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멋진 하루> 리뷰
희수(전도연)가 헤어진 전 남자친구 병운(하정우)에게 빌려준 돈 350만 원을 받기 위해 그를 찾아 나서면서 영화 <멋진 하루>는 시작된다. 경마장에 들어선 희수가 오랜만에 본 병운을 보며 뱉는 첫마디.
희) “돈 갚아. 꿔 간 돈, 350만 원.”
병) “아이, 갑자기 왜 그래애~?”
병운은 태연하게 오랜만이라며 맞받아친다.
하지만 싸늘한 희수의 시선.
희) “나 지금 장난하는 거 아니거든?”
날카로운 희수의 목소리가 귓가에 쨍하게 꽂힌다. 영화는 시종일관 이 분위기를 유지한다. 주인공의 감정, 특히 희수의 짜증 섞인 듯한 감정이 간접적으로 느껴지는 미장센이 영화 곳곳에 배치되어 있다.
병) “그럼, 나 만나러 여기 온 거야?
(...) 어쨌든 반갑다야. 나 너 보고 싶었는데. "
희) “돈 갚으라니까!”
병) “그럼~ 갚아야지~ 알아. 그래도 오랜만에 만났는데.”
희) “야!”
내리 꽂히는 희수의 목소리 다음, 오프닝 타이틀 ‘멋진 하루’
영화를 보는 내내 최근에 보았던 영화 <토니 에드만>이 떠올랐다. 아니, <토니 에드만>을 보면서 이 영화가 떠올랐다고 해야 순서가 맞으려나. 두 영화 모두 주인공의 불편하고 짜증 섞인 감정을 몸서리치듯 보여주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멋진 하루>에서는 이를테면, 경마장에서 나와 희수의 차 앞 와이퍼에 끼여 있는 각종 전단물이 보이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한껏 구겨진 얼굴로 짜증스럽게 전단물을 떼어내는 희수의 표정과 괘념치 않고 해맑게 웃으며 통화하는 병운의 모습은 대비된다. 심지어 거칠게 떼어내느라 와이퍼는 고장 난다. ‘어디로 가냐’는 희수에 말에 태연히 ‘출발해’라고 답하는 병운의 모습에서 우리는 영화 전반의 분위기를 감지할 수 있다.
글을 퇴고할 때도 시간을 두고 고치듯, 영화도 한 번 보고 시간이 지나 다시 보면 달리 보인다. 그리고 어떤 영화는 시간이 지난 뒤에도 나만 아는 여운이 남는다. 영화의 몇몇 장면과 나의 삶 혹은 욕망이 교차했기 때문일 것이다. 영화 <멋진 하루>는 주인공 희수의 눈빛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던 영화다. 그녀는 돈을 받으러 병운과 하루를 보낸다. 운전을 하며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정말로 빌려준 돈 350만 원을 받기 위해 병운을 찾아간 걸까. 그때의 희수의 표정은 내게 이 영화의 잔상이 되었다. 해가 바뀌고 지금으로부터 한 달 전쯤, 나는 오랜만에 이 영화가 문득 떠올랐다. 그리고 글을 쓰기 전에 다시 보았다. 희수와 함께 하는 병운의 몸짓도 보이기 시작한다. 왜 나는 이 영화를 되돌아보았을까.
<멋진 하루>의 이윤기 감독은 이 둘이 함께한 서사도, 헤어진 뒤 경험했을 각자의 서사에 대해 어떤 설명도 설득도 늘어놓지 않는다. 다만 그 '멋진' '하루'에 집중한다. 해가 지기까지의 하루의 시간 동안 둘은 서로가 알고 있던 모습을 확인하기도 하고, (나는 모르고) 타인과 엮이며 반응하는 서로를 발견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감독은 왜 ‘멋진 하루’라고 표현했을까. 아웅다웅하며, ‘내가 그때도 이래서 헤어졌지’ 싶은 그 하루를, 빌려준 돈을 받기 위해 같이 돈을 꾸러 다니는 '이상한' 이 하루를.
하루가 저물고 희수는 떠난다. 병운도 다시 제 길을 걷는다. 차 안에 돌아온 희수는 알게 된다. 자신이 부러뜨린 고장 난 와이퍼를 병운이 고쳐놓고 갔음을. 병운이 떠난 방향을 살피던 희수, 그녀는 정작 자신 때문에 서두르다가 다리를 다친 병운이 절뚝거리며 걷고 있음을 발견한다. 노점상 앞에서 웃으며 물건을 고르는 병운. ‘이래서 내가...’ 복잡하고 미묘한 표정의 희수.
내게 이 영화는 잊을 때쯤 생각나는 영화다. 무슨 내용인지, 어떤 표정인지 다 알 것 같지만 한번쯤 다시 보고 싶은 생각이 드는 영화다. 희수가 병운을 한 번쯤 다시 찾아가 보고 싶었듯, 갚지 않은 나머지 돈을 굳이 남겨두었듯. ‘멋지다’의 의미는 각양각색이겠지만, 감독은 그 둘이 함께한 하루의 잔영을 멋지다고 표현한 것은 아니었을까 짐작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