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올리브 나무 사이로> 리뷰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의 영화 <올리브 나무 사이로>는 한 영화의 촬영 과정을 그린 영화이다. (영화 속 영화는 키아로스타미가 실제로 만든 영화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이기도 하다.) 영화 속 영화의 남자 주인공 호세인은 상대역인 테헤레를 짝사랑하는데, 그의 꿈은 글을 아는 여자와 결혼해 가정을 만드는 것이다. 11살 때부터 남의 집 일을 하며 벽돌을 쌓았던 그는 더는 벽돌을 쌓는 일만큼은 하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그런 호세인에게 주변 사람들은 ‘너는 집도 없고 글도 모르는데 여자를 원하냐’며 현실을 직시하라 한다. 한편, 영화 속 영화의 여자 주인공 ‘테헤레’의 이름은 코커의 지진 생존자들이 생활 터전을 옮긴 ‘테헤란’ 지역을 연상케 한다. 제대로 된 집에서 삶의 기반을 닦으려는 사람들을 상징하는 것도 같다.
영화 속에서 반복해 언급되는 ‘집’은 이란의 두 지역(코커와 테헤란)과 두 남녀 주인공(호세인과 테헤레)의 대비에서도 볼 수 있듯, ‘Home’과 ‘House’ 다중적 의미로 존재한다. Home은 ‘가정’, 가족과 함께 사는 공간을, House는 단순히 건물로써의 집을 뜻한다. 대지진은 가정을 해체하고, 집을 비롯한 건물들을 파괴한다. 감독은 극중 호세인은 가족의 부재를, 테헤레의 가족들은 집(생활 터전)의 결핍을 (상대적으로 더 강하게) 갖고 있음을 그린다. 이는 재난을 겪고 난 이후 느끼는 생존자 각각의 욕구이자 희망이 사실적으로 드러나는 지점이다. 영화 속 영화인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에 등장하는 파헤드의 말은 90년대 당시 재난 이후 이란의 상황을 그대로 반영한다. ‘맑은 공기만 마시고 살 수 없다, 다른 것도 필요한데 그건 고속도로 옆에 있다.’ 지진 생존자들이 피난갈 수밖에 없는 절박한 심경을 대변한다. ‘거기선 아무 때나 움직일 수 있으니까.’ 그가 담담히 말한다. 피난처로 가는 도중 고속도로에서 길이 막혀 죽었다는 이들이 떠오른다.
이렇다 할 주소 없이 나무 뒤 텐트에 사는 코커의 생존자들은 호세인의 말처럼 ‘교육받은 적 없는 무식한 농사꾼’과 ‘집이 있고 글자를 아는 사람들’로 나뉜 듯도 보인다. 재난 이후 그 격차는 더 커졌을 테니 영화는 이란의 비참한 현실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영화 속 영화 촬영이 끝나고, 영화 스텝 중 한 명은 테헤레에게 ‘너도 화분을 챙겨. 네 화분을 챙겨’라고 말한다. 화분을 든 테헤레는 떠나고, 호세인은 물이 든 양동이를 쥔 채 테헤레가 떠난 방향으로 뛰어간다. 호세인이 아무리 절절한 구애를 펼쳐도 대답 없는 테헤레. 이들을 지켜보는 극 중 감독. 화면에서 점처럼 멀어져가는 둘을 응시하는 롱쇼트. 두 사람이 거의 가까워질 때쯤 영화의 음악이 바뀐다. 경쾌하고 빠른 템포의 음악. 갈지자로 따라 걷던 길 대신, 곧장 숲을 가로질러 뛰어오는 호세인의 모습. 둘의 관계가 이전보다는 긍정적으로 바뀌지 않았을까 짐작해본다.
영화 중반부, 망령들이 ‘안녕’, ‘잘 있어’라는 말에만 대답한다는 파헤드의 말이 끝나자, 올리브나무들이 바람에 흔들리는 장면이 나온다. 바람 따라 좌우로 움직이는 올리브나무들은 마치 좌우로 손을 흔들며 ‘잘 있어’라고 대답하는 것만 같다. 지진이 난 이후에도 삶은 계속된다. 가족과 생이별하고 집을 잃어도, 남은 삶 안에서 각자의 ‘집’을 짓고 희망을 좇는 인물들을 우리는 영화를 통해 찬찬히 보게 된다. ‘안녕’, ‘잘 있어’ 물으며, 그럼에도 삶을 긍정하는 영화의 시선이 따뜻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