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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아 moi Mar 27. 2024

술 빚은 하루

딸기주 하이볼


 처음으로 만들어 마셨던 딸기주가 생각날 때면, 올해는 꼭 딸기주를 담가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매해 겨울이 지날 때쯤이면 올해는 딸기가 비싸서, 또 올해는 바쁘다는 이유로 매번 내년으로 미루곤 했었다. 이번에도 겨울이 지나가고 있다. 딸기는 여전히 비쌌고 술을 담그는 그 과정이 귀찮아졌다. 역시 딸기주는 추억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하나 싶었는데 그러는 사이 딸기값이 많이도 내렸다. 이 소식을 전해 온 친구는 내가 자랑만 했던 그 술을 맛보고 싶다고 했었다.


 완성된 술을 마시는 것도 좋았지만, 술이 익어가는 과정을 기다리는 그 기분 또한 좋았다. 날짜 디데이를 설정하고, 100일을 기다리는 동안 전혀 지루하지 않았으니까.


 전날 다이소에 들려 딸기주를 담을 병을 고르다가 혹시 본가에 예전에 사용했던 술병이 있는지 확인 전화를 했다. 그러다 결국 술은 본가에서 만들기로 결정했다. 고양이의 방해 속에서 술을 담글 생각을 하니, 쉽지 않을 것 같았고, 그렇게 마음먹은 김에 오늘 바로 본가로 향했다.


 딸기 2.5kg을 씻고 손질하고 열탕 처리를 한 술병에 물기를 뺀 딸기와 설탕을 겹겹이 쌓아 채웠다. 그리고 30도짜리 담금술까지 넣어 가득 찬 술병 뚜껑을 닫으니, 생각보다 간단하게 딸기주가 완성되었다. 미루고 미뤘던 이유에는 내 귀찮음이 더해져 있었구나.



 마침내 몇 년 동안 마음속으로 생각만 했던 한 가지 일을 해내니 개운함과 함께 기대감이 들었다. 100일 뒤, 7월 5일이 되면 과실을 걸러 내고 또 조금 더 시간을 들여, 숙성의 시간을 보내고 나면, 올여름에는 시원하게 딸기주 하이볼을 맛볼 수 있겠구나. 그러면 내 소중한 인연들과 함께 한잔 기울여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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