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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ra May 31. 2020

카페라떼의 맛을 알아버린 어느 여자의 이야기

이런저런 커피 다 마셔본 여자가 라떼에 정착하기까지

커피라 함은 응당 갓 로스팅한 신선한 원두에 원두의 배전도, 물 양, 추출 시간, 분쇄도.... 등등의 조합이다. 거기에 더하여 커피 만드는 사람의 정성과 노하우



커피 한 잔 마시기가 이렇게 어려워서야...



저 먼 나라의 어린아이들이 학교도 못 가고 하루 종일 맨발로 딴 귀한 원두를 대하는 자라면 당연히 이래야 한다는 철학 아닌 철학이 있었다. 그러나 커피는 글로만 배운, 알고 보면 커알못인 여자. 배전도를 글로 읽어는 보았으나 사실 차이를 모르고 무조건 싱글 오리진을 고집하며 다양한 원두 종류를 마셔봤지만 차이를 별로 모르는, 커피에 대해 뭔가 있는 척, 아는 척하는 여자. 알고 보면 여전히 커알못인 그 여자, 그 여자가 라떼에 정착한 이야기를 시작한다.


과테말라 안티구아
콜롬비아 수프리모
케냐 AA
에디오피아 예가체프
인도네시아 만델링
하와이 코나
온두라스 엘 인헤르토
예맨 모카 마타리
쿠바 크라스탈 마운틴(커피를 모르는데 이 아이는 정말 느낌이 있었다.)


그 외에도 다수. 많은 종류의 원두를 마셔는 봤다. 그것도 아주 다양한 방법으로. 핸드 드립도 해 보고, 더치도 내려보고, 모카 포트도 해 보고.....


더치에 빠져 한동안 더치를 내려 마셨고 핸드 드립에 빠져 드립백을 직접 만들기도 했다.


커피는 아메리카노라며 뭔가가 첨가된 커피는 입에 대지도 않았다.



삶에 라떼가 들어오다.



그 날 라떼가 내 삶에 들어왔다. 그 시작은 더운 여름, 교실을 이사하는 노동에서 비롯되었는지도 모른다. 에어컨도 틀지 못하고 뜨거운 여름 한 낮, 교실 공사를 마친 후 원래 교실로 이사를 했다. 땀을 뻘뻘 흘리며 앉아 있는데 지나가던 선생님 한 분이 아메리카노는 이미 다 차지가 돌아갔다며 아이스 라떼 한 잔을 건네주셨다. 달달한 시럽이 가득 들어있는 시원한 아이스 라떼. 당연 이전에는 입도 대지 않은 것이었는데 신기하게도 입에 맞춘 듯 달달하며 고소한 당과 카페인의 조합이 혀를 감고 목으로 넘어가며 감탄사를 자아냈다. 노동 후의 당과 카페인 충전은 언제나 옳다! 그때 마신 라떼는 지금껏 마신 그 어떤 라떼보다, 그 어떤 커피보다 최고였다.

‘라떼가 이런 맛이었나?’

우유 비릿한 맛이 없이 고소하고 진한 커피와 우유의 절묘한 조화라니..... 마시는 내내 빨리 마시지 않으려고 스스로 자제하며 천천히 음미하며 넘겼다.


그 후 나는 라떼에 빠져 버렸다.


라떼만 마시고 라떼만 만들었다. (물론 남편은 에스프레소로~) 그런데 그 맛이 안 나서 마시다 버리기 일쑤였다. 우유 냄새가 심하고 커피가 싱겁고 뭔가 어울리지 않고..... 결국 염치 불고하고 라떼 첫사랑에 빠지게 한 카페를 찾아갔다. 그곳은 그 흔한 머신 없이 오로지 모카포트로 에스프레소를 추출하는 시골 우체국 옆 작은 카페인데 주인장님의 넉넉함과 노하우, 프로 정신이 돋보이는 아주 아름다운 곳이다.


