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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ra Aug 19. 2020

잘 지내니?

시간의 문턱을 넘은 어느 날, 그리고 현재

잘 지내니?


어느 주말 아침 카톡이 울렸다. 평상시처럼 아무 생각 없이 본 메시지. "잘 지내니? 어디 살고 있니?"라는 두 문장. 거의 10년 만의 연락이다!

"잘 지내고 **시에 여전히 살고 있어요."라고 답장을 보냈다. 하고 싶은 말이 무수히 많았다. 코로나가 기승을 부리는 이때 그곳에서는 평안 하신지, 여전히 행복하신지, 아이들을 보며 울고 웃으시는지......




대학교 1학년 어느 날 미사를 마치고 나오는데 고등학생 때부터 나를 보아 오셨던 수녀님께서 내 손을 잡고

'오늘 기도를 했는데 딱 그 기도에 응답해 주셨어. 이 사람이었구나.'

라며 내 손을 이끌고 주일학교 교사를 제안하셨다. 이제 대학교 1학년, 철없고 모르는 것 투성이에, 신앙심은 사실 별로 자신도 없었지만 수녀님 기도에 대한 응답이 나라니 무턱대고 그렇게 주일학교 교사가 되었다. 다른 시에서 대학을 다니던 나는 주말마다 집으로 와야 했고 토요일, 일요일은 거의 성당에서 지내야 할 만큼 바쁘고 즐거웠다. 시험 기간에도 예외는 없었다. 그 당신 내 삶의 5할 이상은 성당이었다. 그럼에도 신앙심은 늘 부족하고 자신이 없었다. 그렇게 성당에서 주일학교 교사로 지낸 몇 달 후 우리 성당에 처음으로 보좌 신부님이 오셨다. 키도 크고 멀끔하신데 입이 어찌나 거치 신지...... 그리고 술은 또 어찌나 잘 드시는지. 20대 초반 내 술의 시작과 끝은 신부님과 주일학교 교사들이었다. 입이 거칠지만 마음은 진짜 천사셨던 나의 신부님.


주일학교 미사는 어린이답게, 아이들 목소리와 기도를 들어주시고 아이들과 함께 웃으셨다. 미사가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아이들의 천진함이 가득했다. 참 좋았다. 어린아이들이 삐뚤빼뚤 적어온 신자들의 기도를 잊을 수가 없다.

"엄마, 아빠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한 문장이면 그 날의 미사는 감사함이 충만했다.

"그저께 싸운 친구를 용서하게 해 주세요."

이 문장이면 우리는 뭐라도 용서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이들이 내뱉는 말 한마디에 웃음이 났고 눈물이 났다.

신앙심의 '신'도 모르는 나도 그 안에서 기쁘고 행복했다. 새벽까지 부활절 달걀을 만들고, 성탄제를 준비하고 그 시간이 그저 좋았다.




그러다 대학교 3학년 여름방학이 지나고 주일학교 교사를 그만두었다. 이제 곧 4학년이고 임용고시도 준비해야 했다. 매주 집으로 가는 것이 부담스러워졌다. 즐겁고 행복하지만 내 삶을 준비해야 했다. 그렇게 2년 6개월 만에 주일학교 교사를 그만두었다. 신부님과의 연락도 뜸해졌다. 그 후 신부님은 주임 신부님이 되셨고 다른 곳으로 본당을 옮기셨다.


