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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아 moi Feb 06. 2024

내 빨래건조대, 너의 놀이터

냥이월드 개장하는 날


 힝구와 함께 살기 시작한 이후로 기존에 사용하던 빨래건조대는 벽 틈 사이에 넣어둔 채 새로운 빨래 건조 방법을 생각해 내야 했다.


 처음 우리 집에 왔을 4개월 때까지만 해도 건조대에 널린 빨래를 바라보기만 했던 어린 고양이였는데, 곧 빨래건조대쯤은 우스워질 개월 수가 되어 있었다. 그날도 평상시처럼 막 세탁이 끝난 세탁물을 널고 있었다. 일과 하나를 끝내고 잠시 화장실을 다녀온 사이 내가 본 것은 힝구의 성장 속도를 실감케 했다. 어떻게 그 위로 올라간 것일까. 향긋한 냄새를 풍기는 세탁물과 놀고 있던 힝구의 모습에서 해맑음과 귀여움을 느끼면서도 나는 망연자실했다. 아, 빨래 다시 해야겠네. 레드브라운 때론 황금빛처럼 빛나던 힝구의 털이 젖은 세탁물과 뒤섞여있었기 때문이다.



 

 내 빨래건조대는 가로로 접어서 보관이 가능한 형태로, 몸체 양쪽에는 필요에 따라 가로 폭을 확장해 사용할 수 있는 날개가 양쪽에 달려있다. 추가적인 기능이다 보니 그 날개 부분은 한눈에 보기에도 견딜 힘이 그리 커 보이지는 않는다. 그래도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여기서 건조된 내 빨래는 나를 뽀송하게 만들었고, 수납장과 벽 사이에 주문 제작한 듯 딱 맞게 들어가는 사이즈까지 안성맞춤이었다. 아쉽게도 지금은 이불 빨래를 건조할 때만 사용한다. 힝구도 같이 사용하는 이불쯤은 건조 후 털 제거 과정을 추가하면 될 일이니까. 사실 매번 빨래방을 이용하는 것도 번거로워 나 자신과 타협하고 말았다.


 그래서인지 힝구는 이제 당당하게 빨래건조대를 제 놀이터처럼 이용한다. 작은 원룸에서 힝구의 점프를 도와줄 도약대(다양한 가구)가 근접해 있어 힝구에게는 제2의 캣타워처럼, 이곳저곳을 넘어 다닐 수 있으니 아마도 이불 빨래하는 날은 롯데월드만큼이나 흥미진진한 냥이월드가 개장하는 날일 것이다. 침대, 테이블 그 옆에 놓일 빨래건조대를 넘어 싱크대, 그리고 반대편 화장대로 이어지는 모험의 세계.


 화장대 의자를 꺼내어 앉는 그 위치, 내 정수리 위에는 생뚱맞게도 웬 줄 하나가 매달려있는데 그 줄 끝에 달린 장난감은 딱 봐도 고양이 것임을 알 수 있다. 이 장난감을 천장에 매달아 놓아 힝구가 낚시 놀이를 하게 마련해 놓은 것이다. 하지만 다른 장난감처럼 힝구의 관심을 받지 못했고 결국 낚싯줄을 둘둘 말아 정리해 놓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마치 있지만 없는 것처럼 내버려두다 보니 홀로 허공에 떠 있은 지 오래다.




 어제는 오랜만에 이불 빨래를 위해 빨래건조대를 펼쳤다. 건조대에서 발을 뻗으면 달듯 말 듯하게 떠 있던 그 장난감이 오랜만에 힝구의 관심을 끌었는지, 이불을 지탱하던 양옆의 접이식 날개 부분에 간당간당 의지한 채 힝구는 그 장난감을 잡으려고 애썼고, 제법 무게가 나가는 우리 힝구를 지탱해 주고 있는 저 건조대의 지지력을 인정하게 되었다.


 문제는 힝구가 화장대를 도약대 삼아 허공에 떠 있는 장난감을 낚아채며 건조대 날개 부분으로 착지하려 한다는 것을 확신하는 순간에 발생했다. 그 깨달음과 함께 '안돼'라고 말하려는 순간 힝구는 이미 몸을 날렸고, 내 촉은 실패를 예상했다. 역시나 힝구는 사냥감을 잡지도 못한 채 그대로 건조대로 떨어졌다. 

 다행히 힝구는 타고난 균형감각과 어마어마한 근력으로 건조대 몸체까지 빠르게 몸을 움직였다. 그 순간 건조대의 날개 부분이 힝구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떨어져 나갔다. 엄청난 소음과 함께 떨어진 날개 한 짝을 보며 말을 잇지 못하던 내 곁으로 힝구는 의기냥냥하게 다가왔다. 


의기양양 : 뜻한 바를 이루어 만족한 마음이 얼굴에 나타난 모양.
의기냥냥 : 고양이가 뜻한 바를 이루어 만족한 마음이 얼굴에 나타난 모양.


 힝구 덕분에 집안 살림 교체 주기가 자꾸 빨라진다. 일단 아래쪽 날개를 떼어 붙일 수 있을지를 확인해 봐야겠지만 언제라고는 확신할 수 없다. 의기냥냥 신난 힝구는 냥이월드가 폐장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듯 여전히 즐겁기만 하다. 

 어쨌든 오늘도 힝구 하고 싶은 거 다 했구나. 집사는 울지만, 힝구가 웃었으니 되었다.


날개 잃은 건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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