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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아 moi Nov 17. 2023

너로 가려지는 마음

첫눈 소식을 들었다


 어제는 겨울비가 내렸다. 겨울비를 맞은 바람은 그리 춥지 않은 기온 탓인지, 시원했고, 바람을 맞으니 내 숨이 트이는 것 같았다. 비가 내리는 하늘은 차분했다. 구름에 가려진 하늘 덕분에 온 세상은 한층 차분해져 있었고, 마음껏 우울해도 될 것 같은 분위기가 나를 편안하게 만들었다.

 

 그러다 오늘 첫눈이 내린다는 뉴스를 보았다. 11월 한 달 동안 온갖 계절을 보는구나 싶으면서도, 첫눈이라는 말에 기분이 좋아진다. 눈이 내리면, 비와는 또 다른, 내 세상이 다른 곳이 되는 경험을 할 수 있어 좋다.

 그래서 언젠가 겨울이 되면, 일본에 가보고 싶다. 사진으로만 보았던, 눈이 온 세상을 가리다 못해 현실이 눈 밑으로 가라앉은 듯한 그곳을 직접 경험하고 싶다. 이상하게 눈 덮인 내 세상을 보면 왜 이렇게 마음이 평온해지는 걸까, 새하얀 눈이 다른 색이었어도 이렇게 나를 안심시킬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통창을 가리고 있던 블라인드 때문에 내리는 눈을 늦게 발견했다. 아쉽게도 가루눈이 짧게 지나갔다. 지인들의 단톡방에서 경기 일대의 눈 오는 모습을 전달받고서야 눈다운 눈을 볼 수 있었다. 문정과 파주라지만 같은 시간 내가 보는 창밖 풍경과 너무 달라 파주의 눈 오는 모습이 낯설다.


눈 내리는 마을

 

 지금 살고 있는 오피스텔로 이사 오기 전, 바닥공사가 늦어지고 있었다. 그 해의 첫눈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내리던 눈이 순식간에 쌓이기 시작했다. 통창 넘어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을 정도로 내리던 함박눈에 압도당하고 말았다.


 이날은 친구와 이케아에 다녀오기로 한 날이었고, 출발 전에는 분명 날씨가 좋았다. 갑자기 내리는 눈에 다른 일정은 포기하고 급히 오피스텔로 돌아왔다. 공사가 마무리되지 않은 시멘트 바닥에 신문지를 깔고 친구와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거센 바람을 맞으며 내리던 눈은 운전해야 하는 친구를 걱정하게 만들었지만, 묘하게도 내 마음은 평온했다.

 쉽게 그칠 것 같지 않던 눈이 그치고 나니, 발이 푹푹 빠질 정도로 세상을 덮은 모습은 설경이었다. 갓 내린 눈은 아직 보송보송했고, 걸을 때마다 나는 소리가 기분 좋았다.



 기분 좋은 눈이었다. 한껏 차분해지는 비와는 또 다른 설렘과 기분 좋은 촉감을 주는 눈을 만날 수 있는 겨울이 왔다. 이 보송한 눈에 갇히면, 내 세상이 오늘만큼은 현실이 아닐 수 있어 눈 오는 하루를 좋아한다. 그날만큼은 현실에서 벗어나 낯선 장소에서 낯선 하루를 보내는 것 같은 설렘이 들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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