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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ra Jul 29. 2020

남편이 집을 나갔다.

뒤도 안 돌아보고 나간 남편

휴가에 뭐 할 거야?


남편 휴가를 일주일쯤 앞에 둔 어느 날 물었다. 당연히 아직 덜 회복된 나를 위해 ‘집에 있어야지’라는 말을 들을 줄 알았다. 그러나 그것은 나의 커다란 착각이었다.

“고향에 가려고. 아버지랑 이모들 찾아 봬려고.”

마음속으로는 모범 답안에 없던 대답인지라 놀랐는데 쿨하게 아무렇지 않은 척

“진짜 좋은 생각이네, 다들 당신 보고 싶어 하실 거야. 정말 좋은 생각이다.”

라고 이야기했다. 지금 글을 쓰는 이 순간도 남편은 내가 진심으로 아무렇지 않게 보내준 것으로 알고 있다. 물론 반대할 생각은 없었지만 물어볼 때까지 혼자 머릿속으로 생각만 하고 있었다니 적지 않게 놀란 것은 사실이다.




일 년에 딱 일주일, 남편의 휴가 기간이다. 올해는 내 병원 일정으로 이래저래 월차를 여러 날 쓰기는 했지만 병원에서 쪽잠을 자거나 외래 갈 때 이런저런 심부름을 하느라 온전히 자신을 위한 날은 없었다. 게다가 거의 한 달간 내 병간호로 평소에 사용하지 않던 에너지를 썼을 터이다. 그간 머리 감기고, 발 씻기고, 입 짧아진 입맛을 위해 먹고 싶다고 하는 음식을 공수하기 바빴을 것이다. 남편이면 응당 그 정도는 해야지 싶으면서도 참 무던한 사람이구나 생각하기도 했던 날들이었다. 불평 한 마디, 힘들다 한 번 말하지 않았다. 혹시 내가 일찍 죽어도 당신 걱정은 하나도 안된다고 할 때도 억울하다, 무슨 말도 안 되는 말이냐 반문하기보다 누구보다 나 자신을 생각하라고 이야기해 준 사람이었다. 이렇게 뭔가 어수선한 상황이 지난 후 그에게 허락된 일 년에 딱 일주일이라는 자유의 시간.


남편은 휴가지만 나는 병가 중이고 온라인 수업이 병행 중이긴 하나 아이는 아직 방학 전인 데다가 출석 수업이 있는 날이었다. 남편은 늦잠도 자지 않고 아침밥을 먹고 금세 채비를 마쳤다. 누가 얼른 오라 하는 것도 아닌데 이렇게 아침 일찍 출발할 줄이야. 정말 이 날을 기다려 온 거야?라는 살짝 마음에 들어온 반감과 함께 남편 가방에 KF94 마스크를 챙겨 넣어주며 물었다.

“빨리 와. 1박 2일?”

“그건 뭔가 일이 잘 안됐을 때고 2박 3일 예정이야. 1박 2일 만에 왔다는 건 이모들과 제대로 만나지 못했다는 의미야.”

게다가 2박 3일이라고 마음속으로 정해둔 상태라니..... 이 남자, 나름 체계적인 부분이 있었네? 늘 계획적이지 않다 불평하던 나였는데.


남편이 혼자 떠났다.


어쩐지 혼자 휴가를 떠나는 남편이 부럽기도 하고 한 편으로 고향이 멀어 자주 가지 못하는 마음이 짠하기도 했다. 가정학습을 내고 아이와 모두 함께 같이 가면 좋으련만 편도 5시간은 족히 걸리는 장거리를 이겨낼 자신이 아직 없었다. 한 자세로 오래 앉아있는 것, 자동차 덜컹거림이 불편한 상태이고 잠자리나 먹는 일도 상당히 불편할 터였다. 더군다나 아직 코로나가 기승이지 않은가 말이다. 이런저런 핑계를 댈 것이 뻔하므로 남편 혼자 홀가분하게 떠나는 것을 택했을 것이다. 여기까지 생각해 보니 같이 가야만 한다고 이야기하지 않은 것이 고맙기도 하다. 뭐야, 이 남자, 결국 마무리는 항상 나의 패배다. 이 글의 시작도 남편의 독단적인 휴가 계획에 아무렇지 않게 보내준 나의 이야기를 쓸 작정이었는데 결국 또 ‘이런 남편이 고맙다’로 마무리 짓게 하다니.




최근 열심히 시청한 넷플릭스 ‘빨간 머리 앤’ 중 앤이 자신의 뿌리를 찾는 내용이 있다. 어쩌면 남편도 앤처럼 가끔은 자기만의 뿌리는 찾고 싶을 것이다. 오래전 떠나신 어머니를 닮은 이모님들을 통해, 시골에 계신 아버님을 통해, 어린 시절 뛰어놀던 고향을 통해, 어린 시절 무수히 싸웠던 자신의 동생을 통해. 남편의 이 여정을 마음을 다하여 응원하는 바이다.


남편이 집을 나설 때 뒤도 안 돌아보고 가길래 딱 두 가지만 이야기했다.

“빈손으로 가지 마. 마스크 잘 쓰고 다녀.”


‘건강하게 즐겁게 잘 다녀와’ 이 말은 출발 몇 시간 후 통화하며 이야기해 주었다. 결혼 후 처음 떠난 혼자만의 휴가를 즐겁게, 행복하게 그리고 조심조심 잘 다녀와요~~~~~~~ 그리고 아버님께 사랑받고 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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