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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아 moi Aug 11. 2023

모래 하나 바꿨을 뿐인데,

마성의 벤토나이트


 힝구에게 미안했던 순간을 말하자면, 힝구가 포도막염에 걸렸다고 진단받았던 날이다.

그 전날부터 힝구의 왼쪽 눈 상태가 좋지 않아 걱정되었는데, 다음 날에는 왼쪽 눈이 붓기 시작하더니 이내, 눈동자가 탁해지기 시작했다. 급하게 힝구를 병원으로 데려가는 그 짧은 시간 동안 힝구가 실명을 하면 어쩌나 온갖 걱정과 자신을 책망했다. 다행히 안약과 알약, 1주일 처방을 받고 고양이는 모래 사용으로 인해 포도막염이 흔한 질병이라는 의사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나니 조금은 안심할 수 있었다. 그래도 여전히 힝구의 탁해진 한쪽 눈을 보니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날 밤, 급하게 모래 전체 갈이와 화장실 청소를 시작했다. 평소 아침, 저녁으로 힝구의 화장실 청소를 마치고 나면 반려동물용 스프레이로 살균에도 신경을 쓰고 있었는데, 힝구의 눈 건강을 위해 더욱 신경을 써야겠다며 새로운 고양이 위생용품 관련 제품을 폭풍 검색했다. 그런 일은 없겠지만 장바구니가 터져나갈 듯 담기 버튼을 눌렀다. 물론, 결제 전 다시 한번 심사숙고의 시간을 다시 가지긴 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힝구의 눈에 안약을 넣고, 알약까지 겨우겨우 먹인 후에야 한시름 놓을 수 있었다. 하지만 자신을 붙잡고 눈에 알 수 없는 액체를 투여하고, 쓰디쓴 뭔가를 억지로 먹이는 집사를 피해 요리조리 바쁘게 도망가는 힝구는 그저 싫기만 한 시간이었으니 힝구와 나, 동상이몽이 따로 없었을 것이다.



 약 투여 하루 만에 힝구의 눈이 선명해지기 시작했다. 날이 갈수록, 군데군데 남아있던 탁한 부분도 말끔히 사라졌고, 1주일 뒤, 완치판정을 받았다. 힝구의 눈 건강을 위해 나도 잘 쓰지 않았던 히알루론산 첨가 일회용 점안액으로 매일 같이 눈 관리를 받는 눈동자 미남냥이가 우리 집에 살고 계신다.


 기존에 사용하던 모래는 전체 갈이 할 때, 항상 미세가루가 많이 생긴다는 걸 알고 있었다. 힝구가 자신의 용변들을 감추기 위해 앞발로 열심히 모래를 헤쳐대고, 나도 힝구의 용변들을 치우기 위해, 매일 같이 헤쳐대니  통칭 '두부모래' 이름만 들어도, 잘 부서질 것 같은 모래, 그 형태가 남아날 수가 없겠다. 사실, 두부모래는 물에 잘 녹는 성질 때문에, 매일 힝구의 감자와 맛동산을 캐내고 난 뒤, 처리방식이 편리해 포기하기가 쉽지 않았다. 힝구 화장실 옆, 내 화장실에 쓱 버리고 물만 내리면 그만이다.

 힝구를 데려올 때, 고양이님께서 가장 좋아하는 모래는 벤토나이트라는 중요한 Tip도 듣긴 했지만, 광고 속 고양이들이 벤토나이트 모래 속에서 벌러덩 행복해하는 모습도 보긴 했지만, 내 편의를 위해 외면하고 있었다. 이제 마성의 벤토나이트를 맛 보여 줄 때인 듯하다.


 무수한 벤토나이트 제품들 앞에서 한숨부터 나왔다. 하지만, 최고의 모래를 찾기 위해, 집사로서 검색력을 끌어올린다. 와이오밍에서 온 순도 100% 벤토나이트 먼지 최소화, 강한 응집력을 자랑하는 한 제품이 우리 집에 도착한 날, 나는 또다시 힝구에게 미안했다. 깨끗이 닦고 건조한 화장실에 모래를 붓기 시작하자마자 화장실로 점프하듯이 들어가 버린 힝구, 역시 마성의 벤토나이트였다.


 힝구의 앞발이 바쁘다. 모래에 뭐라도 묻어두었던가 싶다. 그 작은 화장실 안에서 급발진 급브레이크로 돌고 돌면서 난리이다. 온몸에 모래로 분칠하고, 그것도 아쉬웠는지 박박박 힝구의 발길질에 화장실 밖까지 사방으로 모래가 날아다니기 시작했다. 허허허, 그 옆에서 나의 부질없는 청소포 밀대질, 쉴 새 없는 돌돌이(테이프 크리너) 결국 모든 것을 포기한 채, 행복한 힝구에게 모든 것을 내어주었다.


 힝구도 지쳤는지 모래 위에 자리를 잡는다. 그런데 모래 위에서 쉬는 폼이 허탈하다. 문득 당근으로 보낸 힝구의 쿠션 하나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집사 쪼랩시절, 거금을 주고 산 그 쿠션은 힝구의 외면을 받은 채 몇 달 뒤 당근에서 반값도 못 받고 팔려 갔다. 본체보다는 택배박스에 열광하는 것이 힝구라지만, 나름 고양이계의 명품 쿠션이었는데 힝구의 픽은 모래였다. 모래 하나 바꿨을 뿐인데, 그날 힝구는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한 채, 잠깐의 휴식으로 에너지 충전을 끝냈고, 새벽 내내 우다다로 자신의 즐거움을 표출했다.

 그리고 아침, 기특하게도 힝구는 감자 한 덩어리로 집사에게 고마움을 표현했다. 감자의 형태를 보니 응집력은 인정이다. 나 역시도 힝구의 안정적 모래 정착에 안도한다. 그렇지만, 힝구 워워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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