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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월 Apr 03. 2020

아찔한 기분이 들게 하는 과거의 글

찰과상 정도의 상처는 좋은 성장 아닐까






나는 어려서부터 타산지석이라는 말을 싫어했다. 누군가의 허물을 보고도 배울 수 있다는 말인데, 물론 맞는 말이었다. 맞는 말이었고, 동시에 마음에 걸리는 말이었다. 누군가의 허물은 허물일 뿐, 그건 덮어주거나 피해 가는 거지, 배움으로 승화시키는 말이 어린 마음에 영악하게 느껴졌거나 씁쓸하게 들렸다. 한편으로는 한때 유행한 자기 계발 서적에 나오는 독한 말로 사람들의 정신을 일깨우는 말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럼에도 글을 쓸 때 타산지석은 참 요긴하게 쓰인다. 특히 내가 썼던 글을 시간이 지나서 다시 읽고 최대한 객관화해서 보았을 때, 마치 타산지석처럼 느껴졌을 때, 참 도움이 된다. 다른 사람을 무안주거나 불편하게 해서 자아내는 유머보다 자신을 깎아내리며 만들어내는 유머를 좋아하는 내 성향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과거에 썼던 글을 다시 보았을 때, 이게 정말 내가 쓴 게 맞나 싶을 정도로 잘 쓴 글은 여태껏 하나도 없었다. 아찔한 기분이 들고 소름이 끼쳐서 혹시 어디에 올린 글은 아니겠지 섬뜩했던 글은 몇몇 있다. 도저히 다시 열어볼 용기가 안 나는 싸이월드 일기장 같은 글도 물론 있다. 역시 몸으로 느끼는(?) 것만큼 큰 배움도 없다 싶다.



그럼에도 쓰기, 오늘도 쓰기



상처 없이, 완전무결한 성장은 없겠지만, 그래도 찰과상 정도의 상처를 입어가며 얻는 배움은 조금은 오래 남는다. 더군다나 내 몸과 마음이 깨져서 얻는 배움은 다른 이의 허물을 지적하고 비난하면서 얻은 배움보다는 실제로 더 요긴하게 써먹게 된다. 마치 답안지를 보면서 문제를 푸는 것보다, 일단 내가 풀고 틀린 다음에 혼자 고민하는 시간이 있어야 된다는 말처럼 너무도 정석같은 말이겠지만 말이다.      

오늘의 글도 언젠가 다시 발행에서 저장 글이 될지도 모르겠지만. 일단, 오늘은 발행이다. 미래의 배움(?)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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