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사랑니> 리뷰
사랑이라 말했던 기억은 모호하고, 사랑에 반응하는 몸은 정직하다. 내가 이 영화를 좋아하는 건 사랑이라 이름 붙인 어떤 기억과 반응을 촉각화하는 것만 같은 순간들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헤어진 후 잠 못 자고 밥 못 먹고, 눈물로 얼룩진 얼굴을 한 채 양호실 베드에 누워있는 열일곱의 인영은 핸드폰을 손에 꼭 쥐고 온 몸으로 아픔을 겪는다. 그렇게 고통을 겪는 순간들도 서른의 인영처럼 한때 첫사랑으로 기억되는 날이 올 것이다. 기억하고 싶은 순간들이 남겨지고, 기억의 선후 관계도 재구성되어 결국 너에 대한 나의 기억이기보다 나만의 기억으로 남는 또 한 번의 이별이 오게 된다.
영화 <사랑니>는 지나간 첫사랑을 기억하는 자와 지금 첫사랑을 앓는 자를 서른 살의 인영과 열일곱의 인영으로 보여준다. 서른의 인영은 몸의 반응에 성실히 감각하는 여성이고, 열일곱의 인영은 언젠가 기억이 될 순간들을 착실히 지나는 중인 소녀다. 그리고 두 여자 옆에 열일곱 이석이 있다. 영화는 (동명의) 인영들의 평행하는 시간 속에서 현실과 판타지의 경계를 넘나들며 그들의 사랑이 어떻게 전개되는지 지켜보고 있는 것만 같다. 또한 영화는 인물의 관계와 대사로 사랑을 부연하거나 주석을 다는 대신, 카메라는 거울 앞에서 빨간 우산을 건네거나, 벅찬 얼굴로 계단을 뛰어올라갈 때 켜지는 센서등을 조용히 비춘다.
첫사랑과 이름도 얼굴도 닮아 눈길이 가게 된 고등학생 이석은, 인영에게 (인영이 정우에게 말한) ‘트럭운전수’나 ‘수영선수’와 같은 육체적인 매력이 있어서인지는 잘 모르겠다. 어디서 맞고 온 얼굴을 들이밀고, 술에 취한 채 주차장 바닥에 앉아있는 그는 동거인 정우와는 반대되는 거친 면을 갖고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오히려 말수가 없는 이석의 모습이 인영에게는 더 매력적일 수도 있겠다. 모텔 앞 차 안에서 마주본 채 이어폰을 나눠 끼고 노래 가사를 입 맞추어 부르는 둘은 분명 관계의 속도를 맞춰나가는 연인이다. 해가 비처럼 내리쬐는 패스트푸드점 창가 옆에서 환하게 웃는 인영의 모습은 영락없이 지금 사랑 중인 사람의 얼굴이다.
그러던 어느 날 열일곱 인영이 찾아오게 되면서 둘 사이에는 어떤 틈이 일기 시작한다. 전화기 너머로 불안과 긴장이 전달되고, 다급한 물음과 서로를 이해할 수 없다는 듯한 말들이 헛돈다. 공항 앞, 열일곱 인영이 떠나고 이석마저 자리를 비운다. 사랑이 뜬 자리에는 인영이 누르는 차 경적 소리만 울릴 뿐이다. 이석이 차로 되돌아오고 운전대에 얼굴을 파묻은 인영이 보인다. 떠나는 사람과 돌아오는 사람이 모이는 공간 공항, 여기서 들리는 차의 경적 소리는 어떤 청각적 효과를 주지만 어쩌면 무언가 만져지기도 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응어리진 울음이 터지는 소리, 사랑이 떠나갈 것만 같은 불안함에 신음하는 소리, 생동하는 사랑이다.
서른의 인영은 관객에게만 들리는, 내레이션을 영화 전체에서 딱 한번 내뱉는다. ‘그 첫사랑이 살아서 찾아온 거야. 넌 어떻겠어? 돌려보낼 거야?’ 여기서 ‘살아서’ 돌아온 첫사랑은 무엇을 뜻하는 걸까. 이는 마지막 장면의 인영이 ‘다시 태어나면 이석이 되고 싶어’라고 말한 부분과 상응할 지도 모르겠다. 거짓말을 하지 않아도 되는 진짜 나의 속마음, 누군가에게 펼치지 않고 간직해도 되는 나의 기억, 하지만 내 안에서 닫힌 채 맴도는,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는 죽은 과거, 대상이 부재함에 더 크게 느껴지는 사랑의 울렁임이다. 따뜻하고 충만하게 보존된 것들보다 상처를 주고받더라도 앓는 상태로 회복되길 갈망하는 것. 이는 어쩌면 (첫사랑이 살아서 돌아 온 것 같이) 생생하게 느껴지는 감정과 만져지는 것들에 반응하고 싶은 욕망은 아닐까.
살아있는, 박동하는 감정은 쏜살같다. 지난 것을 곱씹으며 기억하려는 자의 시간과 지금 당장 앓고 있는 자의 시간은 다르게 흐른다. 어쩌면 우리는 지나간 기억에 빚진 채 현재에 반응하며 살아가는 지도 모르겠다. 꼭 같아서 겹쳐질 듯한 기억들이 어렴풋해질 때면 생각한다. 소중한 한 때를 공유한 서로라 해도, 결국은 다르게 기억하고야 마는 일들과 매일 이별하며 산다는 것을. 그래서 더더욱 사랑이 존재한다면 보여 달라고 만지고 싶다고 말해지는 것을. 13년이 지나고 나서야 돋은 사랑니가 아니라, 지금 돋고 있는 사랑니임을 서른의 인영은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