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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아 moi Dec 20. 2023

마징가, 힝구

숨바꼭질은 네버엔딩


힝구, 아니야 귀 내려!


 힝구의 장난감을 넣어 두는 수납장 문을 열었다. 자신의 물건이 보관된 수납장 문이 열리자 당연하다는 듯, 힝구가 내 곁으로 다가왔다. 그저 쓰레기봉투를 꺼내려 했을 뿐인데, 용무가 끝나 수납장 문을 닫고 돌아서는데, 기다리고 있던 힝구와 눈이 마주쳐버렸다.


마징가가 된 힝구


 나와 눈이 마주치자, 힝구가 금방이라도 달려들 듯, 등을 곧추세우며 경계의 몸짓을 하지만, 뒤쪽으로 바짝 선 귀와 땡글하게 변한 눈에서 느껴지는 장난기는 숨겨지지 않는다. 왜? 왜 또 그러는 거야. 내 물음에 답도 없이 화장실로 뛰어 들어가 몸을 숨기는 척한다. 힝구가 정한 숨바꼭질 시간인가 보다. 저기 좀 더 정성 들여서 숨어 줄래? 나는 힝구를 찾는 척 불 꺼진 화장실로 따라 들어간다. 뻔히 보이는 힝구의 엉덩이를 툭 치고, 화장실 밖에서 몸을 숨긴 채 그 녀석이 나오기를 기다린다. 힝구가 빼꼼, 문밖의 나를 훔쳐보다가 귀를 보이고 말았다. 그때를 놓치지 않은 나는 어흥 하며 힝구를 놀래줬고, 깜짝 놀라 캥거루처럼 뛰기 시작한 힝구는 마징가가 되어 있었다.


캥거루세요?


 어떻게 알았지? 하는 표정을 한 힝구의 몸짓에는 흥이 담겨있다. 나는 몸을 일으켜 도망치듯 뛰는 척을 했다. 도망가는 내 뒤를 쫓아오던 힝구가, 집사가 또 술래라고 말하는 듯, 내 종아리를 톡 치고 침대 밑으로 숨는다. 나는 우리 집에서 영원한 술래다. 힝구가 저 침대 밑에서 자신을 찾고 있을 나를 기대하고 있을 동안, 나는 잠시 휴식 시간을 갖는다.


 얼마 지나지 않아 힝구가 침대 밑에서 나와 내 주변을 어슬렁거리다 현관문 앞 캐리어 위에서 나를 주시한다. 제주도 여행 이후로 커다란 캐리어를 둘 곳이 없어, 현관 앞에 두었는데, 어느샌가 힝구의 아지트가 되었다. 높이와 안착감이 맘에 들었는지, 그곳에서 내 움직임을 살피다 기습하는 재미에 빠져있다.


잡아라 나를, 집사야


 눈 한번 깜빡이지 않고 나를 바라보던 힝구의 눈빛을 외면하지 못하고, 또다시 힝구와의 숨바꼭질을 준비하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몸을 숨겼다, 일으켰다 하며 힝구를 도발하자, 힝구의 엉덩이가 실룩이기 시작한다. 이제 때가 되었군, 싱크대 하부 장 뒤에 숨어서 힝구를 놀라게 할 타이밍을 기다리는데, 이번에는 힝구가 한발 빨랐다. 힝구의 기습은 성공적이었다. 진심으로 깜짝 놀란 내 모습에 다시 마징가 힝구가 되었고, 더욱 높아진 텐션의 뜀박질이 이번에는 화장실로 이어졌다. 아, 또.

 

 아직 이 놀이를 끝낼 생각이 없는 힝구의 뒷모습이 너무도 신나 보인다. 이 숨바꼭질의 끝은 어디일까 자문하지만, 답은 언제나 힝구가 가지고 있기에 다음 숨바꼭질을 위해 힝구를 따라 화장실로 들어갔다. 숨바꼭질은 오늘도 쉽게 끝날 것 같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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