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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아 moi Dec 12. 2023

쾌변은 힝구를 춤추게 한다

고양이의 쾌변법


 오늘 아침 힝구는 밤새 배속에 쌓여있던 감자와 맛동산을 시원스럽게 생산해 냈다. 모래 갈이로 쾌적해진 화장실은 시간차를 두지 않고 힝구를 분주하게 만들었고, 나는 숨어있는 수확물을 캐내기 바빴다.

 힝구의 쾌변 체크는 집사에게 중요한 임무다. 오늘의 가장 큰 일을 체크리스트에서 지웠기에 이후의 내 일상도 평안해졌다. 아니 그럴 것으로 생각했다.


동구녕 그루밍


 힝구의 매력 포인트, 오늘의 하트동구녕 관리까지 끝이 나자, 묵직했던 힝구가 가벼워졌다. 전용 똥삽을 이용해 감자와 맛동산 수확에 집중하고 있을 때, 화장실 바깥에서 들려오는 힝구의 발걸음 소리가 신이 나 있다. 쾌변 전 힝구에게 츄르까지 먹였으니, 에너지는 풀충전 상태에 비워낼 것은 비워져, 힝구의 몸놀림이 가볍지만 힘차다.


매복 중이다옹


 오전에 해야 할 일과를 마치고 이제 막 커피 한 모금을 마시려는데, 혼자 뛰어놀던 힝구가 다가왔다. 좌식 테이블 옆에 언제나 힝구가 애정하는 장난감 상자를 놓아두는데, 힝구가 그 상자 주변을 배회하며 울기 시작했다. 나는 이 빡빡한 육묘 일과에 한숨 쉴 틈도 없이 상자를 열었고, 힝구는 신이 난 듯 경쾌하게 뛰어가 자리를 잡는다. 냥이콥터를 세팅하기 시작했고, 엄폐물에 몸을 숨긴 힝구를 위해 끝도 없이 프로펠러를 날렸다. 스나이퍼가 된 것처럼, 집사는 몸을 숨겨가며, 현란한 손짓으로 힝구의 흥을 돋웠다.


날려주세요, 프로펠러


 최근 프로펠러 50개를 새로 주문했다. 부러지고 금이 간 프로펠러를 교체할 시기가 온 것이다. 하루에도 수도 없이 날리니 50개는 많은 것도 아니었다. 한 번의 놀이시간에 5, 60개 정도의 프로펠러를 날려도 만족하지 못하는 힝구의 체력은 집사의 다이어트 비법이기도 하다. 오늘따라 힝구의 가벼운 몸놀림은 지칠 줄 몰랐고, 집사가 쉬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날쌘돌이 힝구


 잠깐의 외출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보니, 힝구가 현관문 앞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힝구와의 짧은 인사가 끝나자, 내 외출로 기분이 상했는지, 아니면 빨리 놀자고 나를 보채는 것인지, 나를 빤히 쳐다보는 힝구의 귀가 한껏 뒤로 젖혀진 채, 마징가 귀로 변해있었다. 금방이라도 달려들 기세로 화장실까지 쫓아 들어온 힝구에게 내 개인적인 시간만은 지켜달라고 외쳐보지만, 오늘도 힝구에게는 내 마음이 닿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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