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있을 때만이 꼭 나 같다’, 고 느끼는 사람이라면
글을 쓰고 싶을 때나, 쓰고 싶지 않을 때나 갔던 카페가 있다. 로스터리 카페인데, 사장님이 직접 원두도 로스팅하고 핸드드립으로 커피를 내리는 곳이다. 튼튼하고 견고한 원목 인테리어 가구에 세계를 돌아다니며 모은 각종 빈티지 커피 도구들이 잘 자리 잡은 아늑한 카페였다. 자주 가다보니 서로 안면을 익히고 몇 번 대화를 하다 사장님과 더는 남남이 아니게 되었다.
그러다 어느 날 ‘오늘은 참 혼자 있고 싶다’는 생각이 들던 차였다. 순간 자주 가던 그 카페가 떠올랐는데, 조금 머뭇거려졌다. 아, 물론 사장님은 인격적으로도 좋은 분이고 프로페셔널이다. 시시콜콜 개인사를 묻거나, 친해졌다는 이유로 요청하지 않은 조언하는 꼰대도 아니다. ‘그 공간은 내가 정말 애정하는 공간이었는데...’ 갈까말까 주저하다 결국 가보지 않은 다른 카페로 발길을 돌렸다. 아쉬운 마음이 들었지만, 그 때는 정확히 무슨 마음이었는지 잘 정리되지 않았다.
며칠 전 친구와 전화통화를 하는데 어떤 얘기 끝에 친구가 이렇게 말했다. “나는 꼭 혼자 있을 때만이 진짜 나 같아.” 전화를 받는 순간에는 그게 어떤 의미일까 깊게 생각해보지 않았다. 지금 글을 쓰는 이 순간 말의 뜻을 되짚어보게 된다. ‘혼자 있다’는 건 대체 어떤 의미일 수 있을까. 어떤 상태여야 하는가. 보통 ‘혼자 있음’은 아무도 없는 집에 나 혼자 있는, 혹은 나 혼자 사는 공간에 홀로 있는, 그러니까 홀로 있는 물리적 상태를 말한다. 내게 있어 혼자 있다는 건 또 하나의 의미가 더 포함된다. 나를 아는, 혹은 나를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없는 공간에 있는 상태. 익숙한 곳이 아닌 낯선 세계에 내가 진입해 있는 상태. 혼자 있다고 ‘느끼는’ 상태가 그렇다.
카페에 가는 다양한 이유 중에서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1순위는 낯선 공간이다. 혼자 살지도, 작업실이 있지도 않은 내게, 불특정다수가 있는 카페를 가는 것은 낯선 세계에 잠시 빠질 수 있는 가장 값싸고 편리한 방법이다. 평소 나의 생활반경에 걸쳐있는 익숙한 동네 카페에서 벗어나 낯설고 생소한 느낌이 썩 나쁘지 않은 데서 홀로 있을 때면 나는 진짜 나로 있을 수 있는 것만 같았다.
나의 과거라고도 할 것 없이, 어제까지의 흔적, 심지어 몇 시간 전까지의 내 모습도 스스로 지겨워질 때가 있다. 일상과 관계에 물들지 않는 공간을 찾기 위해 애쓰는 걸 누군가는 참 예민하다고 느낄 수도 있겠다. 그럼에도 어쩌겠는가. 나는 생경한 풍경을 바라볼 때면 기분이 전환되고, 누군가를 의식하지 않아도 되는 시공간 안에서 순간이나마 자유로움을 느끼는 사람인 것을. 의미 부여가 거창해보일 지라도, 실은 별 것 없다. 그저 군중 속에 잠시 숨어 마음 편히 시간을 보내고 싶은 거다.
왜 집에서 안 자고, 돈 써서 밖에서 자냐는 소리를 들어도 휴가 때면 호캉스(호텔+바캉스)를 가는 사람들처럼, 도리스 레싱의 책 『19호실로 가다』의 주인공이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서도 매일 같은 시간 집이 아닌 호텔에 가는 것처럼, 나는 마치 ‘카페 여행가’가 되어 앞으로도 나만의 낯선 공간을 하나쯤은 마련해놓으며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