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면하고 싶은 진실을 그린 영화

영화 <쓰리 빌보드, Three Billboards> 리뷰

by 구월





HOW COME, CHIEF WILLOUGHBY?

(어떻게 된 건가 윌라비 서장?)

AND STILL NO ARRESTS?

(그런데 아직도 못 잡았다고?)

RAPED WHILE DYING

(죽어가면서 강간당했다)



영화에 등장하는 세 명(윌라비, 밀드레드, 딕슨)의 인물을 통해 우리는 살면서 외면하게 되는 진실에 대해 자문하게 된다. 죽어가면서 강간당한, 안젤라의 비참한 최후는 가족마저 외면하고 싶은 진실이다. 극 중에서 밀드레드의 아들 로비는 광고판을 보며 ‘잘해야 하루에 2초나 잊고 살까 하는데 더 생각하라고 등을 떠민다’고 말한다. 남편 찰리는 ‘나라고 그런 일이 있었기를 바랬겠느냐’며 광고판을 세운 밀드레드를 타박한다. 참기도 힘들어 자세한 내용은 알고 싶지도 않은 그런 진실이 광고판에 대문짝만하게 실린 사건은 영화의 핵심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붉은 배경에 굵은 검정색 글씨로 쓰인 광고판은 관객인 우리 눈앞에도 강렬하게 펼쳐지는데, 광고판의 메시지는 역순으로 다가오며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진실을 너무도 쉽게 외면할 수 있는 현실의 잔혹함에 대해, 당신은 생각해 본 적 있습니까?” 우리는 감당하기 벅찬 진실의 문제를 내면화하기 얼마나 쉬운 존재들인가 하는 물음이 인다. 그런 점에서 몽고메리 신부의 논리는 영화에서 가장 공포스럽다. ‘안젤라와 밀드레드의 편이지만 광고판은 내리는 게 타당하다’는 무자비한 관찰자의 논리 말이다. 평판이 좋은 윌라비 서장의 명예를 훼손한다 해서 안젤라가 다시 우리 곁에 돌아오진 않는다는 지극히 공동체 다수의 입장. 밀드레드와 신부의 대치 사이에 놓인 아들 로비의 모습은 유가족 스스로 갖는 죄책감과 외부상황의 압력에서 자유롭지 못한 모습을 대변한다. 광고판을 내리라는 신부에게 부엌에서 꺼지라고 말하는 밀드레드와 달리 아들 로비는 ‘어찌 되었든 와주셔서 감사해요’라고 말한다. 도덕과 윤리, 사회적 평판을 저울질하는 데에서 오도 가도 못하는 사이, 안젤라 사건의 진실은 어디에 있을까. 어디에 있을 수 있을까. 진실을 앞서는 우선순위가 너무도 많다.





쓰리빌보드2.png



죽으면서 강간당한 안젤라와 췌장암으로 투병하다 권총으로 자살한 윌라비, 그들에 대한 생전 기억으로 고통 받으며 남은 생을 살아가는 가족들은 각각의 삶의 진실이다. 영화 <쓰리 빌보드>에서 감독 마틴 맥도나가 그리는 진실 안에 선인이나 선의는 없다. 최소한 비겁해지지는 않으려고 몸부림치거나,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기필코 유머는 잃지 않으려 애쓰는 인물들이 있다. 암환자로 시한부 인생을 사는 윌라비, 딸의 죽음을 홀로 파헤치는 여성 밀드레드, 동성애자이자 인종주의자인 딕슨이 그렇다.


또한 그들은 각자의 입장에서 사회의 소수자이지만 동시에 정치적 올바름에 어긋나는 인물들이기도 하다. 윌라비는 남편이자 아버지로서 가족들에게 좋은 기억으로 남기 위해, 결과적으로 사건을 책임지지 않고 좋은 평판을 유지하며 죽음을 택했다. 밀드레드 또한 경찰서에 방화한 죄를 숨긴 채 딕슨에게만 자신의 범행을 고백한다. 소인증을 앓는 제임스를 향한 태도 또한 그를 조롱하는 다른 인물들과 비교해 도덕적이라 볼 수도 없다. 딕슨 또한 인종주의자로서 아슬아슬한 수위의 말과 행동을 거리낌 없이 일삼는다.


그럼에도 안젤라 사건에 대한 이 세 명의 인물들이 보여주는 행동들은 어떤 방식으로든 진실에 가장 가까이 다가가려 했다는 점에서 성찰적이다. 세간의 주목을 이어가기 위해 죽기 전 광고판 임대료를 지불하는 윌라비, 가족들마저도 등돌린 진실을 멱살 잡듯 움켜쥐며 기어코 광고판을 세운 밀드레드, 안젤라 사건파일을 불 속에서 빼내며 범인으로 추정되는 남자의 DNA를 채취한 딕슨까지. 광고판은 메시지의 역순으로 세워져있다.



쓰리빌보드.png




HOW COME, CHIEF WILLOUGHBY?

(어떻게 된 건가 윌라비 서장?)


AND STILL NO ARRESTS?

(그런데 아직도 못 잡았다고?)


RAPED WHILE DYING

(죽어가면서 강간당했다)




영화 평론가 남다은은 영화 <쓰리 빌보드>를 두고 ‘돌이킬 수 없는 세 개의 묘비명’ 이라 표현했다. 광고판에는 피해자 안젤라의 이름이 아닌 책임져야 할 서장의 이름이 적혀 있으며, 그 묘비명은 살균된 슬픔의 언어가 아닌 그녀가 피해 입은 사실이 적혀있다는 점에서 잊어서는 안 되는 진실이다. 어쩌면 그들에게, 감독에게, 진실은 마주하기 힘들고 쉬이 드러나지 않는 것일지라도, ‘이렇게 하는 게 옳은가’하며 고민하기 전에 ‘가면서 결정하는’ 종류의 진실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찾게 될 진실의 형상이 어떻든 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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