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era May 08. 2020

슬픔을 마주할 용기

눈물을 흘리기 위해서도 용기가 필요하다.

"엄마, 비밀의 화원 정말 재미있어."

"그래? 어느 부분이 제일 재미있어?"

"콜린이 신경질적으로 소리를 지를 때 메리가 '그렇게 소리를 지르다가 네가 죽어버렸으면 좋겠어'라고 말한 부분”

"정말? 메리가 그렇게 심한 말을 했어?"

“그런데 그렇게 말할 때 속이 후련했어. 왜냐하면 콜린은 그동안 심한 말을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어. 다들 하고 싶다는 대로 다 해 줬거든. 그러면 안돼. 그러면 자기 진짜 생각을 말할 수 없어."

"그래? 그런 거야? "

"응. 진짜 자기 생각을 말해야 해. 그러지 않으면 자기가 왜 슬픈지 알 수 없어. 슬프다고 이야기할 기회가 없어지는 거야."

"이야기하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슬픈데 숨기고 싶을 수 있잖아."

"그러면 계속 슬퍼. 용기를 내서 슬프다고 이야기해야 해. 그래야 마음에 있는 슬픔이 사라지지."


퇴근 후 아이의 말이 쏟아졌다. 하루 종일 혼자 노트북과 씨름하며 온라인 수업을 하던 아이는 내가 퇴근하고 집에 오자마자 종알종알 읽은 책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슬프다고 이야기할 기회가 없어지면 안 되는 거야.



슬프다고 이야기하는 것, 슬퍼서 펑펑 우는 일. 모두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그래, 맞다. 진짜 진짜 커다란 용기가 필요하다. 어릴 땐 슬프면 울고 기쁘면 웃고 화가 나면 화를 내서 모두들 아이가 어떤 마음인지 얼굴만 봐도 알 수 있는데 나이가 들면서 우리는 어쩌면 내색하지 않기, 꾹꾹 참기, 아닌 척하기에 점점 익숙해지는지도 모르겠다.


아이가 울면 쉽게 이렇게 말하곤 했다.

“울지 마, 뚝”  

“울면 안 돼, 울면 안 돼, 산타할아버지는 우는 애들에겐 선물을 안주신대요.”

“자꾸 울면 바보 온달한테 시집보낸다.”

“울면 망태 할아버지 온다.”

아이에게 자주 했던 말이었는데.... 울고 싶을 때 울면 왜 안될까? 슬프고 화나는 감정이 꽁꽁 숨겨야 할 못난 감정이라서? 아니면 들키면 안 되는 나쁜 감정이라서? 아이가 울면 시끄러워서?




영화 Inside Out(2015년)을 보면 기쁨, 슬픔, 소심, 버럭, 까칠이가 머릿속에 살고 있다. 이 중 기쁨은 가장 예쁜 캐릭터인데 슬픔은 내내 울고 우울한 모습이라 드러내면 안 된다며 기쁨이 나오지 말라 한다. 슬프면 아이가 행복하지 않으니까...... 그렇지만 영화 후반에는 슬픔도, 버럭도, 소심도, 까칠도 모두 소중한 감정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이 당시 ‘감정 코칭’이라는 책을 읽고 있었는데 영화와 책이 어찌나 잘 들어맞는지 가슴이 울렁울렁이고 머리가 번뜩였었다. ‘맞아, 슬픔도, 버럭도, 까칠도, 소심도 다 필요하고 소중한 감정인데 매번 좋은 것만 보여야 하고 알려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네.....’ 모든 감정은 상호 연관이 있으며 나쁜 감정은 없는 건데....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흐릿해지고 잊혀 갔다.


몇 년전 보았던 영화의 기억을 떠올리다.



딸아이의 이야기를 들으며 다시 기억이 올라왔다. 그래, 슬플 땐 울어야지. 그래야 소심이가 위로받고 버럭이는 좀 잠잠해지고 까칠이는 덜 까칠해지고 기쁨이는 더 커질 준비를 하지. 어떻게 매일 기쁘고 즐겁기만 하겠어. 그런데 슬퍼서 꺼이꺼이 우는 일은 밑바닥에 있는 나를, 부정적인 모습 그대로 드러내는 일인지라 용기가 필요한 것 같다.




