥 탑인 곳인데 - 그래서 시부야나 신주쿠에서는 내리자마자 나와 함께 그 역에 있을 법한 동시점의 수만 명을 마주하게 되는 정말 묘한 도시인데 - 그 어떤 사람도 다른 사람을 밀처내지 않는다.
사회적으로 보았을 때에도 그 누구도 누군가를 밀어내고 상승하거나 먼저 가고자 하지 않는다.
이들은 거시적인 외부 환경을 바꾸려고 하지 않고 하루하루 안에서 주어진 삶에 최선을 다한다. 그들의 삶은 과정 속에 있다는 느낌이 든다. 그래서 내가 음악을 20년 해서 어떤 아티스트가 되는지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내가 아이돌 스테이지에 섰을 때 관객이 몇 명 왔는지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어떻게 그러한 의식을 가지게 되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