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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아 moi Mar 04. 2024

김집사의 하루

고양이밥집


 힝구를 모시는 김집사는 알람이 필요 없는 백수 생활 중에도 늦잠이라는 것을 잘 수가 없다. 힝구는 조금의 공복도 허용하지 않는 듯, 온 힘을 다해 나를 깨우고야 만다. 창밖은 아직도 어둡고, 나는 이른 아침이 너무 버겁다. 분명 자동 급식기를 설정해 놓았기에 시간마다, 집사의 부재중에도 힝구의 끼니는 절대 놓치지 않는다. 아침부터 밤까지.


 집사의 하루가 힝구의 끼니를 챙기고 치우고 챙기고 치우고의 연속이라는 생각될 때도 있다. 고양이 밥집이 된 내 집에 불만이 있는 건 아니지만, 그냥 문득문득 그런 생각이 들곤 한다. 거기에 설정해 놓은 급여 시간 이외에도 힝구의 몸짓 한 번이면 대령하는 츄르와 건조간식(트릿)까지 더하면, 추가 부스터를 획득한 힝구의 에너지 지수는 집사가 컨트롤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원래 힝구의 아침 루틴은 내 곁에서 잠을 자다가 깨다가 놀다가를 반복하며, 내가 잠에서 깨기를 조금은 조신하게 기다리곤 했다. 아침 7시 30분 첫 급여를 시작하는 급식기가 작동하면, '파블로프 개'의 반응속도로 급식기 앞으로 뛰어가, 차분하게 아침 식사를 시작한다. 그런데 이제 힝구는 급식기 소리에도 사료는 거들떠보지 않는다.


 츄르에 빠져버린 힝구는 이제 오전 7시가 되기도 전부터 오늘 분량의 츄르를 달라고 떼를 쓰듯 나를 닦달한다. 외국에서는 집사를 캔따개라 부른다더니, 집사의 또 다른 이름은 츄르셔틀이구나. 잠결에 겨우 몸을 일으키니 이불 밖 한기가 느껴져 빠르게 츄르 하나를 뜯어 힝구에게 주고는 따뜻한 침대 속으로 직행했다.

 

 하지만 하루 총 필요 츄르량에 미치지 못했다며 힝구가 다시 보채기 시작한다. 최근 들어 츄르를 주식처럼 먹으려고 하는 힝구 때문에 습식사료를 고민했지만, 지난번, 대형 참치 회사와 반려동물용품 회사가 콜라보 한 참치 통조림이 철저히 외면당했다. 그때 구매한 통조림의 참치 맛이 싫다며 입도 대지 않아, 결국 통째로 버려야 했다.


 그리고 지난밤, 오랜만에 본가에서 엄마 밥을 먹으며 편히 쉬다 온 것이 미안해 이번에는 다른 브랜드의 통조림 하나를 준비했다. 역시나 이번에도 실패였다. 맛과 향이 문제였는지, 건더기 크기의 문제였는지, 통째로 들어간 참치보다도 츄르처럼 잘게 져며지고 조금은 묽은 농도의 츄르가 힝구의 확고한 취향인지, 오늘도 외면당한 통조림 옆에서 힝구는 츄르 한 봉지를 뚝딱하고도 아쉬운 듯 츄르가 보관된 수납장 앞을 서성인다. 나는 단호하게 '안돼'라고 말하며 작업을 위해 노트북 앞에 자리를 잡았다. 힝구가 다가온다. 애써 무시해 보지만, 이내 힝구의 귀여운 협박에 피를 본 나는 순순히 츄르를 내줄 수밖에 없었다.




 고양이 밥집이 된 우리 집, 힝구의 밥시중에 하루가 바쁜 김집사는 잠시 내 시간을 위한 투쟁을 시도했다. 하지만 맑은 눈을 한 힝구의 눈빛과 날카로운 발톱에 호기로운 투쟁 시도는 곧 제압되었고, 츄르를 배불리 먹은 힝구가 늘어지게 늦은 낮(?)잠을 자는 지금에서야 나는 자유를 얻었고 비로소 오늘의 글쓰기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방심은 금물이다. 밤 10시! 힝구의 야식 시간이 남아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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