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타이야기 10

마노엘섬 – 바다 즐기기 도전 성공

by 세라 Sera

9월 17일 토요일


한달살기를 하자고 와놓고 패키지 관광을 하듯 숨가쁘게 살았다. 조금만 속도를 늦추자. 외국 친구들 얘기가 한국 사람들은 여행도 일처럼 바쁘게 한단다. 그들 얘기에 고개를 끄덕이며 슬슬 움직이자 해놓고서 나도 모르게 달려와 버리다니.


점심을 먹고 천천히 나가보기로 하고 냉장고를 열었다. 어제 장을 안 보았더니 보이는 건 오직 가지와 포도 뿐. 가지 넣고 파스타를 만들어볼까.

“점심 먹으려고요?”

나와 같은 날 숙소에 들어온 파블로다. 콜롬비아에서 어학연수 왔는데, 오전에 있는 학원 수업을 마치고 들어왔나보다.

“가지 파스타 만들려고.”

“처음 들어봤어요. 그런 것도 만들 줄 알아요?”

“그냥 해보는거야. 뭐든 요리가 되니까.”


요리는 정해있는게 없다. 그때 그때 있는 재료로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는 최고의 예술이다. 요리만일까. 생각해보면 삶도 그렇다. 그때 그때 처해 있는 상황을 최고로 즐기고 감사할 수 있는 것도 하나의 능력이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가. 지중해에 왔는데 아직도 왜 바다 근처만 맴돌고 있는지. 이러다가 새로산 비키니를 그대로 서울로 들고갈 수도 있겠다 싶어 오후에는 무조건 바다로 뛰어들기로 했다.


가방에 타월과 슬리퍼, 간식과 물과 책을 담고 출발, 오늘의 목적지는 슬리에마와 발레타 사이에 있는 마노엘섬으로 잡았다. 숙소를 나서니 좁은 골목 양쪽으로 차와 오토바이들이 씽씽 속도를 내고 달린다. 참 이상하지. 일상에서는 한가롭고 여유롭게 지내는 몰타인들이 운전대를 잡으면 과격해진다.


몰타는 강화도 면적만하다. 어느 곳에서 출발하더라도 20분이면 바다를 볼 수 있다. 섬은 이토록 작은데, 사람들이 많고 다양하다. 실제로 인구가 53만, 인구밀도가 높은 데다가 차도 많다. 그래서 운전이 거친 건가. 차를 렌트해서 사방으로 다녀볼까 생각했다가 영국식으로 운전석이 다른 걸 알고 바로 포기했는데, 얼마나 탁월한 선택이었는지.

걸어서 20분, 짧은 다리를 지나니 크고 작은 요트가 정박해 있고, 바위 해변에는 오리들이 일광욕을 하고 있다. 오후 3시와 너무나 잘 어울리는 풍경이다. 걸음을 한템포 늦춰 마노엘섬 안으로 들어갔다.

풀숲에서 도마뱀들도 포르르 달려나온다. 슬쩍 슬쩍 고양이들도 보인다. 특유의 나른한 몸짓으로 다니는 고양이들을 보면서 걸음 속도를 더 늦춰서 어슬렁 태세를 취해본다.


좀 더 해변 가까이로 가보니 요트를 타고 있는 사람들, 바위 해변에서 태닝을 하는 사람들, 자리를 깔고 책을 보는 사람들, 낚시를 즐기는 이들. 동물이나 사람이나 몰타의 9월을 제대로 즐기고 있었다.


바다에 빠져보겠다고 결심하기까지 시간이 걸린만큼 적당한 장소를 물색하는데도 시간이 필요했다. 평평하게 생긴 명당은 이미 눈밝고 부지런한 사람들이 맡고 있었다. 여기 저기 돌아본 끝에 발레타 풍경이 보이는 쪽으로 방향을 잡고 앉았다. 비키니 차림에 태닝 오일을 팔 다리에 바르고 바위에 누우니 등이 뜨끈하다. 몽글몽글 떠다니는 구름 아래 물결 소리, 멀리 사람들이 수다 떠는 소리가 섞여서 웅장하게 들려온다. 하늘이 크게 펼쳐진다. 시야가 터지니 하늘도 마음도 더 커지는 느낌이다. 누가 그랬더라. 소중한 것을 깨닫는 장소는 언제나 컴퓨터 앞이 아니라 파란 하늘 아래였다고.