퇴근 길에 들를 수 있는 아름다운 나의 카페. 모카포트 장인님이 계시는 곳.(카페 주인장님 인스타에서 가져온 사진)


모카포트가 은근 예민한 녀석이라 원두 배전도며, 분쇄도며, 물과 원두의 양이며 이런 것들에 민감하다. 그걸 모르고 대충대충 내렸으니 그 맛이 났을 리가 없었다. 사장님께 특별 부탁을 드리고 단기 속성으로 배우고 라떼 전용 원두를 공수받았다. 된다, 돼.... 그렇게 만들기 시작하니 카페 주인장님이 만든 라떼와 비스므리한 맛이 난다. 물론 언제나 몇 퍼센트 부족한, 당연히 수준에는 미치지 못하는 맛이다. 그렇지만 나 혼자 즐기기엔 부족함이 없다.


더울 땐 아이스로, 추울 땐 뜨겁게


느릿느릿 수동 원두 분쇄기에 원두를 갈고 모카포트에서 에스프레소를 추출하고 우유 거품기를 돌려 풍성한 우유 거품을 만들었다. 더운 여름엔 아이스로, 추운 겨울엔 뜨겁게. 고소한 우유와 찐한 에스프레소의 절묘함은 그 무엇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풍성한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혼자 식탁에 앉아 라떼 한 잔을 앞에 두고 있으면 나는 세상 그 누구보다 우아하고 부드러운 여유를 느낀다.


모카포트에서 에스프레소가 추출되기를 기다린다.


고작 커피 한 잔일뿐인데?



누군가는 그렇게 말할 수 있다. 겨우 커피 한 잔일뿐인데? 커피에 우유 섞은 라떼일 뿐인데? 그래, 누군가에겐 그럴 것이다. 그렇지만 나에게 라떼는 우아하고 풍성한 거품처럼 우아한 여유 그 자체이다. 왜냐하면 난 온갖 미사여구와 의미를 부여하며 라떼를 만들기 때문이다.


뜨거운 햇살 아래 커피콩을 따는 상처 투성이의 분주한 아주 작은 손을 생각한다.

자동 분쇄기가 아닌 수동 분쇄기로 느릿느릿 원두를 분쇄한다.

모카포트에 물 양을 저울질하고 원두를 올린 후 짹깍짹깍 시간을 보낸다.

치이이익 시끄러운 소리가 울리면 폭발하 듯 커피 향이 가득한 주방을 바라본다.

크레마가 풍부한 에스프레소를 잔에 따른다.

그 옆에서 돌리고 있던 우유 거품기가 멈춘다.

풍성한 우유 거품을 느릿느릿 에스프레소가 담긴 잔에 올린다.

식탁에 책 한 권을 끼고 앉아 느릿느릿 잔을 입술에 댄다.

일련의 과정을 되뇌이며 삭인다.

‘감사합니다’ 이런 여유와 충만한 기분을 느낄 수 있기 해 주셔서.

어린아이들의 작은 손을 생각하며 안쓰러움과 미안함을 다시 한번 떠올린다.

그러며 다시 생각한다.

커피를 멈추는 것이 아이들을 위한 길일까, 아니면 계속 사랑하는 것이 아이들을 위한 길일까?


이런 여러 가지 생각과 의미 부여를 하며 라떼를 마시니 어찌 나에게 ‘고작 커피 한 잔’이 되겠는가? 그 순간 나는 저 먼 나라에 있는 원두 경작지에 갔다가 하늘 위로 붕 떴다가 마음속을 들여다보았다가 하며 되지도 못할 철학자가 된다.


다음 커피 이야기는 이렇게 라떼와 커피를 사랑하던 내가 몇 달간 커피를 마시지 못하게 된 이야기...


To bo continue......


늘 작은 것에 지나치게 의미를 부여해 글이 지루하다는 남편에게 또 지적 거리를 안겨주는 글이지만 어쨌든 나에게 라떼 한 잔은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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