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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투오투오 Jan 10. 2016

졸업식이 다가오고 있다.

대학 졸업을 앞둔 25살

졸업식이 싫은 이유는 두 가지다.


첫 번째.

대학을 아직 '졸업'하기 싫다.

뭔가 대학을 졸업하는 순간 어린시절이라 칭할 수 있는 기간이 끝나는 느낌이다.

대학원을 가지 않는 이상 더는 학생이라 불릴 일도 없을테고, 그저 사회인이 되기 때문이다.


두 번째.

졸업'식'이 싫다.

우리 친가 쪽은 사촌들이 졸업할 때마다 모두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집안 어른들은 가서 축하해주는 전통이 있었다고 한다(난 이번에 난생 처음 알게 되었지만).

친척 중 막내인 나는 솔직히 이 전통이 매우 많이 부담스럽다. 친척 언니오빠들은 대학교 끝나고 바로 대학원이나 취직으로 연결이 되었는데, 나만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딱히 친척들이 이런 점을 꼬집는 다거나 그런 분위기가 아니기는 하지만 졸업식이고, 내가 주인공인 만큼 적어도 모든 분들이 나의 장래와 취직에 대해 물을 것이기 때문이다.

상상만 해도 벌써 위가 아파온다.


하아.

사람의 체면이란 것이 참 그렇다.

그리고 자격지심이란 것이 참 그렇다.

상대방은 생각도 안하는데 혼자서만 온갖 상상을 해가며 스스로를 망가뜨리게 된다.


저 사람은 나를 어떻게 볼까.

내가 보기에도 너무 초라한 내 상태를 보고 비웃지는 않을까.

자신들과는 급이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부모님의 오점이 내가 되지는 않을까.


늘 이러한 생각에 사로잡혀 있다 보니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싫어지고, 나와는 다른 처지 혹은 같은 처지에 놓인 친구들 조차 멀어지게 된다.

그리고 이런 나의 마음을 몰라주는 가족이 미워지고, 그들의 탓이 아님에도 원망을 하게 된다.


누구의 탓이라 할 수 있을까.

게으름이라는 태만에 빠져 우울함을 핑계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나의 탓일까.

아니면 나보다 더 훌륭하고 더 성실하고, 정말 나라면 당장에 뽑을 것 같은 내 친구들조차 취직을 못하는 사회적인 환경 탓일까.


아마 두 가지가 혼합된 것이겠지.

하기 싫다는 마음을 두려움으로 포장하여 저어하는 나에게 그렇지 않아도 살기 팍팍한 사회는 관심을 줄 수 없는 것이다.


만약 내가 흥미 있는 과로 대학 입학을 했더라면 달라졌을까.

만약 어렸을 적, 부모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내 뜻을 좀 더 굳건히 펼쳤다면 뭐가 달라졌을까.


요즘따라 사람들이 복고 트랜드에 흥미를 보이고, 과거에 집착을 하는 건 이러한 생각 때문이지 않나 싶다.


지금과는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었던 그 때 그 시절.

현재의 어려움을 아직 겪지 않았고, 나름대로 힘들었지만 과거라는 미덕에 색칠되어 뭔가 아련하게 느껴지는 시절.

지나고 나니 행복했다고 말할 수 있는 어렸을 적.


부질없는 미련이란 걸 알면서도 과거의 선택과 과거의 추억에 자꾸 빠져들게 된다.


하지만 그러는 사이에도 시간은 가고, 날짜는 점점 빠르게 달려 벌써 2016년이 되었다.


2016년의 나는 드디어 학생이라는 타이틀을 잃게 될 것이다.


친척 중 가장 못난이로 남을지 아니면 새로운 타이틀을 곧 딸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솔직히 지금으로서는 졸업도 싫고 졸업식도 싫다.


나는 아직도 내가 뭔지 모르겠는데,

시간은 자꾸 가고,

미래의 나를 꿈 꿀 새도 없이 과거의 나만 꾸짖게 되고, 현재의 나는 길을 잃었다.  


과연 내년의 나는 어떨까.

늘 그저 좀 더 나은 내가 되기를 바랄 뿐이다.

그리고 그러기 위한 노력을......

이번 한 해는 꼭 성실히 수행하여 뭐라도 해낸 나를 만들어 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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