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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기훈 Jan 15. 2024

[엽편 소설] 이안

2

이안 1과 이어집니다.


“안녕하세요. 안이정 대표님! 만나 뵙게 돼서 영광입니다. 저는 사이언스 토픽 기자 김동민입니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최근 정말 화제가 되고 있으신데, 기분이 어떠신가요?”

“사실 정말 얼떨떨합니다. 작년까지 만해도 정말 위태위태한 상황이었거든요. 퇴직금과 함께 그동안 모아두었던 적금을 모두 털어 시작한 회사가 6개월도 안 돼서 투자를 받지 못해 망할 뻔했으니까요.”

“정말 위태로웠군요.”

“네, 맞아요. 나중에 알고 보니 어떤 사무직원께서 서류 정리를 하다가 실수로 투자 대상 목록에서 저희 회사를 제외하여 벌어진 일이란 걸 알게 되었죠. 당시엔 정말 아찔했던 상황이었지만, 그래도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게 오히려 좋은 일이었어요.”

“좋은 일이요? 그게 어떻게 좋은 일이 되는 거죠?”

“그때 만약 투자받았다면, 저희는 바로 수익을 내기 위한 서비스에 돌입했을 거예요. 그것도 그 나름의 장점이 있을 수는 있겠지만, 그때의 저희 서비스는 정말 흔해빠진 챗봇들과 크게 다를 바 없었죠.”

“챗봇이요?”

“네, 하지만 그때 투자를 받지 못하면서 저희가 가지고 있는 상품을 처음부터 다시 살펴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고, 저희 AI만의 장점을 찾아내고, 강화할 시간을 가질 수 있었어요.”

“어떤 장점이었나요?”

“바로 이전의 대화를 오랫동안 기억하는 기능이에요. 일반적인 AI 서비스들은 한 가지 주제에 대한 대화를 오랫동안 지속하다 보면, 이전의 대화를 까먹게 되면서 엉뚱한 대답을 뱉어내기 시작해요. 하지만 저희의 AI는 다릅니다. 설계 단계부터 대화의 장기기억에 중점을 뒀어요. 처음에는 기대만큼의 성능이 나오지 않아서 아쉬운 기능이었지만, 준비기간 동안 그 기능을 강화했고, 그 결과 시장에 출시된 어떤 AI보다도 오랫동안 대화를 이어 나가도 이전의 대화를 잘 기억할 수 있었죠. 심지어는 대화를 그만두고, 다음 주제에 대한 대화를 시작해도 이전의 대화를 기반으로 더욱 깊이 있는 대화를 할 수 있어요. 마치 나와 가장 가까운 친구처럼 내가 말한 것들을 모두 기억하고 대화를 이어 나갈 수 있는 거죠.”

“아! 그러면 그러한 기억 능력을 이용해서 시작한 서비스가 ‘나만의 글 친구’ 군요?”

“네, 맞습니다. 부족한 예산으로 인해서 저희의 자체적인 서비스 구현을 포기하고, 포털의 카페를 이용해서 서비스를 제공했어요. 유저들과의 대화 정보를 수집해서 AI를 학습시키기 위한 데이터로 활용해야 하기 때문에 일반적인 카페들보다 가입절차가 훨씬 까다로워서 이 서비스를 이용할 사람들이 있을까 싶었지만, 다행히 한국의 인증 절차에 단련된 이용자 분들께서 많이 가입해 주셨죠.”

“하하하, 정말 다행이네요. 서비스를 시작하면서 겪은 어려움은 없었나요?”

“많았죠. 정말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가장 제 마음을 괴롭힌 건 표절 논란이에요. AI가 뱉는 대답은 학습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만들어지기 때문에 항상 표절 논란에서 벗어날 수 없죠. 저희는 이러한 내용을 항상 사전에 고지하고, AI의 대답을 사용하는 것은 사용자의 선택이며, 주의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사용자들께서는 이를 잘 이해하지 못하고 AI의 대답을 그대로 자기 작품에 사용하기도 합니다. 특히 얼마 전에는 어떤 작가분께서 저희 AI를 이용해서 작성한 글로 정식 작가로 데뷔하셨다가 표절 논란으로 인해 계약이 취소되는 사건도 있었습니다. 사실 저희의 책임이라고 보기는 어렵지만, 저희는 도의적인 차원에서 해당 작가님께 위로의 보상을 전하기도 하였습니다.

“아, 해당 사건은 저도 관심 있게 챙겨보았던 기억이 납니다. 안타까운 일이긴 하지만, 그게 어떻게 보면, 대표님이 서비스하고 계시는 ‘이안’이 정말 뛰어난 성능을 가지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지 않습니까?”

“네, 작가님께는 죄송한 말씀이지만, 저 또한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특히 이안은 해당 사건이 불거지기 전에 이미 표절 검사 기능을 강화하였습니다. 이제는 대답하기 전에 학습하고 있는 데이터에 대해서 표절 검사를 시행하고 대답을 내놓기 때문에 기존 작품에 대한 표절 위험을 거의 100% 제거한 대답을 내놓을 수 있습니다. 내일 정식 출시를 앞둔 이안은 지금, 이 지구상에서 가장 완벽한 작가이자, 작가들의 조언가가 될 것이라 자부합니다.”

“네, 대표님의 당찬 포부 잘 들었습니다. 인터뷰를 마무리하기 전에 이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을 것 같은데요. ‘이안’이라는 이름은 어떻게 지어진 건가요?” “네, 예상했던 질문이지만, 이렇게 듣게 되니 조금 떨리는데요. 이미 예상하고 계시는 분들도 많이 계시지만, 제 이름 ‘안이정’에서 따온 것도 맞고요. 더 중요한 뜻은 ‘Novel Artificial Intelligence’, NAI를 거꾸로 뒤집은 이름 IAN입니다. 당신만의 글 친구 이안은 내일 정식 출시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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