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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ra Jul 28. 2020

차마 커피를 마실 수 없었다.

사치할 수 없는 마음

차마 용기가 나지 않았다.


커피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만큼 사랑하는 내가 한동안 커피를 마시지 못하게 된 이야기를 해 볼까 한다.


카페라떼를 알게 되고 사랑한 이야기를 줄줄줄 적어놓고 ‘이건 무슨 소리?’ 할지 모르겠다. 그러게... 나도 내가 커피를 마실 수 없는 마음이 생길 줄 미처 몰랐다. 그건 불가능한 현실이었다.




코로나가 대대적으로 번져나가던 지난 2월 말부터 개학은 1주, 2주 단위로 계속 연기되고 재택근무를 하던 때였다. 원두를 갈아야지, 원두를 갈아야지, 커피를 마셔야지, 마음은 수십 번 이야기를 했다. 원두도 꺼냈고 그라인더도 꺼냈는데 휴대폰을 손에서 놓을 수가 없었다. 원두를 갈려다 말고 휴대폰을 들고 주방 바닥에 앉아 기사를 읽어나가노라면 시간이 훌쩍 지나있기 일쑤였다. 매일 갱신되는 국내, 국외 감염자 수를 보다 보면 핸드폰을 내려놓고 원두를 차마 갈 수가 없었다. 원두를 갈아 풍성한 거품을 낸 라떼를 마시는 순간에도 수백, 수천 명이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자가 되어 격리되고 죽어나가는 날들이었다. 그런 순간에 원두를 갈 용기가 나지 않았다. 내가 굉장한 인도주의자이거나 마음이 선해서가 절대 아니다.


원두를 갈겠다고 다 꺼내놓고 사진만 찍었던 어느 날. 이제 사진을 보니 모카포트 추도 잠그지 않았었네.


커피 한잔에 무슨?


 이라 할지 모른다. 남편도 이런 나를 보며 자주 그리 이야기했다. 그러나 나에게 ‘고작 커피 한 잔’이 아니라 카페 라떼 한 잔은 온갖 미사여구와 상상력을 총동원한 가장 사치스러운 순간이니까. 최고의 사치스러움을 선사해주는 그 시간을 누릴 수 없는 그런 어떤 마음이었다. 열심한 신자는 아니지만 매주마다 가던 성당도 문을 닫았고 학교도, 유치원도 문을 닫았는데 여유롭게 원두를 갈아 커피를 내릴 용기가 생기지 않았다.


매일 핸드폰을 손에 들고 오늘은 몇 명이 감염되고 몇 명이 사망했는지 끔찍한 뉴스를 보고 지역 맘 카페를 들락이며 실시간 갱신되는 글을 읽노라면 가슴이 두근거리고 머리가 지끈거렸다. 어느 날 감염자가 된다면 어떻게 해야 할지, 주변 사람들에겐 어떻게 해명을 해야 하나 머릿속으로 혼자만의 시나리오를 썼다가 지웠다가 했다. 매일 혼란스러움으로 마음이 일렁이곤 했다.


지금도 여전히 코로나는 끝나지 않고 존재감을 뽐내고 있는데 오히려 차분히 상황을 직시하고 냉정하게 바라보게 되었다면 당시는 처음 직면한 현실에 감정적으로 정리되지 않은 상태였던 거 같다.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그러했으리라...


희생에 동참하는 마음


그 순간 나를 지탱해 준 것은 ‘커피를 희생하는 마음’이었다. 매일 쏟아지는 수천의 감염자와 희생자들, 그들을 돌보는 의료진과 상처 받는 무수한 가족들. 한 명 한 명에 딸려있는 무수한 사람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작은 마음을 보태는 일이었다. 나의 사치를 희생하고 그들을 기억하는 일. 보다 직접적이고 진취적인 행동이었다면 더 좋았겠지만 우선은 감정적인 희생이라도 해야만 했다. 그래야 스스로에게 덜 미안할 것 같았다.


...... 하면 마셔야지


그렇게 원두를 갈지 못하고 사랑하는 라떼를 마시지 못하는 날이 지속되었다. 사순절이 지나면 마셔야지, 개학하면 마셔야지, 코로나가 잠잠해지면 마셔야지 했는데 그러던 와중에 병원도 다니게 되었고 사실 아직 마음 놓고 라떼 한 잔을 내리지 못했다. 이제 감정적인 희생이라기보다 그냥 생활 패턴이 되어버린 듯하다. 가장 좋은 순간을 위해 가장 사랑하는 순간을 아껴두고 있었는데 어느 날 문득 돌아 생각해 보니 커피 없이 지내는 날들이 일상의 새로운 루틴이 되어 버린 것이다.




언젠가 다시 나의 커피 루틴이 시작되겠지만 어찌 되었든 지금은 지금의 루틴을 즐겨볼까 한다. 여전히 에스프레소를 사랑하는 남편 덕분에 매일 아침 나의 작은 모카포트에서 뿜어 나오는 진한 커피 향을 맡으며 커피 생활은 명맥을 잊고 있으니 말이다.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 남편의 에스프레소 사랑, 커피 루틴과 나의 커피 없이 커피 향으로 지속되는 일상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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