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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수의사 야화 Feb 05. 2021

나의 반려견 사랑이

내가 그녀를 만난 건 이십 년 전이다. 품종은 잉글리시 코카 스파니엘 이름은 사랑이다. 나는 그녀의 3번째 주인이다. 첫 주인은 아기 없는 부부였고 부인이 너무 사랑이만 예뻐해 결국은 남편의 구박으로 시골 빈집에 두고 키웠다고 했다. 둘째 주인은 애견샵을 하는 예쁜 언니였다. 사랑이랑 산책 중 큰 진돗개가 느닷없이 사랑이를 물었고 우리 병원에 왔다. 큰 수술을 두 번 하는 동안 정이 들었다. 그러던 중 애견샵이 망하면서 다 큰 말썽쟁이 코카를 맡아줄 데가 없었고 얼떨결에 사랑이를 떠맡게 되었다. 샵 주인은 내게 사랑이가 이 병원에 있으면 평생 걱정 없이 살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병원에서 코카를 키운다고 했을 때 우리 선배는 ‘미쳤구나 3대 지랄견 중 하나를 더군다나 병원서 키우다니 불가능하다고 했다. 그 말소리가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그러나 그녀는 내게로 왔고 우리 삶은 시작되었다.

 2살짜리 코카라 에너지가 넘쳤다. 목줄을 하고 산책을 나가면 너무 이리저리 끌고 뛰어서 우리 엄마는 산책을 나갈 수도 없었다. 운전 중엔 무릎에 느닷없이 올라와 사고 날 위험도 있었다.


시작은 그랬지만 나는 수의사고 그 당시 반려견 훈련이 아닌 교육에 관심이 많았기에 개와 함께하는 교육에 정성을 기울였다. 야단치고 혼내는 훈련에서 잘하는 걸 칭찬하는 교육으로 방향을 잡았다. 영국의 예절견 교육을 받기 위해 삼성 애버랜드에 6개월간 매주 일요일을 온종일 할애했다. 서울대에서 하는 일본의 제일 유명한 애견 훈련사 초빙 강연 교육도 받았다. 사랑이는 나보다 학벌이 길어진 것이다. 영국식 일본식 교육을 같이 받았고 그러면서 말썽꾸러기에서 예절 바른 개로 다시 태어났다. 사람으로 치면 하버드대 나온 셈이다. 


내가 살던 청담동에서 잠실 병원까지 한강으로 뛰어가면서 출퇴근을 같이 했다. 은행, 동사무소 어디든 같이 다녔다. 동사무소에는 같이 들어갈 수 없어 밖에 기다리게 했더니 지켜보던 이가 내가 나올 때까지 개가 기다렸다고 신기해하면서 맹인 안내견이냐고 물었다. 일요일 세미나 참석을 위해 아침에 나가 한밤중에 들어갔더니 사랑이는 내방 이불에 똥을 한 바가지 싸 놓고 이불까지 덮어놓았다. 방문까지 닫아서 집에 있는 누구도 똥 싼 내방을 몰랐다. 이불을 젖혔을 때의 경악하던 나의 모습 지금도 생생하다. 


지금 생각하니 아름다운 추억들이 말할 수 없이 많았다. 그렇게 세월이 흘렀고 사랑이는 20살을 채우고 올해 7월 내 곁을 떠났다. 개에게 20살이란 사람에겐 120살이다. 반려견은 평균 15살에 관을 짰으니 사실 내 곁에 5년, 개로선 30년 세월을 더 있어준 것이다. 19살까진 너무 건강해서 나이가 들어가는 걸 전혀 몰랐다. 


작년 가을부터 치매가 시작되었다. 개에게 치매가 있는지 모르는 사람들도 많겠지만 사람과 똑같다. 인지기능 저하 증상은 배뇨 실수, 같은 곳을 빙빙 돌기, 밤에 울기 등등 사랑이도 화장실 실수를 한 적이 없었는데 어느 날 밤에 울어서 나가보니 화장실 변기 틈에 머리를 넣고 돌아 나오지 못해서 길을 잃어서 울고 있었다. 새벽 1시고 3시고 나를 부른 적이 수없이 많아졌고 언니랑 밤새 새우잠을 번갈아 자면서 그녀 곁을 지킨 날이 많았다. 소고기, 연어, 닭 안심 매끼 새로 준비하는 식단엔 정성이 넘쳤다. 퇴근길 포장해 오는 혜화동 삼계탕을 좋아했다. 퇴근 후 현관문 열 때면 혹시 혼자 죽었으면 어쩌나 심장 떨어진 날이 많았다. 


매일매일이 헤어지기 싫은 날의 연장이었지만 사랑이는 좋은 날 내 곁을 떠났다. 화장터에서 화장해주었던 직원이 사랑이 뼛가루는 엄청 하얗고 고운데 건강한 애들 뼈는 희고 아팠던 애들 뼈는 검다고 경험담을 얘기해 주셨다. 사랑이를 화장하고 온 다음날 아침 사랑이 우는 소리에 나랑 언니랑 동시에 거실로 뛰어나왔다 죽은 사랑이가 울다니 언니랑 자다 깰 정도로 똑같이 환청을 들을 수 있을까 싶었다. 참 신기하게도 창 밖에서 지져 귀는 새의 울음소리가 사랑이 우는 소리랑 너무 똑같았다. 

사랑이 49제 날 한 스님께 물어봤다. 사랑이 죽어서 어디로 갔을까요? 뭐가 되어 있을까요? 스님은 묻지도 궁금해하지도 말라고 했다. 이 세상에서 너무 편안하게 살다 가면 죽고 나서 일주일 안에 헌 옷 대신 새 옷을 갈아입는다고 했다. 사랑이는 죽은 다음날 내게 인사하러 왔던 것이다. 시끄러웠던 새소리의 의문은 풀렸다. 


수의사가 평생 관리한 사랑이는 아픈 데가 없었다. 나를 못 알아보는 사랑이를 보면서 ‘사랑아 다른 건 다 잊어도 언니가 너를 많이 사랑한 걸 잊으면 안 돼’ 나의 30대, 40대를 같이 보낸 우리 집 개는 나에겐 친구이자 연인이자 최고의 가족이었다. 


아직 우리 집엔 사랑이가 쓰던 방석, 이불, 칫솔, 치약, 샴푸, 갤러리아 백화점에서 산 겨울 옷, 단지에 담긴 뼛가루 어느 것 하나 버리지 못했다. 엄마는 49제 전에 정리하라고 했는데 아직 못하고 있다. 함께한 매 순간순간이 찬란했다. 사랑아 사랑한다. 보고 싶다. 다시 너와 인연이 되길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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