지금은 과테말라 '천사의 집'에 계신다. 로마 유학 후 파견된 과테말라에서 어려운 아이들에게 귀 닫고 눈을 닫을 수 없으셨다고 했다. 그래서 후원금을 모아 부모에게 버림받고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상처 받은 아이들을 위한 고아원과 학교 '천사의 집'을 만드셨다. 천사의 집을 만들며 어머어마한 우여곡절들이 있었고 어려움도 말할 수 없을 만큼 컸다고 들었다. 후원금을 모으기 위해 이 곳 저곳에 후원금을 보내달라는 이야기를 하러 다니셨는데 그 말이 너무나 구차하고 힘들어서 어느 날은 LA 가는 공항에서 구토에 시달렸다고 하셨다. 그런데 그 순간 '내가 뭐라고. 아이들을 위한 일인데 내 자존심이 뭐가 중요하다고'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셨다. 그 후 모든 자존심을 내려놓고 오로지 아이들을 위해 돈 좀 보태달라는 이야기를 하고 다닌다고 하셨다. 누군가의 큰돈보다 적은 금액이라도 일정하게 들어오는 후원금이 더 좋다 하신다. 큰돈은 자만심에 빠지게 하므로 꾸준한 것이 좋다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매달 적은 후원금을 보내는 일. 그렇게 15년 넘게 그곳에 후원금을 보내고 있다.


가끔 아이들 소식을 소식지로 보내주시고 매년 말이면 사진과 이야기를 달력으로 제작해 교구청에서 보내주신다. 식탁 위에 올려진 그 달력을 보며 아이들 사진을 보고 지금도 가끔 울고 웃는다. 여전히 해맑고 천진하고 아름다운 아이들 속에서 사시는 신부님도 거기 계신다. 




"어떻게 지내세요? 아이들은 어떻게 지내나요"

"우린 6달째 집안에 갇혀있어. 덕분에 밀린 여러 가지 일들을 마무리하고 있어."

"아이코... 그러세요? 그래도 부디 신부님도, 아이들도 건강하길...."

"늙어가는 너희들 모습 궁금하다. 이제 중년이겠다. 웃기겠는데...ㅋㅋ"

"ㅋㅋㅋㅋㅋ 살도 찌고 늙고 아줌마죠, 뭐."

"하하. 그래도 여전히 내 기억 속에 너희들은 여전히 젊고 맑다."

"하하하하. 그렇게 기억해 주셔서 감사해요. 제 기억 속 신부님도 여전히 젊고 열정적이신데(입도 거칠고)"

이렇게 짧은 안부 카톡이 마무리되었다.


신부님과의 짧은 카톡이 20대 초반의 우리를 떠올리게 했다. 여러 주일학교 교사들, 신부님, 수녀님. 다 젊고 예쁘고 열정이 넘쳐 활기찼던 우리들. 참 좋은 사람들과 함께 했던 그 시간이 무척 그리운 날이었다. '젊고 맑다'라는 말씀이 내내 긴 울림을 주었다. 맑음이라는  단어를 잊은 지 오래인 것 같다. 그때의 나는, 우리는 맑았을까? 아마도 지금보다는 훨씬.... 그래서 더 자주 웃고 열정을 다할 수 있었으려나. 아이들의 천진한 노랫소리, 기도 소리가 무척 그리운 날이다.


<과테말라 천사의 집 후원하기>

*  한국 지역 후원: 천주고 청주 교구청으로 전화하여 후원 의사 밝힌 후 자동이체하시면 됩니다.

TEL: 043-210-1731(천주교 청주 교구청)
자동이체: 신한은행 100-030-855044(재)천주교 청주교구(과테말라)





2016년 연말과 2017년 초까지 과테말라 천사의 집 루시엔테 합창단 아이들이 한국을 방문해 공연한 모습이다. 어떻게든 갔어야 했는데 이런저런 핑계에 쫓겨 직접 가지 못했지만 이렇게 영상을 보며 아이들에게 도움을 받고 있는 사람이 결국은 나였음을, 이 상처 많은 아이들이 결국은 나를 도와 여전히 맑아질 수 있게 해 주고 있음을 깨달았다.


신부님과의 짧은 카톡으로 천사의 집 아이들을 함께 떠올려 본다.


더 이상 아프지 않고 내내 행복했으면

그 맑음과 예쁨을 내내 자기 것으로 가지고 누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



https://youtu.be/bpzaXql3HA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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