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박박'
모래 덮는 소리를 들으니, 오늘도 우리 집 고양이, 힝구가 시원스레 용무를 마쳤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장하다. 그럼, 이제 그 똥꼬를 닦아볼까?
호다다닥;;
내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화장실을 빠져나와 급하게 내 다리 사이를 스쳐 지나간 힝구를 보며, 오늘도 쉽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좁은 원룸에서 고양이가 갈 곳이야 뻔하지. 능숙하게 힝구의 흔적을 변기에 흘려보내고, 화장실 밖으로 나오니 집 안은 고요했고 고양이의 흔적조차 찾을 수가 없었다.
녀석도 이제 숨기에 달인이 된 것이다. 얼마 전까지도 미처 숨기지 못한 꼬리 때문에 쉽게 나에게 잡히곤 했는데.
이제 나도 집사 1년 차다. 집사 초보일 때는 힝구의 엉덩이를 깨끗하게 닦지 않으면 큰일이 날 것처럼 침대 밑으로 녀석을 잡으러 다녔지만, 이제 나는 달라졌다. 어차피 숨기는 오래가지 못한다는 것을 알기에 나는 조용히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기로 했다.
지금쯤이면 집사가 자신의 똥꼬를 잊었다고 생각한 건지, 힝구가 슬며시 고개를 내밀더니, 나와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털을 고르기 시작한다. 나는 애써 관심 없는 척, 힝구를 좀 더 안심시키기로 했다.
지금이다!
내 기습에 힝구의 동공이 커질 대로 커지는 것을 보며, 나는 힝구의 엉덩이를 팔로 감아 안았다. 힝구 똥고를 제대로 혼내줘야지! 고양이 전용 물티슈를 꺼내자, 힝구가 외마디 '야옹' 소리를 냈다. 이어 힝구의 '냐아아앙' 힘없는 울음소리를 끝으로, 오늘 똥꼬도 미션 클리어!
힝구는 억울한 듯, 분이 풀리지 않은 듯, 멀리서 나를 매섭게 쳐다본다. '아니 그렇게 똥꼬 닦는 게 싫으면, 그루밍을 좀 잘해봐 봐'
그랬다. 힝구는 우리 집에 와 처음 맛동산을 만들어 낸 이후로 한 번도 똥꼬 그루밍을 하지 않았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그루밍도 고양이 성격에 따라 가지각색으로 취향껏 한다는 사실을 안 이후로, 힝구의 똥꼬 그루밍은 내가 담당하게 되었다. 나라고 좋은 줄 아는 거니.
힝구는 보통 내가 화장실을 치워준 후에야 다음 용변을 보는데, 역시나 연이어 화장실로 달려간다. 이번에는 어디선가 물 흐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번에는 감자구나. 하지만 집사는 퇴근했으니, 감자 캐기는 좀 더 미뤄두기로 했다.
그렇게 나도 좀 내 볼일을 보려는데, 자기가 화장실만 가면 집사가 자신의 똥꼬를 닦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느낀 힝구가 내 작은 움직임에도 깜짝깜짝 놀라며 나와 거리 두기를 한다.
저기 이번에는 감자였잖아. 긴장 풀라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