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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월 Apr 10. 2020

우리는 어디에든 있다

나는 어떤 사람으로 규정할 수 있는가







‘적극적으로 솔직해지고 대놓고 다정해지고 싶다.’      



처음 브런치를 할 때부터 종종 나를 소개하는 글을 수정해왔다. 그러다 오래도록 한 문구를 쓰고 있는데 그게 바로 이것이다. 나의 소개글에는 언제나 나의 삶의 지향을 써놓았다. 지금은 타인에게 솔직하고 다정한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 동시에 나 스스로에게도 솔직하고 다정해지고 싶은 바람을 담았다. 지금의 나를 최대한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는 말이라 생각한다.


국적, 성별, 나이, 직업, 정치 성향, 성적 취향 등등 우리는 하나 이상의 정체성으로 규정된다. 한국 여성이면서 비장애인 대학생, 미국 남성이면서 성소수자, 이성애자 장애인이면서 진보정당 국회의원이다. 여기서 예로 든 성과 젠더 또한 남과 여, 이성애와 동성애로만 이분되지 않으며 꽤나 다양하다. 나를 어떻게 소개할 것이냐는 나의 선택이기도 하지만, 어떻게 소개될 수 있고 정의할 수 있는지, 드러낼 수 있는지는 사회적 합의가 어느 정도 되어있는지에 따라 달라지기도 한다.


온오프라인으로도 나뉘기도, 공과 사를 구분해야 하는 직장과 동호회 모임에 따라 또다시 달라진다. 어느 정도 나를 펼쳐 보일지, 접어둘지에 따라 소개는 달라진다. 보여진 만큼 그 사람의 전부가 아니듯, 보여지지 않은 것만이 진실이라고도 할 수 없다. 상대가 보여주고 싶은 만큼의 진실도 있다.


이때 우리를 규정할 수 있는 말 또한 달라진다. 어디에선 다수의 범주에 속하기도 하며, 어딘가에서는 소수자의 위치에 속한다. 모든 곳에서 우월적 위치를 점하는 사람도, 반대로 모든 곳에서 소수자가 되어야만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우리는 어디에든 있다. 우리를 어떤 사람으로 규정할지를 판단하려는 사람도 어디에든 있다.      


그럼에도 지금의 자신이 어떤지, 어떻게 되어가고 싶은 지만은 우리가 정할 수 있다. 나의 현재와 나의 지향, 변화는 필연이다. 언젠가 나를 소개하는 말도, 당신을 소개하는 말도 변하게 될 것이다. 그 안에서 우리의 정체성은, 정체성의 진실은 어디쯤에 위치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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