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정적인 애정을 갈구하는 시릴의 이야기

영화 <자전거 탄 소년> 리뷰

by 구월


연락이 끊긴 아버지를 찾으러 다니는 시릴의 모습과 시릴이 잃어버린 자전거를 되찾는 과정들은 애착 대상을 쫓는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그런 의미에서 자전거의 소유 상태는 시릴의 ‘불안정한 애착 관계’에 대한 상징적 메시지로 느껴진다. 애착 관계는 유아기에 형성되는데, 보육원에서 아버지(기 카툴)의 일방적인 연락 두절을 초조하게 기다리는 시릴의 모습을 통해 시릴이 안정적인 애착 관계를 맺지 못했음을 알 수 있다. 식당에서 일하는 아버지를 찾았을 때도 아이를 책임지기 싫다는 말조차 직접 못하는 아버지의 모습에서 부자(父子)간의 안정적인 신뢰가 전혀 없음을 추측할 수 있다. 부모에게서 방치된 상태로 자란 시릴은 영화 내내 불안한 상태의 눈빛과 경계하는 몸짓을 드러낸다. 특히 ‘진정하라’는 교사의 말에 몸부림치고, 아버지에게서 정말로 버려졌다는 사실에 자학한다. 이 장면들은 시릴의 불안감이 격렬한 좌절과 저항의 태도로 표출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시릴은 위탁모 사만다를 만나게 되면서 점차 안정된 애착 관계를 형성해간다. 사만다는 일관된 양육자의 모습을 보인다. 허황된 말로 기대를 부풀리지 않는다. 있는 그대로의 현상을 말하고, 시릴이 사실을 받아들일 때까지 기다린다. 시릴 아버지의 연락이 없을 때도, ‘보고 싶었다면 전화했을 거야, 큰 기대 하지 마’라고 말하며 시릴이 괜한 기대에 상처받지 않도록 보호한다. 동시에 사만다는 함께 행동한다. 시릴의 아버지가 일하는 식당에 찾아가 시릴과 함께 닫힌 문밖에서 문을 두드린다. 창가 안을 들여다본다. 사만다의 연인 ‘질’이 버릇없는 말을 내뱉은 시릴에게 ‘집에 오지 말라 할 거야. 그럴 거면 집에 오지마!’라고 말했을 때도, 그런 말은 하지 말라며 제재한다.


사만다가 처음 시릴에게 자전거를 찾아주었을 때에 시릴은 ‘왜 자전거를 찾아주었는지’ 묻지 않고, 단지 ‘얼마 줬어요?’라고 내뱉곤 자전거를 돌려받는다. 불안정하고 일방향적인 관계만 맺었던 시릴의 모습이 단적으로 드러난다. 그런 시릴이 다소 건조하지만 담백한 사만다의 안정적인 애정에 젖어 든다. 그제야 시릴은 사만다에게 묻는다. ‘왜 저를 맡았어요?’, ‘왜 저를 허락했어요?.’ 근원적인 질문. 사랑이 없으면 물음도 없다.


영화는 보육원 아이와 위탁모의 관계를 가슴 뜨거운 포옹과 맹목적인 사랑으로 단순화하지 않는다. ‘이쯤이면 마음을 열고 환희에 찬 얼굴로 품 안에 안기겠지’ 싶은 관객의 추측에 조용히 반기를 든다. 그런 점이 낯설었지만, 한편으로는 기존 영화의 게으른 플롯 전개를 한 방 먹이는 것 같아 좋았다. 더불어 영화상에서 종종 인물이 카메라를 등진 채로 대사를 치고, 이를 듣고 있는 인물의 얼굴을 포착하는 장면들이 있다. 시릴의 아버지가 사만다에게 아이를 책임지기 부담스럽다고 말하는 장면, 무라드 가족과의 약속이 있다는 사만다의 말에 시릴이 싫다고 말하는 장면들이 그렇다. 카메라를 등진 인물은 목소리만 나오고 정면에 드러나는 인물의 표정과 행동에 관객은 집중한다. 시릴 아버지의 무책임함과 시릴의 저항심을 더욱 강하게 느낀다. 이러한 연출은 관객이 인물의 대사에만 기대지 않고 이미지 자체로 서사를 감각할 수 있게 한다.


영화의 전반부터 후반부까지 시릴은 자전거를 되찾기 위해 뛰고 또 뛴다. 그러고서 자전거를 훔치려 한 아이와 몸싸움을 벌인다. 온몸으로 저항해 되찾은 자전거는 누군가 또다시 훔쳐 갈까 봐, 잃어버리게 될까 봐 조마조마한 상태로 시릴 옆에 있다. 그런 의미에서 마지막 장면에 시릴이 자전거를 타고 어딘가로 향하는가는 중요하지 않다. 숲속 나무 아래로 떨어진 시릴이 도로로 나왔을 때, 자전거는 그 자리에 그대로 있다. 누군가가 훔쳐 갈지도 모를, 잃어버릴지도 모를 그 자전거는 더는 어딘가로 ‘버려지지 않고’ 시릴 옆에 있다. 그 자전거를 타고 시릴은 달린다. ‘그’ 자전거를 타는 소년이 있다.


자전거 탄 소년.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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