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체실 비치에서> 스포가 있습니다.
“우리는 서로 운명이었다. 정상적이지 못해 가족도 감당하기 버거워하는 어머니를 너는 그 누구보다 따뜻하게 품어주었다. 그런 너는 누구보다도 예뻐 보이고 나에게 필요한 사람이었다.”
“우리는 서로 운명이었다. 보수적인 아버지와 달리 너는 다정다감한 사람이었다. 그런 너는 누구보다도 나의 단점까지 이해하면서 포용해주고 사랑해줄 사람이었다.”
에드워드와 플로렌스는 서로를 자신의 결핍된 부분을 채워줄 수 있는 운명이라 여겼다. 에드워드에게 아픈 어머니로 인해 자신에게 무관심한 가족들과 달리 플로렌스는 자신을 따뜻하게 품어줄 수 있는 사람이었다. 플로렌스에게 보수적이고 강압적인 부모와 달리 에드워드는 자신에게 다정한 사람이었다. 그렇게 그들은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라왔지만 그 다른 환경으로 인해 필요한 것이 달랐다. 그들은 서로에게 필요한 것을 채워줄 수 있는 존재였다.
그렇지만 이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는 사람인지를 간과했기에 결국 헤어질 수밖에 없었다. 에드워드에게는 자신을 좀 더 적극적으로 품어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했지만 플로렌스는 늘 지나치게 조심스러웠고 자신의 입장에서 늘 배려했다. 플로렌스에게는 다정하고 자신을 기다려줄 사람이 필요했지만 에드워드는 자신의 기준에서 판단하고 자신의 페이스대로 쫓아와주길 바랬다. 진정으로 서로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는 제대로 보지 못했던 것이다.
우리는 누군가를 사랑할 때 그 사람이 왜 좋은지를 먼저 생각한다. 이유는 대부분 나를 기준으로 정해진다. 내가 가지지 못한 부분을 그 사람이 채워줌으로써 행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오래 사랑하기 위해서는 그 사람이 나를 왜 좋아하는지를 볼 수 있어야 한다. 내가 그 사람이 가지지 못했던 어떤 부분을 채울 수 있기에 그 사람은 나를 좋아하고 의지하는지를 봐야 한다. 그래야 서로가 필요하며 위로를 받을 수 있는 존재가 된다.
플로렌스와 에드워드는 결국 서로 맞지 않을 수밖에 없었다. 에드워드는 자신에게 좀 더 적극적으로 다가와줄 수 있는 존재가 필요했고 플로렌스는 자신을 기다려주고 배려해줄 수 있는 존재가 필요했다. 결국 서로 필요가 달랐기에 위로받고 의지할 수 있는 존재가 될 수 없었다. 그 자체로 채워줄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늘 상대방을 파악하려 노력하고 어떤 걸 채워줄 수 있는지 고민해야 한다.
사랑이 어려운 이유는 양방향으로 통해야 하기 때문이다. 양방향으로 통하기 위해선 나보다는 상대방을 볼 수 있어야 한다. 상대방을 기준으로만 생각하면 그건 일방적인 희생이지 사랑이 아니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 그렇지만 내가 상대방을 기준으로 생각하고 상대방이 나를 기준으로 생각한다면 그건 더 이상 일방적인 희생이 아니다. 서로를 더 철저히 바라보는 것이다. 에드워드와 플로렌스도 서로에게 필요한 것을 좀 더 볼 수 있었다면 그렇게 체실 비치에서 헤어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