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시인의 사랑>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방과 후 글짓기 교실에서 한 아이의 물음, '시인이 왜 이렇게 뚱뚱해요?'
병원에서 의사가 한 한 마디, '시인이면 스트레스받을 일은 많지 않을 것 같은데.'
시인을 주변에서 찾아보기 쉽진 않다. 대다수는 시인이 누구인지 모른 채 시인에 대해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고독 속에서 예술혼을 불태우며 창작하는 사람, 나른한 오후 테라스에 앉아 생각나는 몇 구절을 읊조리는 사람, 평범한 사람들이 지나치는 일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사람...
그렇지만 이는 상상에 불과하다. 사람들의 상상에 의해 만들어진 이미지일 뿐이다. 직장인이 모두 같은 직장인이 아니듯, 시인도 모두 같은 시인이 아니다. 개인이 가진 특성에 따라 시인이더라도 전혀 다른 특성을 가질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시인은 어떤 사랑을 하는 사람일까?'라는 질문에 한 가지 답을 할 수는 없다. 우리 모두가 다 다른 사랑을 하듯, 시인들도 다 다른 사랑을 할 것이다. 그렇지만 적어도 영화 <시인의 사랑>의 주인공 현택기(양익준)에게 사랑은 '슬퍼야 하는' 것이다. 영화 속에서 그의 사랑은 한없이 슬프다. 그에게는 아내(전혜진)가 있지만 애석하게도 그는 소년(정가람)을 사랑한다. 소년을 사랑하게 되면서 호기심을 가지고 다가간다. 심지어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내어주려 한다. 그렇지만 여러 사정으로 인해 그는 더 이상 소년을 만날 수 없게 된다. 그렇게 그의 사랑은 아주 강렬하고 짧게 끝나고 만다.
그는 사랑을 통해 슬픔을 겪게 되지만 거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그는 그 슬픔을 가지고 시를 쓴다. 자신이 가르치는 초등학생에게 '시인한테는 슬픔이 시를 쓰는 재료거든'이라고 말했듯이 말이다. 슬픔으로 쓴 시는 그에게 상을 가져다주었다. 상은 그가 시를 계속 쓰는 원동력이 되어줄 것이다.
그렇지만 택기의 아내 말대로 그게 사랑이었을까? 그저 택기에겐 비극이 필요했던 게 아닐까? 내가 택기가 아니기에 그 감정이 사랑이 아니었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적어도 '시인은 대신 울어줄 수 있는 사람이야', '슬픔은 또 나를 살아있게 만들 테니까요.'라고 말하는 그에게 소년은 사랑의 대상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그저 자신이 슬프기 위한 하나의 대상이었을지도 모른다.
오히려 그가 사랑한 대상은 시였을지도 모른다. 그 어떤 것보다도 시를 사랑하기에 시를 생각하면 설레서 가슴이 뛰기도 하고, 슬퍼서 가슴이 아프기도 한 게 아니었을까. 그렇기 때문에 그는 모든 일을 겪고 나서도 시는 놓지 않았던 게 아닐까. 그의 사랑은 '슬퍼야 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있게 만드는 것'이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