바다가 주는 선물은 많았다. 가만히 누워 물소리를 듣는 것만으로 바다는 시간을 아름답게 채워주었다. 앉아서 물끄러미 바라보는 것만으로 어지러웠던 머릿 속이 가지런해졌다. 몰타에 와서 이제야 바다에 온 것을 후회했다. 물속에서 갑자기 수심이 깊어지면 어떻게 하지, 아는 사람도 없는데 사고가 나면 어떻게 하지, 해파리가 쏘면 어떻게 하나, 패닉이 오거나 쥐가 나거나 하진 않을까. 오만 가지 걱정을 앞세워서 바다에 들어가기를 미뤄왔던 스스로가 부끄러웠다.


이번에는 한껏 용기내 바다로 빠져보았다. 감격스럽지만 너무 티를 내고 싶지 않아 살살 바닥을 딛고 움직였다. 발바닥을 떼고 나보란 듯 우아하게 물결을 가르고 나아가면 세상에 부러울 것 없겠지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물을 즐기는 일이었다. 살갗에 닿는 물, 입술에 닿는 짭쪼름한 물맛이 좋았다. 바다에 들어가 있으면 해초가 된 듯 물결에 흘러다닐 수 있었고, 그 물결은 ‘괜찮아’ 라고 속삭이며 등을 쓰다듬고 지나갔다.


앞서 유럽의 여러 작가들이 몰타를 찾은 이유가 있겠다 싶었다. 영국의 추상화가 빅터 파스모어(Victor Pasmore)는 몰타의 농가에 머물면서 고양이 수십 마리를 키웠다고 한다.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영화로 유명한 문제작 시계태엽 오렌지를 쓴 소설가 앤서니 버지스(Anthony Burgess), 헤밍웨이의 세번째 부인인 종군기자 마사 겔혼 (Martha Ellis Gellhorn) 도 몰타에 머물렀다. 마사 겔혼은 몰타의 바다에 반해서 이 마노엘섬 근처에서 머물며 글을 쓰고 수영을 했다. 따사로운 지중해 햇빛과 느긋한 전원생활에 끌리지 않을 예술가들이 어디 있을까.

마노엘섬에서 바라본 발레타

돗자리에 누워 챙겨간 간식을 먹으며 책을 읽다 자고, 음악을 듣다 자고. 그러다가 다시 또 물 속에 들어가 첨벙이면서 오후를 보냈다. 지중해에 와 있다는 것을 온몸의 세포들이 알아차리고 ‘나 살아있어’ 소리치는 느낌이다.


수영 첫날, 헤엄 흉내에 생각보다 에너지를 많이 썼던지 배에서 꼬르륵 신호가 왔다. 점심 때 만든 가지 파스타가 좀 느끼했나. 갑자기 얼큰한게 땡겼다. 마노엘 섬을 빠져나와 집으로 가는 길, 발길은 절로 아시안 마트로 향했다. 아시안 마트를 나오니 가까이에 있다는 생선 가게도 생각났다. 구경이나 가볼까 들어간 곳에서 참치(냉동참치 아닌 생참치)와 랍스터를 샀다. 참치로는 초밥 만들고 랍스터는 라면에 투척!


노곤한 몸을 초밥과 라면이 달래주던 날, 나는 세상 근심 모두 잊고 침대에 누울 수 있었다. 그래 이맛이지. 사는게 별거냐. 내일 얼굴 좀 부으면 어때. 세상의 모든 것을 오냐 오냐 다 품을 수 있을만큼 너그러워진 나를 꼭 껴안고 잠이 들었다.



*관광지

<마노엘 요새(Msida church)> (임시 휴업)

포루투갈 출신의 기사단장 안토니오 마노엘 데 빌헤나가 만들었다. 그의 이름을 따서 요새와 섬 모두 마노엘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문화적 소양이 있던 마노엘 기사단장은 몰타에 마노엘 극장 등 문화적 시설을 많이 만들었다. 자애로운 그를 몰타인들이 많이 좋아했다고 한다. 임디나에 지진이 난뒤 재건을 한 이도 마누엘이었다. 그의 취향에 따라 18세기 몰타의 건축물들은 바로크 양식으로 크게 개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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