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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기훈 Jul 23. 2023

[엽편 소설]행복한 기준

아침 7시 13분. 기준은 눈을 떴다. 그대로 침대에 누워 5분간 휴대전화를 보며 지난밤 연락 온 것은 없는지 확인한다. 7시 18분. 기준은 몸을 좌측으로 한 바퀴 굴려 침대에서 일어났다. 자리에서 일어나 기지개를 켠 뒤 화장실에 들어가 시간을 확인한다. 7시 20분. 칫솔에 치약을 새끼손톱만큼 짜고 양치질을 시작한다. 동시에 휴대전화로 재미난 기사는 올라오지 않았나 확인한다. 7시 25분. 양치질을 마치고 기준은 거실로 나와 주방으로 향하며 한 손을 귓가에 대고 말했다.


“오늘 아침은?”


기준의 귓가에서 한 여성의 목소리가 작게 울려 퍼졌다.


“현재 집에 있는 재료를 고려해 아침 식사를 추천해 드리겠습니다. 양상추, 토마토, 베이컨을 넣은 샌드위치, 예상 행복도 67. 스크램블 에그와 소시지, 예상 행복도 63. 시리얼과 딸기, 예상 행복도 51입니다.”


기준은 ‘샌드위치 좋지’라고 중얼거리며 찬장으로 걸어갔다. 찬장에서 식빵 봉지를 꺼내며 식빵이 두 개 남아있는 것을 보고는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기준은 냉장고에서 손질해 놓은 양상추와 토마토, 베이컨을 꺼내 조리대 앞으로 갔다. 도마를 꺼내 토마토를 얇게 슬라이스 한 뒤, 식빵 위에 마요네즈를 얇게 바르고, 양상추, 토마토 순으로 올려놓았다. 동시에 잠시 예열한 에어프라이어에 베이컨을 구운 뒤 토마토 위에 올리고, 식빵을 덮어 마무리했다. 기준은 한 손으로는 샌드위치를 입가에 가져가며, 반대 손을 귓가에 대고 말했다.


“출근 준비는 어떻게 해야 할까?”


다시 한번 기준의 귓가에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현재 신체 리듬을 고려해 추천해 드리겠습니다. 7시 40분에 화장실에 들어가 용변을 보신 후, 7시 52분 샤워를 시작해 8시 9분 화장실에서 나온 뒤, 8시 25분에 집에서 나서는 것이 예상 행복도 76으로 가장 높습니다. 알림을 설정해 드릴까요?”


그렇게 해달라고 말한 뒤 기준은 손에 들고 있던 샌드위치를 마저 먹고, 출근 준비를 시작했다. 8시 57분. 기준은 콧노래를 부르며 회사에 도착했다.


“기준 님, 오늘도 기분 좋아 보이네?”


먼저 도착해 있던 기준의 직장동료 현우가 말했다.


“아, 현우 님 안녕하세요. 저야 요즘 이 녀석 덕분에 맨날 행복하죠.”


기준이 손가락을 펼쳐 자기 귀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러게, 그게 요즘 그렇게 난리라며? 난 그래도 내 몸에 뭘 심는다고 하니까 영, 무섭던데”

“저도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는데, 그래도 한번 달고 나니까 이제 없던 때로 못 돌아가겠어요. 오늘 아침에는 샌드위치를 먹으라고 추천해 주길래 먹었는데, 딱 두 개 남아있던 식빵을 다 처리하니까 콧노래가 절로 나오더라니까요?”

“그건 좋네. 식빵 같은 거 간편하게 먹겠다고 사놨다가 매번 얼마 먹지도 못하고 다 버렸는데 말이야.”

“그러니까요. 현우 님도 너무 그러지만 말고 한번 생각해 보세요. 정말 좋아요.”

“아직 나는 좀 무서워. 인공지능이 막 나를 조종하는 것 같잖아? 그래도 세상 참 좋아지기는 했어. 사람 마음을 읽어서 뭘 하면 행복할지 알려주는 AI라니, 인공지능으로 챗봇이나 만들던 시대에 생각이나 해봤겠냐고.”


기준은 현우의 말에 키득거리며 고개를 꾸벅하고는 자리에 가서 앉았다.