요즘 정작 아이는 슬픈 일, 슬펐던 감정, 기분 상했던 마음을 절대 들키지 않으려 하고 이야기하지 않는다. 이유인즉 이야기를 하면 그 감정이 다시 떠오르고 그 감정을 똑같이 다시 느껴야 하기 때문이란다.

“괜찮아, 이야기해봐.”

“내가 안 괜찮아.”

라며 말을 닫아 버린다. 아이는 자신의 부정적인 감정, 주로 속상하고 슬픈 감정을 꺼내 들고 말하기에 괜찮지가 않은 것이다. 그렇지만 그렇게 마음속에서 꿍꿍 거리며 몇 달을 가기도 한다. 엄마 마음엔 차라리 툭 터트려 버려야 상처가 있는 걸 알고 그 상처에 딱지도 앉을 텐데 말을 하지 않으니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야 그 일이 상처였구나, 아픔이었구나 깨닫게 될 때가 있다. 시간이 오래 지나고 난 후에 알게 되면 당황스럽기도 하고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하다. 그 상태 그대로 딱딱하게 굳어서 아이의 감정이 유연하지 않고 경직되어 버린 느낌이랄까? 과연 지금 이대로 괜찮은 걸까?


결말이 슬픈 책이나 영화를 보면 기분이 안 좋다며 다시는 보고 싶지 않다고 한다. 결말이 마음에 들지 않는 영화나 책은 절대 가까이 하지도 않는다.




다섯 살 때 에릭 칼의 ‘소라게의 집’이라는 동화를 들려주었었다. 소라게가 마음에 드는 소라 껍데기에서 살면서 바다 생물들로 장식하고 친구들이 늘어간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몸집이 커진 소라게는 정든 소라 껍데기를 다른 소라게에게 주고 다른 소라 껍데기를 찾아 떠난다. 이 동화를 들은 아이는 펑펑 울었다. 친구를 떠나야 해서 너무 슬프다는 것이다. 그리고 책을 펴더니 다시 처음부터 읽어 달라고 했다. 마지막 장에서는 또 울었고 그렇게 해서 5번을 같은 자리에서 읽어줘야 했다. 그런데 매번 마지막 장에서는 울었다. 울면서 슬픔이 옅어지듯 했다.



아이는 원래 이렇게 표현이 풍부한 아이였다. 슬프면 울고 왜 슬픈지 이야기를 했었는데 이제는 부정적이라고 생각되는 감정을 숨기고 아무렇지 않은 척 해 버린다. 그래서 사실 본인도 괜찮은 줄 알았다.


슬프면 슬프다고 말해.
그리고 슬프면 울어도 돼.
울고 싶은 만큼 마음껏 울어.
그런데 용기가 필요해.
용기를 낼 수 있겠니?


콜린만 그런 게 아니야. 너도 그래. 너도 슬픔을 말해야 해. 그렇지만 지금 말하고 싶지 않다면 기다릴게. 슬픔은 말해야 연해져. 울고 싶으면 울어야 해. 그래야 후련해지지. 그런데 정말 용기가 필요해. 네가 용기 낼 수 있도록 엄마가, 그리고 아빠가 도와줄게. 손 잡아 줄래?
그렇게 하고 나면 슬픔에서 빠져나올 수 있어. 언제든 들어줄게. 말하고 싶은 순간이 있다면 언제든 이야기해 주렴. 우리가 항상 네 곁에 있을게.


* 이 글은 어설픈 제 브런치의 가장 열렬한 독자인 저의 딸아이를 위해 썼습니다. 슬픔은 꼭 표출해야 하는 게 맞을까요? 아니면 그냥 두는 것이 옳을까요? 아이의 슬픔을 어루만져줄 수 있는 좋은 방법이 있는 분들께 도움 요청합니다. 도와주세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