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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월 Oct 16. 2019

살 목적으로 만들어졌으나, 삶의 목표가 되어버리는 집

드라마 스페셜 <집우집주> 리뷰

드라마 스페셜  < 집우집주 >  19.09.27      





  집이라는 하나의 우주. ‘어째 똑같이 없는 처지에 여유가 있어서 좋아했더니만, 있는 놈한테서 나오는 여유 구만’, ‘체면이 뭔지, 시선이 뭔지...’, ‘사람이 살 목적으로 만들어졌지만, 삶의 목표가 되어버리곤 하는 집. 우리를 울고 웃게 하는 이 애증의 공간.’      





  얼마 전 개봉해 벌써 3만 관객을 넘은 재기 발랄한 영화 <메기>를 보고 왔다. 이전에 영화 <꿈의 제인>에서 이주영, 구교환 배우를 본 게 굉장히 인상에 남았는데, <메기>에 두 배우 모두 출연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부터 기다려왔다. 게다가 개봉 전 시사회 티켓에 당첨되어 우연찮게 아트나인에서 보게 되었는데, 오 마이 갓, 이주영 구교환 문소리 배우가 무대인사까지 하러 온 것이다. 시사회 티켓 초대 때는 그런 언급이 없어서 서프라이즈로 당일에 알게 되었다. 무대 앞까지 쫓아나가 사진 찍고, 동영상 찍고, 영화 보고 그렇게 나왔는데, 그런지도 벌써 3주 정도 흘렀다. <메기>가 정식 개봉하고 이주영 배우가 출연하는 kbs 드라마 스페셜 <집우집주>를 보게 되었다.


  9월 말에 방영된 이 드라마는 사회초년생인 건축사 대리 나부랭이(?) 수아가 물리적인 집과 집의 의미를 찾아나가는 이야기다. 드라마 내 캐릭터를 너무 평면적으로 그린다던지, 설정이 진부한 면은 있었지만(결혼할 남자 주인공 부모의 대사["어디에서 사는지가 곧 신분이다" 너무 신파적...], 친구 부부가 승무원-의사로 이루어져 결혼하자마자 무리해서 리버뷰 아파트에 입주한다는 설정, 결국 여승무원의 부모가 암환자로 밝혀져 파혼에 이르게 되는 설정까지), 지금 시대의 집이란 대체 뭘까 라는 물음을 안겨주는 이야기라 끝나고 나서도 많은 생각이 들었다.   



  집이란 뭘까, 어떤 욕망을 대변할까. 물리적 속성 이상의 집의 의미와 집 안을 채우는 것들에 대해서 등등 드라마에서도 언급한 ‘사람이 살 목적으로 만들어졌지만, 삶의 목표가 되어버리곤 하는 집’에 대해 생각 안 해볼 수 없었다. 아등바등 모아도 집 한 칸 마련하기 어려운 현실에서, 우리는 빚을 내고, 악착같이 내 집 마련을 목표로 오늘도 열심히 일하고 있으니 말이다.     


  주인공 수아는 전셋집 계약 만료 기간이 가까워오자 5천만 원을 올리는 집주인의 말에 계약을 연장하지 못하고 짐을 정리하게 된다. 부모님 집에 들어가야 하나 싶다가도 애인이 어차피 나가게 될 거 같이 집을 합치자며 급 결혼 프러포즈를 한다. ‘아니 정말 그냥 이렇게 결혼으로 이어진단 말이야?’라고 말하기엔, 현실과 이상의 경제적 갭은 너무나 크다.     

  집은 정말 뭘까 싶은 이때, 수아는 짐을 정리하며 애인에게 말한다. ‘제대로 된 집에서 제대로 된 가구’로 시작하고 싶다고. 분명 그렇다. 번듯한 집에서 좋은 가구들을 들여서 시작하는 건 필요한 일이다. 수아의 말대로라면 ‘싸구려 DIY 가구’는 망가지기 쉽고, 임시로 쓰기 위해 들여온, 그러니까 제대로 된 곳에 가기 전에 유예한 시공간에서만 허락되는 물건이니까.

  되려 애인이 ‘그럼 네가 그전까지 살아온 시간은 뭐가 되느냐’고 다그치지만, 나는 수아의 말과 표정에 더 공감이 됐다. 가구 모양새를 한 ‘가짜’ 가구들이 가득 찬 집, 가성비에 만족할 수밖에 없는 현실, 아무리 안목 좋고 취향 좋다 한들 돈이 없어 침만 바르고 가는 LP판을 보는 수아의 모습. 하물며 집은 어떻겠나 싶었다.



(스포 주의)


  그럼에도 수아는 혼자 살 수 있는 집을 선택하고, 혼자 살길 바라지만, 결국엔 애인과 함께 살아도 좋다는 뉘앙스로 끝맺음한다. 수아에게 집이란 뭘까 드라마 보는 내내 궁금했는데, 그 의미를 탐색하다가 도중에 급 깨달음을 얻고 급 이야기를 진행되다가 맺기보다는 어설프게 끊어버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1부작 드라마스페셜의 한계인가 싶기도 했다. 극 중에서 수아는 월간지에 게재할 ‘내 인생의 집’에 대한 글을 쓰게 되는데, 그 장면이 극 초반과 후반에 모두 등장한다. 이와 더불어 극 전반의 내레이션들은 모두 주인공 수아의 생각이 반영됨을 시청자는 알 수 있는데, 그 메시지가 선명하게 드러나진 않았던 거 같다. 마지막 장면에서 수아는 ‘나의 우주’라고 되어있는 포토북에서 여태 살아온 집들의 모습을 본다. 폴라로이드 카메라로 찍은 사진이 연도별로 붙여져 있고, 각 집마다 특징을 메모해둔 게 보인다. 수아에게 집이란 자기 자신, 집주인의 취향, 세계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수아의 ‘우주’인거겠다. 그 우주라는 게 명확하게 다가오진 않지만, 한 사람을 구성하고 표현하게 되는 총체가 모인 공간, 그리고 단순한 그 총체의 합이 아니라 하나하가 모여 한 사람의 세계를 보여주는 건 아닐까.  

  각자 저마다의 사정이 있듯, 집집마다 집의 사정도 있기 마련이다. 부모의 도움 없이 사회초년생이 얻을 수 있는 집이란 결코 ‘결혼하면 뚝딱 30평대 아파트가 나오는’ 집일 수 없다. 수아는 친구를 통해, 자신의 결혼 준비과정을 통해 자신의 욕망과 집에 부여하는 의미를 돌아본다. 1부작 드라마 스페셜 한 편에 다 담기기 어려운 내용이겠지만 서사적 측면에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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