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퍼스널 쇼퍼> 리뷰
영화 <퍼스널 쇼퍼>는 교감(contact)의 주체이자 대상인 모린의 이야기다. 영화 초반, 칸딘스키가 영향 받은 심령주의(spiritualism)와 신지학(theosophy)이 간접적으로 언급되는데, 이는 (추상적인) 미지(未知)의 존재를 느끼고자 하는 모린의 열망이 교차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모린은 죽은 쌍둥이 오빠 루이스처럼 영혼의 존재를 인지할 수 있는 영매인데, 남매에게는 모두 선천적 심장 기형이 있어 한 명이 먼저 죽으면 사후세계에서 상대에게 ‘신호(sign)’를 보내기로 약속했다. 모린은 루이스가 죽고 그의 신호이자 존재를 인지하길 갈망한다. 동시에 모린은 ‘퍼스널 쇼퍼’ 일을 하며, 자신이 선택한 의상이 (키라를 통해) 세상에 보여 지길 바란다. 그런 모린에게 어느 날 수신불명(unknown)의 메시지가 도착한다. 모린은 메시지를 보낸 이가 누구인지 궁금해하지만, 메시지엔 질문만이 반복될 뿐이다. 이렇듯 영화는 루이스의 존재와 수신불명의 존재를 묻는 서사를 주축으로 ‘미지의 미지’를 보여준다.
<퍼스널 쇼퍼>는 명료한 주제를 드러내지 않음으로써 관객으로 하여금 ‘영화가,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게 대체 무엇인가’라는 혼란을 줄 수 있다. 여기에는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분명하게 알고자 하는’ 관객들의 본능을 전제로 한다. 그러나 영화는 끝내 답하지 않는다. 나는 영화를 보며 (루이스와 달리 모린은 영혼의 존재를 감지할 수 있지만 아직 내세를 향한 믿음은 부족한) 모린이 내세를 ‘확실히’ 믿기까지의 변화가 궁금했고, 동시에 영화에서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은 것도 감독의 의도인가 생각했다. 눈에 보이는(visible) 십자 표시와 뜬금없이 컵이 깨지는 모습을 (루이스의) 신호로 해석할 순 있으나, 이는 내세가 존재한다는 하나의 증거가 될 수는 있어도 루이스의 신호라는 모린의 ‘믿음’은 모린 주체의 몫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에 루이스로 추측되는 또렷한 혼의 형상도 관객의 눈에는 포착되지만, 모린은 그조차 보지 못한다.
보이지 않는데 믿을 수 있는지, 그 믿음은 확실한지 혹은 그런 느낌이라고 생각하는 것뿐인지, 영화는 등장인물의 대사와 영화적 장치를 통해 묻는다. 그런 의미에서 (모호와 미지의 영역을 남겨두는) 영화는 오독하기 쉽다. 장면들을 반복해 볼 때마다 확답은커녕 더 많은 질문이 따른다. “No desire if it’s not forbidden, 금기 없이는 욕망도 없다.”는 메시지도 그렇다. 처음에는 이게 하나의 주제이지 않을까 생각하게 된다. 모린이 키라의 옷을 몰래 입어 보려 하거나, 보이지 않는 루이스의 영혼을 보고자 하는 욕망이 언뜻 위 메시지에 수렴한다고 느낄 수 있다. 비교적 분명해 보이는 장치다. 하지만 이는 감독이 말하는 핵심 메시지는 아니다. 영화는 명확한 명제를 보여주며 이를 더 확고히 하는 방식을 취하지 않기 때문인데, 감독은 줄곧 불분명하고 믿음직하지 않은 것들을 던지며 미지의 조각을 남겨 둔다는 점에서 그렇다. 얽힌 질문의 회로를 걷다 어느새 영화가 끝나니 주인공 모린과 영화를 보는 나 자신이 겹쳐져 보인다. 또 하나의 질문이 생긴다. 나야말로 이 영화에서 무엇을 보고 싶어 하는가.
영화에는 유독 문(door)을 언급하거나 보여주는 장면, 문을 열거나 문이 닫히는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 모린이 문의 형상을 종이에 드로잉하는 장면과 그 그림 위로 새겨진 십자 모양 흔적을 보여주는 장면이 그렇다. 또한 잉고에게 ‘영혼이 있다는 직관적 느낌이 들면 살짝 열린 문이 보인다’고도 말하는 모린의 말을 통해 영화 속에서 문은 중요한 상징임을 알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 후반부, 호텔 복도에 닫혀있는 수많은 문을 훑어내듯 촬영한 장면은 강렬하다. 이는 미지와 인지 사이에서 방황하는 존재들의 ‘물음의 기로’를 나타내는 듯도 보인다. 이 문을 통해 내세와 현세가 통한다고 느끼는, 혹은 그런 믿음에 대한 존재의 망설임을 은유한 건 아닐까. 물음을 거듭하는 존재와 관객 그리고 영화. 그렇게 영화는 끝날 때까지 묻는다. ‘R U su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