기준은 컴퓨터를 켜고 오늘 할 일을 확인했다. 인공지능은 기준의 업무 성과와 스트레스 수준을 고려해 최적의 작업 순서와 휴식 시간을 알려줬다. 기준은 인공지능의 지시대로 일을 시작했다. 업무는 아침밥을 먹고, 출근 준비를 할 때처럼 완벽하게 풀려나갔다.


“기준 님, 점심 드셔야지? 같이 부대찌개 어때요?”


현우가 다가와 같이 점심을 먹자고 권했다.


“아, 저는 이따가 먹으려고요. 오늘 점심은 샐러드가 좀 당기네요.”

“그래요? 원래 기준 님 부대찌개 제일 좋아하지 않았나? 팀원들이 부대찌개 먹으러 가자고 하길래 기준 님 생각나서 바로 달려왔는데.”

“그렇기는 한데… 사실은 이 녀석이 오늘은 부대찌개보다 샐러드를 먹는 게 행복도가 훨씬 높을 거라 그러네요.”


기준이 손가락으로 귓가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래? 아무리 그래도 풀만 먹으면 밥이 되려나. 그래요 알겠어요. 식사 맛있게 해요.”

“네,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해요. 식사 맛있게 드세요.”


현우는 기준에게 손을 들어 올리고는 팀원들을 향해 달려갔다.


“오늘은 샐러드란 말이지? 어디 얼마나 대단하신지 한번 먹어보자.”


기준은 하던 일을 마저 마무리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샐러드 가게에 도착한 기준은 어떤 메뉴를 먹으면 좋을지 물어보기 위해 귓가에 손을 가져다 댔다. 주위를 둘러보니 기준과 같이 귓가에 손을 대고 있는 사람들이 몇몇 보였다. 인공지능은 기준에게 베이컨, 에그, 양파, 올리브, 옥수수 등에 시저 드레싱을 올린 콥 샐러드에는 예상 행복도 73, 연어, 양파 등에 레몬 드레싱을 올린 연어 샐러드에 예상 행복도 71을 부여했다. 기준은 잠시 망설인 뒤 콥 샐러드를 주문하여 먹었고, 평소 자주 먹던 부대찌개를 먹었을 때와 달리 속이 편안한 것을 느끼고는 부대찌개를 먹지 않고 샐러드를 먹기를 잘했다고 생각했다.

가볍게 점심을 먹은 기준은 자리에 돌아와 오후 업무를 시작했다. 인공지능이 추천해 준 대로 진행한 업무는 물 흐르듯 진행되어 어느덧 퇴근 시간이 되었고, 퇴근 시간이 되자마자 기준은 현우와 일이 남아있는 팀원들에게 고개를 살짝 숙이며 인사하고는 회사를 나섰다.

업무를 생각보다 일찍 마무리한 기준은 영화를 볼까 잠시 생각했지만, 바로 집을 향해 갔다. 인공지능이 영화의 예상 행복도를 56, 집으로 가는 것의 예상 행복도를 73으로 예측했기 때문이었다. 집으로 가던 길에 기준은 피자집에 들러 피자를 살까 생각했지만, 이내 그만두었다. 저녁에 피자를 먹는 것의 예상 행복도는 43으로 매우 낮았기 때문이다. 집에 도착한 기준은 저녁으로 김치찌개를 먹고 다음 날 업무 준비를 조금 한 뒤, 씻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예상 행복도 71로 가장 높았기 때문이다. 씻고 나온 기준은 머리를 말린 뒤 소파에 앉아 TV를 켜고 드라마를 두 편 본 뒤, 최적의 취침 시간으로 추천받은 10시 30분에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 날 아침 7시 13분. 기준은 귓속에 울리는 알림에 눈을 떴다. 그대로 침대에 누워 5분간 휴대전화를 보며 지난밤 연락 온 것은 없는지 확인한다. 7시 18분. 다시 귓속을 울리는 알림과 함께 기준은 몸을 좌측으로 한 바퀴 굴려 침대에서 일어났다. 자리에서 일어나 기지개를 켠 뒤 화장실에 들어가 시간을 확인한다. 7시 20분, 귓속에서 다시 한번 알림이 울린다. 칫솔에 치약을 새끼손톱만큼 짜고 양치질을 시작한다. 동시에 휴대전화로 재미난 기사는 올라오지 않았나 확인한다. 7시 25분 아침 루틴의 마지막 알림이 울리자, 기준은 양치질을 마치고 거실로 나와 주방으로 향하며 한 손을 귓가에 대고 말했다.


“오늘 아침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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