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아이를 위한 거리2
박완서 단편 소설 '카메라와 워커'에는 전쟁으로 고아가 된 조카에게 넘치는 사랑과 연민을 가진 고모의 이야기가 나온다. 고모는 애지중지 조카를 키웠는데, 이로 인해 조카가 연약한 아이로 큰 것 같아 후회한다. 고모는 일할 나이에도 변변한 일도 하지 않고 카메라만 사달라는 조카가 철없다 생각했다. 그러던 조카가 산악지역의 공사 현장에 일하러 가고, 연락이 뜸한 조카를 보러 현장을 찾아간 고모는 흙 묻은 조카의 워커에서 조카가 철이 들었구나 하는 안도감을 느낀다.
작년 이맘때 읽었던 내용인데, 점차 커가는 아이와 나의 적절한 거리가 어떠해야 하는지 고민하며 그 이야기가 문득 떠올랐다. 양육자가 아이의 성장을 위해 거리를 두었더라도 흙 묻은 워커와 같은 성장의 증표(?)를 확인하기 전까지는 노심초사 불안한 마음일 것 같다.
나는 아이가 어릴 때도 적절한 거리를 두고 주체적인 아이를 기르기 위해 노력했었다.
구체적인 노력은 큰아이 초등학교 1학년 입학식부터였다. 큰아이 초등학교 입학식에서 담임선생님은 아이들이 숙제와 준비물을 챙기는 데 미숙할 수 있으니 항상 아이의 알림장을 확인하여 숙제와 준비물을 챙겨달라고 당부하셨다. 담임선생님께서 어떤 취지로 그런 말을 하셨는지 이해하지만 나는 우리 아이가 자기 준비물은 스스로 챙길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아이가 어렸을 때부터 스스로 뭔가를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키워나가길 바랐다. 그래서 입학식 후 알림장을 왜 스스로 챙겨야 하는지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 아이가 혼자서 준비물을 챙기게 했다.
성인이 되어가는 아이들은 크고 작은 문제를 만날 거다. 그럴 때마다 적극적으로 도움을 주거나 개입하고 싶어지는 마음을 붙들기는 힘들다. 때로는 아이가 스스로 하려고 하는 일에 간섭하여 아이와 갈등을 겪기도 한다.
나는 주로 그런 경험을 아이들 시험 기간에 많이 한다. 그때야말로 아이와의 적정한 거리가 절실히 필요하다.
언제가부터 아이들과의 거리 두기가 힘들어 지는 시기에는 나만의 공간(주로 단골 카페)에서 스스로를 아이들과 격리하려고 했던 것 같다. 덕분에 아이들 문제가 아니라도 남편 혹은 내 일과 거리를 두고 싶을 때도 나는 그 방법을 자주 쓰게 되었다.
오늘은 큰 아이의 수능날인데, 나는 아이러니하게도 정상출근을 하였다. 내 머리속에 가득할 아이 컨디션에 대한 걱정과 긴장으로 부터 거리를 두기 위해 내 일로 피신한다.
사랑이 간섭이 될 무렵, 아이와의 거리가 필요한 시점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