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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아 moi Jun 28. 2023

내가 화장실을 대하는 자세

최근 우리 집에 세상에서 가장 작은 화장실이 생겼다.

 내가 지금, 이 순간만큼 화장실에 대해 깊이 있게 생각해 본 적이 있을까?


 평생을 살아오면서 내 삶에서는 무수한 화장실들이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화장실은 그저 화장실일 뿐,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공간이지만 귀하게 여겼던 적은 없었다. 그렇기에 순간의 경험은 있어도 딱히 그에 대한 기억이 오래 남아있지는 않다. 물론, 급하게 화장실을 찾지만, 도저히 찾을 수 없어 머릿속이 새하얗게 질리고 온몸이 바들바들 떨리는 지경에서 발견한 화장실, 그 순간에서야 나도 한 번쯤은 화장실에 대한 감사함이 스치듯 지나가긴 했을 것이다.


 그래도 화장실에 대한 떠오르는 강렬한 기억 중 하나를 말하자면, 외할머니댁에는 진짜 말로만 듣던 바닥이 뻥 뚫린 푸세식 화장실이 있었다. 빛 한줄기 제대로 들어오지 않고 주기적으로 가득 차면 퍼내야 하는 내 나이 또래 사람들 중 대부분이 경험해 보지 못한 그 화장실을 나는 경험해 보았다. 후덥지근한 공기와 그 오랜 시간 동안 겹겹이 쌓여 만들어진 냄새, 그 끝을 알 수 없는 어두컴컴한 변기 밑바닥에 대한 두려움, 하지만 이제 희미하게 기억될 뿐이다.


 또, 스무 살 마주한 화장실을 떠올려 본다. 화장실에 들어서자마자 변기들이 칸 칸마다 속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말 그대로 투명하게 말이다. 당황스럽다 못해 아무 생각도 할 수 없는 내 앞으로 한 사람이 앞장서며 변기 칸으로 들어가 문을 닫자, 문 전체가 불투명해지며 보통의 화장실처럼 사방이 가려졌다. 불가능한 마술을 본 것처럼 나는 그렇게 투명 화장실 앞에서 머뭇거리고 말았다. 그러다 이 투명 화장실을 취재하러 온 촬영팀에 눈에 띄어 인터뷰를 당했다. 화장실이 아닌 현대미술의 하나의 시도일까? 굳이? 나는 기획 의도를 파악하지도 못한 채 이날의 당혹감을 담아 인터뷰했고 며칠 뒤 초저녁 유명 정보프로그램에서 내 모습을 본 고모의 전화를 받고 화장실 안에서 당황한 채 한 횡설수설 내 인터뷰가 전국적으로 방송되었다는 수치스러운 기억만 남았다.

 



  그런 나에게 요즘 작고 귀여운 그리고 매일 신경 쓰게 만드는 화장실이 생겼다. 화장실을 이용한 흔적이 없으면 걱정되고, 화장실이 용변으로 가득 차 있으면 안심되고 그저 기특하다. 이런 감정을 느끼게 된 것은 올 초 내가 집사가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제 화장실이, 아니 내 고양이의 화장실이 나에게 중요한 공간이 되었다. 내 화장실 속 작은 화장실이 이렇게 중요해질 줄이야. 매일같이 청소하고 소독하고 닦고 고놈의 감자와 맛동산(용변)을 통해 건강을 체크하고 때로는 자기가 화장실 가는 것을 울음으로 알리면 나는 쪼르르 따라가 고양이를 관찰하기도 한다. 야생이었다면 자신의 생존과 직결된 부분이기에 본능적으로 자신의 흔적을 열심히 또 야무지게 그 작은 발로 지우는 모습을 보면 화장실에 대한 고양이의 자세가 얼마나 진지한지 웃음이 나면서도, 그 진지함을 배우게 된다.

‘내가 한 번이라도 이렇게 화장실에 진심이었던 적이 있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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