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타이야기 11

마르사 쉴록 - 바다의 진면목, 오일장 느낌의 장터, 루쯔

by 세라 Sera

9월 18일 일요일


오늘은 기다리고 기다리던 일요일, 일요일을 기다려온 이유 중 하나는 마르사 쉴록(M'Xlokk)에서 열리는 선데이 피시마켓(Sunday Fish Market) 때문이다. M'Xlokk으로 써 있어서 처음에는 어떻게 발음해야하나 낯설었던 이곳이 결과적으로 좋아졌다. 시장 특유의 팔딱거림에 생선비린내가 섞여 있는 현장에 도착하자 이유없이 마음을 내줘 버렸다.


마르사 쉴록(Marsa xlokk)은 항구 도시다. 몰타어로 ‘남동쪽에 있는 항구’을 뜻한다. 1989년 고르바초프와 조지 부시가 만나 탈냉전을 선언한 곳이라고 하기엔 믿어지지 않을 만큼 작고 조용한 이 마을은 고대 페니키아인들이 상륙했던 시절부터 어부들의 허브였다. 지금도 이곳에 몰타 어선의 70% 정도가 근거지를 두고 있다. 현지인들도 섬 북쪽에서 이곳까지 장을 보러 올 정도란다.


아침 10시, 바닷가 바로 옆에 서 있는 시장은 활력이 넘쳤다. 좁은 길을 사이에 두고 양쪽에 놓인 가판들에서 상인들은 부지런히 얼음을 깔고 생선을 진열 중이다. 칼로 황새치를 토막 내는 소리도 울려 퍼진다. 햇살이 쨍하게 빛나는데, 참치, 연어, 홍합, 새우, 오징어, 문어, 갈치 등 지중해에서 갓 잡아 올린 생선들이 투명한 얼음 위에서 은빛, 주황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한국에서도 흔히 보는 생선들인데 시장 바로 앞에서 바닷물이 찰랑대선지 무언가 특별해 보인다. 싱싱한 해산물을 가져가서 요리를 하고 싶은 메뉴들이 스르르 머릿속에서 지나가지만 선택을 미루고 일단 시장 끝까지 가보기로 했다.


몰타에서 가장 크다는 (우리 눈에는 결코 커 보일 수 없는) 시장 안의 좁은 통행로는 가다 서기를 반복했다. 정체의 이유가 뭔가 봤더니 할머니 한분이 생선 한마리를 놓고 상인과 긴 대화를 나누고 있다. 생선값을 흥정하는 건지, 조리법을 알려주는 건지 몰타어로 나누는 대화는 도무지 알아들을 수가 없다.

“왜 저런 거죠? 싸우는 거에요?” 옆에 있는 청년에게 물었다.

“둘이 아는 사이인가봐요. 가족들 안부 묻고 있어요.”


몰타어로 얘기하면 싸우는 줄 안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나. 그만큼 몰타어 말투나 발음은 투박하다. 그렇다고 사람들이 거칠어 보이진 않았다. 피시마켓에서는 몰티즈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는데, 사는 사람이나 파는 사람이나 정감이 있고 여유로웠다.


시장의 묘미는 물건 구경이다. 이곳이 말로는 피시마켓인데, 해산물만 아니라 온갖 물건들이 다 나와있다.


가장 뜬금없던 물건은 레이스. 상인에게 물어보니 몰타의 기념품 중 하나가 레이스라고 한다. 레이스로 만든 우산, 식탁보, 컵받침까지 레이스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만들어 놓았다.


그 외에 몰타에서 유명하다는 꿀, 허브, 아기자기한 장식품, 장난감, 전자제품이나 주방용품, 신발, 비키니, 속옷까지 없는 것이 없다. 몰타어로 써놓은 글씨만 없다면 지리산이나 영월 오일장이라해도 믿을 것 같다.


시장에 왔다면 길거리 음식도 지나칠 수 없다. 대추를 넣고 튀긴 몰타의 디저트 임아렛 (Mqaret)을 하나 사서 입에 물고 두리번 거리는데, 눈이 저 멀리 과일 가게로 향한다. 보지 못한 낯선 과일이다. 가까이 다가가니 선인장 열매, Prickly Pear Cactus란다. 제주에 있는 백년초와 비슷해 보인다.


“이거 어떻게 먹어요?”

말이 끝나기 무섭게 아저씨는 껍질 벗긴 빨간 열매를 내민다. 달콤한 물이 입에 가득 고인다. 아주 달지는 않지만 그런대로 먹을만 하다.


“생으로 먹어도 되고 쨈이나 술로 만들어요.”

하나를 더 까서 내미는 아저씨에게 미안해 선인장 열매를 조금 샀다. 이렇게 계속 먹다가 점심을 못먹게 되지는 않겠지 걱정까지 하면서.


시장은 여행지의 심장 같다. 잠시도 쉬지 않고 쿵쾅쿵쾅 숨을 쉰다. 그러기에 현지를 가장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오늘 만난 마르사 쉴록 선데이 마켓의 박동은 힘차다. 한바탕 돌아보고 나니 재잘재잘 몰타의 수다 한판을 들어본 느낌이다. 풍경에도 생기가 가득하다. 시장의 끝에 다다르니 방금까지도 고기를 잡았을 고깃배들이 여기 저기 줄을 대고 있는데, 하나같이 모두 알록달록한 무지갯빛을 칠한 모습이다. 그물을 손질하는 어부들의 모습도 보인다. 새벽부터 고되었을텐데 어찌 그들에게선 지친 기색이 전혀 없다. 활기차다. 어부의 표정은 배의 알록달록한 색깔과 어울려 더 인상깊다.


몰타에는 전통배 루쭈(Luzzu)가 있다. 노랑과 하늘색, 빨강이 어우려져 보는 것만으로 기분 좋게 한다. 배 앞머리 양쪽에 그려있는 ‘루쭈 아이(Luzzu eye)’도 독특하다. 몰타의 어부들이 안전하게 고기잡이 하기를 기원하는 마음으로 그려넣은 일종의 부적같은 건데, 어디서 많이 봤나 했더니 이집트의 문양 ‘호루스의 눈’였다. 고대적 이집트 문명을 지중해 전역에 퍼트렸던 페니키아인들의 영향이 지금까지 남아 있는 것이다.


시원한 커피 한잔 마시러 카페로 향했다. 주문하는 줄이 만만치 않다. 시계를 보니 이제 곧 점심 시간, 마음 같아서는 식당 한곳을 가보고 싶었지만 예약을 하지 않고 들어가 밥 먹기가 쉽지 않아 보였다. 이런 관광지에서 혼자서 밥먹으면 찬밥 신세가 되기 쉽다. 어서 숙소로 향하는 게 제일 좋아 보인다. 몰타의 가장 유명한 ‘국민생선’ 람푸키(Lampuki), 문어, 관자와 굴을 사서 택시를 불렀다.


몰타에서 맞는 첫 번째 일요일 점심은 해물플래터, 숙소에 있는 세 사람이 모두 먹을 수 있으려나. 해물을 한 보따리 사들고 집으로 가는 마음이 바다처럼 출렁거렸다.


*관광지

Marsaxlokk Parish Church

마을 입구에 우뚝 선 성당 앞 광장은 바로 앞 시장이나 바닷가의 전형적인 어촌마을과는 또 다른 분위기를 연출한다. 성당 앞 낡은 건물에 파스텔톤의 발코니와 출입문이 여행객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특히 성당 외관에 성모 마리아와 예수님이 몰타의 전통배 루쭈를 타고 있는 모습이 눈길을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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