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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아 moi Mar 21. 2024

집사권을 보장하라


 고양이 집사도 혼자 있고 싶을 때가 있다. 하지만 내가 사는 원룸에서 나만의 공간을 갖기란 쉽지 않기에 최근까지는 매일 같이 카페를 찾곤 했었다. 몇 달간의 카페행으로 그곳의 소란함에 피로감을 느끼며 나는 홈카페를 시작했다. 그저 나만의 공간에서 조용히 커피 한잔하며 글쓰기를 하고 싶었기에.

 

 집사의 아침 일과를 마치고 노트북과 스마트폰을 하려고만 하면, 그 모습이 고양이 힝구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었던 건지 내가 다른 것에 집중하자마자 힝구는 내 시선을 자기에게로 다시 잡아끌어 놓았다. 주인님 하고 싶은 거 다하라며 키워온 탓에 힝구의 방해는 당연한 권리가 되었고 내 하루 루틴은 자꾸 틀어지기 시작했다. 그래 이것은 잠시 고양이 집사로서의 책무를 가볍게 여긴 내 잘못일 테지.

 

 그렇지만 '집사에게도 사생활이 있다' 집사권(權) 보장을 외쳤지만, 힝구는 절대군주, 나는 일개 집사이기에 이 상황을 해결할 묘책을 찾아야 한다. 지금이라도 카페를 가야 하나, 화장실을 건식으로 꾸며볼까? 갖가지 대안을 고민하다 나는 해결책을 찾았다. 그래 이사를 가자! 하지만 이사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부동산 어플을 한참이나 들여다보느라 지친 나는 결국 이불을 뒤집어쓰며 나만의 공간을 찾아냈다.


 이불 밖 힝구가 이 안으로 들어오기 위해 부산스럽게 발길질을 하지만, 나는 방어에 성공했고, 좁지만 아늑한 이불속 온전한 내 공간에서 나는 자유를 만끽했다. 이렇게 말하니 내 모습이 처량하게 그려지겠지만, 사실 이불속 상황은 그리 나쁘지 않다. 스마트폰을 하며 시간을 보내니 에너지가 충전된 기분이 들어 조심스레 이불 걷어냈다. 이불속에 들어오지 못한 힝구가 지쳐 내 곁에서 잠들어 있다. 평화롭다.




 힝구가 자꾸만 놀자고 나를 꾀기 시작한다. 힝구는 잘 때가 제일 이쁘니까 조금만 더 잘래?! 힝구는 아니라 한다. 그런데 아직 내 일과는 끝나지 않았는데, 때론 아직 나는 좀 더 휴식이 필요한데, 그럴 때면, 나는 자꾸 이불속으로 또 속으로 들어가길 반복한다. 아무리 사랑하는 존재라도 자기만의 시간과 공간은 필요한 법! 힝구도 이제 성묘가 되었으니 집사권에 대해 조금 더 생각해 주길 바란다.


 그런데 며칠 전부터 힝구가 나의 암묵적 휴식 공간을 넘어오기 시작했다. 발을 이불속으로 쑥 하고 넣어보더니 이내 포기한 듯 발을 뺀다. 휴 선 넘어오는 줄. 곧 다시 이불 한편에서 인기척이 느껴진다. 무언가가 내 이불속으로 들어오려는 움직임을 확인하니 인기척이 아닌 묘(猫)기척이었다. 집사 곁이 제일 재밌다는 힝구는 거침없이 이불속으로 들어온다. 이 녀석! 평소에는 내 품에 파고들지도 않으면서 이럴 때만이냐!


 구렁이처럼 쑤욱하고 들어 온 고양이 한 마리가 내 가슴팍에 기대앉더니 이내 내 가슴 위로 올라와 껌딱지처럼 붙어 쌔근쌔근 잠을 잔다. 어휴, 귀여우니까 봐준다. 힝구의 작은 숨소리를 듣고 있으니 나도 그 호흡에 맞춰 잠들기 시작했다. 집사는 직감한다. 이 녀석에게서 나는 절대 벗어날 수가 없음을 그러면서도 김집사는 알고 있다. 이불속이 그냥 충전이라면, 힝구는 급속충전 그 자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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