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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아 moi Feb 22. 2024

글 쓰는 고양이

상상은 상상일 뿐 


 글쓰기 창을 열었지만, 한참 동안 비어있는 창만 멍하니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고요한 아우성, 초점 없는 내 시선 너머 머릿속은 시끄럽기만 하다. 뒤죽박죽 생각 중에 하나를 뽑아내려 애써보지만, 실체 없는 잡(雜)생각뿐인 그 생각 뭉텅이들에서 어떤 글감도 찾지 못했다. 결국 오늘 글쓰기는 쉽지 않겠다 싶다. 시끄러웠던 머릿속이 이제 내 마음속도 시끄럽게 만들었다. 아 오늘 글 어떡하지?


 내 속도 모르는 우리 집 고양이가 슬금슬금 내 곁으로 다가온다. 자신은 외면한 채, 한참 동안 노트북 화면만 바라보니, 그게 탐탁지 않았나 보다. 힝구는 또 이것만 보고 있느냐는 타박을 온몸으로 해온다. 처음에는 테이블 모서리에 자기 뺨을 비비며, 관심을 요청하다가 자기 애교가 통하지 않자, 이제는 테이블 위로 뛰어올라 야옹 하고 울어본다. 안타깝게도 거의 무음 수준이었던 힝구의 부름은 무심한 내 시선 한 번으로 끝나버렸다. 

 그것은 힝구의 목소리가 들린 것도 같아서 무심결에 본 시선이었다. 실망스러운 내 반응에, 결국 힝구는 온몸으로 내 시선을 집중시켰다. 노트북 키보드 위에 털썩하고 앉은 힝구가 나 좀 보라는 듯,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다. 하지만 내 시선은 힝구가 아닌, 힝구 너머 노트북을 향해 있다. 힝구의 궁둥이에 눌린 키보드 몇 개가 끝도 없이 글쓰기 창을 채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순간, 나는 힝구가 글을 쓰면, 진짜 귀엽겠다고 상상해 버렸다. 그러다 진짜 힝구가 나 대신 글을 좀 써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자기 궁둥이를 이용해 키보드를 점령하며 집사의 글쓰기를 방해해 왔던 힝구가 채웠던 그 철자들의 나열을 모아놓고 보면, 글 하나는 나올 분량일 텐데, 글 쓰는 집사를 부리는 고양이의 냥생 1년 하고도 6개월이면, 한 편쯤은 집필할 줄도 알아야 하지 않을까라고, 진정한 잡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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