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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월 May 16. 2020

국밥과 꽈배기

변해가는 아침상의 풍경




국밥과 꽈배기 사이


  나에게 아침밥은 아침'밥'이다. 누군가에게 아침밥은 빵이 될 수도, 고기가 될수도, 샐러드가 될 수도 있다는 걸 늘 알면서도 아침에 먹는 식사는 아침밥이라고만 해야될 것 같다. 뭔가 든든한 아침은 밥이 아닐까 하는 은근한 밥부심. 아침빵, 아침고기, 아침샐러드를 발음하고 있자면  뭔가 식사를 한 느낌이 들지 않는다. 오래도록 굳은 언어 습관은 이토록 질기다. 생각이 굳은 것도 모자라 느낌도 딱딱해져버린 것인가.

  굳어진 생각이 얼마 전부터 조금은 몽글몽글해진 건 최근 변화된 아빠의 주말 아침식사를 보면서부터다. 주말 오전에도 일찍 일어나 씻고 단정한 차림으로 아침상을 받던 아빠는 삼십 여년간 그 루틴을 반복해 살았다. 아침상을 받아 먹고, 출근해서 종일 일하고, 집에 오며 다시 저녁을 먹고 티비를 보다 잠드는 패턴의 연속. 거의 내가 살아온 만큼의 시간 동안 다져진 일상의 습관이란 변화되기 어려울 뿐더러, 바꾸어야만 하는 이유를 찾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꽈배기 사건'이 발생한다. 부모님과 차를 타고 지나가다 잠깐 간식으로 먹을 한 꽈배기 집을 우연히 발견했다. 무심코 들른 이 집은 허름한 간판과 부실해보이는 인테리어 뒤로 반전의 맛을 숨기고 있었다. 이는 올해 아빠의 주말 아침 겸 점심 식사를 완전히 뒤엎었다. 아빠의 주말 아침상은 세가지다. 2년 째 정기 결제 중인 넷플릭스, 신선한 원두를 간 드립 커피 한 잔, 그리고 꽈배기. 밀레니얼 아니고 386 세대의 주말 아침상이 된 것이다. 국밥에서 꽈배기로의 진화, 그 거리감은 너무도 다른 장르였다.




  나의 아침은 한그릇 요리 혹은 밥과 국 한식이 주를 이룬다. 설거지하기도 간편하고, 여러 반찬 차릴 필요없이 꽤 영양가있는 음식을 섭취할 수 있다. 혼자 먹는 아침은 이렇게 해결하거나 처리하거나(?)지만 가족이 여럿일 경우에는 괜스레 눈치가 보인다. 특히 아빠가 함께할 때는 밥과 국, 나물과 생선, 접시에 조금씩 내놓은 밑반찬이 고루 차려져야 했다. 특히 밥에 국은 필수다. 그런 아빠가 설탕을 가득 묻힌 꽈배기를 아침으로 먹는다는 건 일종의 가정의 작지만 큰 혁명이었다. 나의 식습관은 아빠를 많이 빼닮기도 했다. 어릴적부터 지금까지. 아빠의 변화가 너무나 신기하고 반갑기도 일종의 배신감같은게 있기도 했다. 아이러니했다. 

  꽈배기를 먹기 몇달 전즈음 아빠는 정년 퇴직을 했다. 삼십 여년간 일했던 한 회사를 그만둔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나는 알지 못한다. 고작 삼십년도 채 살지 못한 내가 감히 헤아릴 수있는 단계는 아니다. 퇴직 이후에도 아빠의 주된 일과는 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아침상도 그 중 일부였을 것이다. 그런데 달라지기 시작했다. 아빠는 변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던, 변할 이유조차 느끼지 못할 세대라 애써 재단했던 내 스스로의 오만을 인정해야 했다. 평일에도 주말에도 새벽 다섯시면 일어나 옷 매무새를 다잡고 집안을 환기시키며 아침을 여는 아빠는 그렇게 삼십 년이 넘게 살아왔다. 아침상을 받는 사람으로, 여러 반찬과 함께 국이 꼭 있어야 든든한 아침으로 생각하는 가장, 그런 아침을 먹고 늘상 출근을 하고 일을 하고 돈을 벌어왔을 것이다. 퇴직 이후의 삶에서 아직 아침상을 차려 먹는 주체가 되지는 못했지만, 아침에 갓 나온 꽈배기를 사오는 주체가 되었다. 커피를 내리고 같이 볼 넷플릭스 시리즈 드라마를 같이 이야기하는. 아침상의 풍경이 계절과 함께 바뀌어 간다. 국밥과 꽈배기 사이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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