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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아 moi May 31. 2024

귀여운 방해꾼

내 뮤즈


 톡 하고 누군가 내 팔을 건든다. 재택근무로 정신없는 집사의 팔을 건든 것은 다름 아닌 우리 집 고양이 힝구였다. 재택 초반, 집사는 왜 밖에도 나가지 않고, 집에만 계속 있는 걸까란 표정으로 나를 보더니, 그새 내 존재가 익숙해졌는지, 멀리서 나를 바라만 보다가, 내 곁으로 다가와 같이 놀자고 조르기 시작했다.


 화장대를 임시 업무공간으로 쓰다 보니, 노트북 넘어 거울에 비치는 내 얼굴이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거울을 치워놓을까란 고민 중에, 내 생각을 읽기라도 했는지, 힝구가 거울 뒤편으로 쏙 하고 들어가 버렸다. 그러더니 그 틈 사이로 발을 휘적거리며, 나에게 또 장난을 걸기 시작한다. 몇 번 이 녀석의 장난을 함께 해줬더니, 장난이 끝도 없이 이어진다. 재밌지만, 마음이 조급해진 나는 단호하게 힝구를 내려놓았다. 그 뒤에도 힝구는 몇 번이고 화장대로 올라왔고, 나는 내려놓기를 반복해야 했다.

 

힝구야. 그만..!


 그제야 집사의 업무시간에는 장난이 통하지 않는다는 걸 눈치챘는지, 침대 위로 몇 번이나 퇴장당한 힝구가 그대로 낮잠을 자기 시작했다.


 힝구의 방해는 솔직히 좋다. 하찮은 방해가 귀찮기보다는 업무 중 받는 스트레스를 그때그때 해소해 주니, 나로서는 고마울 뿐이다. 하지만 그래도 집중이 필요할 때면, 어쩔 수 없이 힝구의 시선을 다른 곳으로 이끌기 위해, 츄르고 트릿(간식)이고 자동 레이저 장난감이고 모든 수단을 동원해야 했다.

 

 다행히 어제까지 적극적이던 힝구의 방해도 시들해졌다. 이만큼 했는데 집사가 나와 놀아주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이제 슬쩍 다가와 내 팔을 톡 치며, '우웅'하고 운다. 물고 할퀴고 조금 거친 스킨십에 익숙했던 집사는 이 부드러운 손길, 아니 발길에 마음이 약해져, 츄르 하나를 대령했다. 힝구야 조금만 기다려. 퇴근 얼마 안 남았어.


 또,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또다시 부드러운 발길로 힝구가 자신의 존재를 알린다. 내가 집에 있어서 외롭지 않은 힝구, 틈틈이 힝구를 만질 수 있어 스트레스 없이 업무를 볼 수 있어 좋은 집사. 오늘로써 이 즐거운 재택도 끝이구나. 아쉬운 마음도 잠시, 회사 메신저에 소식 하나가 전달되었다.



공사로 인해 다음 주도 재택근무 확정!


 그렇게 다음 주도 나는 힝구의 하찮은 방해 속에 재택근무가 확정되었고, 좋으면서도 마음 한편의, 이 묘한 감정은 무엇일까란 생각을 하며, 집에서 집으로 퇴근했다.




 퇴근했어도 퇴근한 기분이 들지 않는 재택근무를 마치고, 내 글을 쓰기 시작하자 비로소 진짜 퇴근한 기분이 들었다. 드라마 '미생'에 나오는 천 과장이라는 인물은, 회사와 관련해서 술을 마신 날에는 꼭 혼자서 술 한잔을 했다. 자기만을 위한 시간이 필요했던 걸까.

 회사에서 하루 종일 글을 쓰고 나면, 그렇게 원했던 일임에도, 진짜 내 글에 대한 고픔이 있었다. 그런데 업무를 마치고 나면, 아무 생각도 할 수가 없었다. 텅 빈 머릿속, 쓰고 싶으면서도, 또 아무것도 쓰고 싶지 않은 마음이 동시에 들었다. 그러다 시작된 재택근무, 힝구와의 시간이 늘어나자, 내 글도 생기를 얻기 시작했다. 역시 내 글의 원천은 힝구였구나. 재택근무는 나에게 힐링과 깨달음을 주었다. 내 뮤즈, 내 고양이 힝구. 츄르 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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