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실 비치에서> 나보다는 너

by 찬란한 하루

영화 <체실 비치에서> 스포가 있습니다.


chesil5.jpg 에드워드를 찾아가는 플로렌스. 영화 <체실 비치에서> 스틸컷.

“우리는 서로 운명이었다. 정상적이지 못해 가족도 감당하기 버거워하는 어머니를 너는 그 누구보다 따뜻하게 품어주었다. 그런 너는 누구보다도 예뻐 보이고 나에게 필요한 사람이었다.”

chesil6.jpg 책을 읽고 있는 에드워드. 영화 <체실 비치에서> 스틸컷.

“우리는 서로 운명이었다. 보수적인 아버지와 달리 너는 다정다감한 사람이었다. 그런 너는 누구보다도 나의 단점까지 이해하면서 포용해주고 사랑해줄 사람이었다.”


에드워드와 플로렌스는 서로를 자신의 결핍된 부분을 채워줄 수 있는 운명이라 여겼다. 에드워드에게 아픈 어머니로 인해 자신에게 무관심한 가족들과 달리 플로렌스는 자신을 따뜻하게 품어줄 수 있는 사람이었다. 플로렌스에게 보수적이고 강압적인 부모와 달리 에드워드는 자신에게 다정한 사람이었다. 그렇게 그들은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라왔지만 그 다른 환경으로 인해 필요한 것이 달랐다. 그들은 서로에게 필요한 것을 채워줄 수 있는 존재였다.

chesil4.jpg 다정한 한 때를 보내는 에드워드와 플로렌스. 영화 <체실 비치에서> 스틸컷.

그렇지만 이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는 사람인지를 간과했기에 결국 헤어질 수밖에 없었다. 에드워드에게는 자신을 좀 더 적극적으로 품어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했지만 플로렌스는 늘 지나치게 조심스러웠고 자신의 입장에서 늘 배려했다. 플로렌스에게는 다정하고 자신을 기다려줄 사람이 필요했지만 에드워드는 자신의 기준에서 판단하고 자신의 페이스대로 쫓아와주길 바랬다. 진정으로 서로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는 제대로 보지 못했던 것이다.


우리는 누군가를 사랑할 때 그 사람이 왜 좋은지를 먼저 생각한다. 이유는 대부분 나를 기준으로 정해진다. 내가 가지지 못한 부분을 그 사람이 채워줌으로써 행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오래 사랑하기 위해서는 그 사람이 나를 왜 좋아하는지를 볼 수 있어야 한다. 내가 그 사람이 가지지 못했던 어떤 부분을 채울 수 있기에 그 사람은 나를 좋아하고 의지하는지를 봐야 한다. 그래야 서로가 필요하며 위로를 받을 수 있는 존재가 된다.


플로렌스와 에드워드는 결국 서로 맞지 않을 수밖에 없었다. 에드워드는 자신에게 좀 더 적극적으로 다가와줄 수 있는 존재가 필요했고 플로렌스는 자신을 기다려주고 배려해줄 수 있는 존재가 필요했다. 결국 서로 필요가 달랐기에 위로받고 의지할 수 있는 존재가 될 수 없었다. 그 자체로 채워줄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늘 상대방을 파악하려 노력하고 어떤 걸 채워줄 수 있는지 고민해야 한다.

chesil2.jpg 결국 체실 비치에서 헤어진 그들. 영화 <체실 비치에서> 스틸컷.

사랑이 어려운 이유는 양방향으로 통해야 하기 때문이다. 양방향으로 통하기 위해선 나보다는 상대방을 볼 수 있어야 한다. 상대방을 기준으로만 생각하면 그건 일방적인 희생이지 사랑이 아니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 그렇지만 내가 상대방을 기준으로 생각하고 상대방이 나를 기준으로 생각한다면 그건 더 이상 일방적인 희생이 아니다. 서로를 더 철저히 바라보는 것이다. 에드워드와 플로렌스도 서로에게 필요한 것을 좀 더 볼 수 있었다면 그렇게 체실 비치에서 헤어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작가의 이전글<신과 함께> 고민의 흔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