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눈길>‘눈길’을 걷는 그들에게 ‘눈길’을

추운 길을 따뜻한 길로 만들 수 있는 건 우리다. 

by 찬란한 하루

영화 <눈길>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눈길3.jpg 어린 영애와 종분. 영화 <눈길> 공식 포스터


위안부 피해 할머니인 종분과 비행청소년인 은수는 작은 다세대 주택에 혼자 살고 있는 이웃이다. 애처로울 정도로 그들의 삶에는 살려는 의지가 묻어난다. 이불을 만들어 겨우 생활하는 종분을 주변 사람들은 가족도 없는데 빌어먹지 않고 산다며 독종이라 한다. 은수는 자신을 보살펴주는 부모가 없어 국가에서 지원을 받고자 하지만 여의치 않자 생활을 위해 좋지 못한 방법으로 돈을 모아 생활한다.


눈길11.jpg 살아가려는 의지를 보이는 은수. 영화 <눈길> 스틸컷.


그렇게 각자 삶을 버티는 그들은 점점 서로의 인생에 들어간다. 부모뿐 아니라 주변 어른들에게도 따뜻한 관심을 받지 못한 은수에 종분이 손길을 내민다. 어른들에 대한 불신을 가지고 상처를 안고 버티던 은수는 처음엔 그 '손길'을 밀어낸다. 종분은 그런 은수에게 천천히 다가간다. 어린 종분이 영애에 다가갔던 모습과 겹쳐진다. 종분의 진심을 알게 된 은수는 마음을 열며 사과한다. “미안하다 나한테 사과할 놈은 안 하는데 네가 사과할 거 뭐 있어.” 은수는 드디어 자신을 이해해주는 어른을 만나게 돼 도움을 받아 학생으로서 열심히 살아보려 한다.


눈길 12.jpg 자신이 영애가 아님을 말못하는 종분. 영화 <눈길> 스틸컷.

은수는 마음을 열고 자신을 보여주며 서서히 종분의 인생에 스며든다. 종분은 그렇게 아무에게도 털어놓지 못할 것 같았던 자신의 아픈 과거를 털어놓는다. 위안소에서 고향으로 돌아온 종분은 사람들의 시선이 두려워 말하지 못했었고, 생존을 위해 영애로 살게 되면서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었다. 그렇게 상처와 죄책감에 묻혀 있던 종분도 은수를 만나 마음을 열었다. “그건 할머니 잘못이 아니야. 부끄러워하지 마. 나쁜 짓은 걔네가 한 건데” 오랜 세월 말 못 하고 죽은 영애만 붙잡고 있던 종분의 마음이 녹아내렸다. 은수의 말에 용기를 얻은 종분은 자신의 이름을 되찾고 수요 집회에 나간다.


종분과 은수는 지금까지 다른 삶을 살아왔다. 처음엔 부딪혔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서로에게 위로가 되면서 함께 살아간다. 버티며 사는 이들끼리 연대가 이루어진 순간이었다. 어린 종분이 “욕심부리다 탈 나”라고 말했던 것처럼 종분과 은수는 많은 것을 바라는 것이 아니었다. 사람답게 살기 위해 노력하는 그들을 밀어내지 않길 바랄 뿐이었다. 그렇지만 우리 사회는 그들을 소외시키고 방치했다. 그들은 진정한 사과, 국가의 도움, 마땅히 받아야 할 것조차 받지 못했다.


미디어를 통해 우리는 위안부 피해 할머니와 비행청소년의 이야기를 쉽게 접해왔다. 뉴스, 다큐멘터리, 영화, 드라마 등을 통해 우리는 그들에 대한 우리만의 인식을 형성해왔다. “과거는 과거일 뿐이다.”, “너도 나도 이야기하니 지겹고 지친다.”, “돈을 받았으면 끝이다.”, “이러한 논의가 반복되면서 사회를 어둡게 만든다.” 우리는 이들에 대한 논의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하며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렇지만 최근 갖가지 이유를 대며 논의를 피하는 목소리가 자주 들린다.


필요한 이야기를 익숙하게 느끼는 이 순간이 가장 위험하다. “여기 우리 애들 네가 기억해야 돼 꼭” 영애의 말처럼 그들이 자신들의 아픔을 기억하고 용기 내 말한다면 외면하지 말고 '손길'은 내밀기 어렵더라도 적어도 '눈길'을 주어야 하지 않을까. 이들의 목소리를 듣고 '눈길'만 준다고 당장 달라지는 것은 없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그들의 이야기가 자주 공론화되고 그 논의를 통해 누군가는 바뀌어야 한다는 것을 인지하는 순간, 변화가 일어날 수 있을 것이다. 마땅히 받아야 할 것을 받게 되는 그런 사회로 한 발짝 나아가게 될 것이다. 그 변화가 일어나기 전까지 우리는 적어도 익숙하다고 피하지 말아야 한다. 차가운 '눈길'을 우리의 '눈길'을 통해 따뜻한 '눈길'로 만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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